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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통신의 눈
북한강유역의 학맥을 찾아서 ③
북한강 학맥의 지형도를 그린다
북한강의 학맥이라고는 하지만, 그 실체는 과연 있을까? 그저 단순히 북한강이라고 하는 지명과 관련되는 인물들을 마구잡이로 끌어들인 뒤 그것을 학맥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닐까? 지금처럼 강이 우리 생활과 유리된 채 그저 흘러가기만 할 뿐 어떤 영향 관계도 형성하지 못한다면 강 주변의 학맥을 논의하는 것이 무의미한 짓이리라. 그렇지만 근대 이전 시기에 강은 중요한 교통수단인 뱃길을 제공했다. 육로보다는 뱃길이 편한 지역도 분명 있었다. 강 주변으로 삶의 터전을 만들고 배움의 터전을 세운 시절이 있었다. 그런 점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재구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북한강 유역의 학맥을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강원도와 경기도로 행정 구역이 달라졌지만, 가평군의 경우는 1895년 강원도에서 경기도로 그 관할 지역이 달라졌다. 한때는 강원도와 같은 행정 구역에 속했던 곳이다. 물론 백 년도 더되는 옛날 얘기를 끄집어내서 그것이 원래 우리 땅이었다며 무얼 주장하자는 것은 아니다. 우리 전통 문화 속에서는 가평군과 춘천시가 공유하고 있는 지점이 존재할 것이라는 점을 말하려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삶을 편리하게 영위하려고 행정 구역이라는 이름으로 땅을 갈랐지만, 강물은 예나 지금이나 유유히 흐르면서 갈라진 땅을 아우르고 있다. 
북한강의 학맥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양수리에서 대성리 부근까지를 하나의 구역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지역은 남한강과 합쳐지면서 다른 지역의 문화와 넘나들기가 비교적 쉬운 곳이면서 동시에 서울에서는 뱃길로 하루가 채 안 되는 거리였다. 중앙의 문화가 쉽게 닿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북한강 유역의 문화 및 학문을 논의할 때 하나의 구역으로 설정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둘째는 대성리 부근에서 가평군까지를 하나의 구역으로 설정할 수 있다. 이 지역은 행정 구역 상 경기도와 강원도를 오가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나간 역사를 지닌 땅이다. 그런 점이 학맥과 얼마나 연결될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적어도 이들이 문화적 특징을 보이리라는 막연한 추정을 해본다. ‘막연한 추정’이라는 표현이 자칫 무책임하고 직관적인 것에 의존하는 태도로 비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으로서는 근기(近畿) 지역으로 분류되는 곳을 벗어난 지점에 위치하기 때문에 그곳에 은거하여 혹은 터를 잡고 강학활동을 한 사람들의 마음 자세 역시 차이가 있으리라는 추정 정도를 언급해 두기로 한다. 이 점은 앞으로 많은 자료를 통해서 입증되거나 혹은 수정, 폐기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는 춘천에서 화천에 이르는 지역을 하나의 구역으로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화천강 뿐만 아니라 내린천이나 홍천강으로 이어지는 지역에 대한 연구도 심화시키면서 하나의 독립된 지역으로 설정해야 할 필요가 있을 수도 있다. 그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에서 우선은 필자의 자료가 포괄할 수 있는 화천강 지역만을 대상으로 삼아서 논의를 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세 지역으로 구분해서 설정한 것은, 다시 한 번 강조하거니와 대단히 편의적인 구분이면서 동시에 수정 보완되거나 폐기될 수도 있는 설정이다. 북한강의 학맥을 따지면서 강 유역으로 자리를 잡았던 학자군(學者群)이나 시인묵객(詩人墨客)들을 조사하는 데 편리하기 때문에 이렇게 나누었을 뿐이다. 앞으로 조사되는 자료가 그 구분의 미래를 결정한다.
각 지역은 그 나름의 지역적 특색과 함께 학문적 전통을 가진다. 지역과 학문의 관계가 얼마나 깊이 형성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들 지역의 인물들을 우선 조사하여 시대 순으로 정리하다 보면 그 윤곽이 서서히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조선 후기로 올수록 그 인물들 간의 관계는 더욱 복잡하게 얽힐 것이다. 당색과 학맥이 서로 겹치거나 엇갈리면서 중앙과 지방에서의 학문적 전통 혹은 생활에서의 교유 범위가 상당 부분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서울을 중심으로 학문적 입장을 단순하게 대입시키면 무리가 따른다. 지역에서는 서울과 같은 대도시보다 훨씬 강력하고 보수적으로 학문적 입장이 문중과 학파를 단순하게 재단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때로는 학파를 넘어서 혼권(婚圈)이 형성되기도 한다. 그런 점들을 꼼꼼히 살펴서 실상에 접근해야 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춘천 지역을 예로 들어보자. 이곳에서는 범박하게 세 부류의 학맥을 상정할 수 있다. 소양강을 중심으로 문암서원(文巖書院)과 도포서원(道浦書院)이 마주보고 있는데, 이들은 노론과 남인이 중심이 되어 설립한 서원이다. 이들은 당색에서의 차이만큼이나 학문적 주장과 교유 관계에서도 상당한 차이를 보였을 것이다. 이들과는 별도로 춘천 지역에서 오랫동안 하나의 세력으로 존재해왔던 향반(鄕班) 계층을 들 수 있다. 지역에 연고를 가지고 세력을 형성하고 있으면서, 때로는 중앙으로 진출하여 벼슬을 하기도 한다. 이들은 당색보다는 지역에서의 권력 형성에 더 큰 관심을 보인다. 그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노론이니 남인이니 하는 당색 및 학파와는 차별성을 가진 집단으로 존재했었다는 점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여기에 고려해야 할 사항이 더 있다. 하나는 관료로 부임하여 학문적 혹은 문화적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춘천의 경우 19세기 시서화(詩書畵) 삼절(三絶)로 불리었던 자하(紫霞) 신위(申緯)를 예로 들 수 있다. 그는 춘천부사로 부임하여 근무하는 동안 상당량의 시 작품과 서화를 남겼다. 그의 시는 문집에 수록되어 전하고 있으며, 그의 글씨는 장절공묘소에 있는 장절공신도비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와는 달리 정치적으로 실패하여 유배를 오거나 혹은 은거한 사람들의 영향력을 생각해야 한다. 화천의 김수증(金壽增)이 경영했던 화음동정사(華陰洞精舍)를 그 예로 들 수 있다. 17세기 노론의 핵심이었던 안동김씨 가문의 중요한 인물인 그가 화천에 머물면서 제자들을 기르고 학문적 논설과 시문을 썼던 일은 이 지역의 문화적 전통을 만드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학맥’을 논의하면서 우리는 유학적 전통을 중심에 두고 논의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 지역은 불교적 학맥이 중요하게 전승되던 곳이기도 하다. 춘천의 청평사, 가평의 현등사 등 중요한 불교 학맥이 면면히 이어오고 있었다. 또한 도교, 동학 등 다른 사상적 흐름이 있는지 자세히 살펴야 한다.
이들을 종합적이고 거시적으로 바라보면서 다양한 자료를 읽어낼 때 비로소 북한강 유역의 학맥이 어떻게 형성되어 전개되었는지, 그것이 지역 사회의 문화적 전통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지금 우리가 그 전통의 바탕 위에서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지 하는 문제를 함께 논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김풍기 (金豊起) | 강원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 우리 고전소설 문확과 한시 문학에 꾸준한 관심을 가지고 글을 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삼라만상을 열치다> <옛시 읽기의 즐거움> 등이 있고 <옥루몽(5권)><윤지경전> <열하일기(2권)> 등을 번역한 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