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현대사이며 여성생활사 건져올리기

    1945년 일제 식민지로부터 해방되던 해, 16살의  윤옥녀는 미장원에서 일을 하기 시작한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할머니 손에서 큰 그녀는 그 시절 제법 인기가 좋았던 미용사였다.  본 미용사는 아니지만 손님들의 머리도 감기고 틈틈이 파마 마는 것도 배우며 16살 소녀의 꿈을 키워간다.
그러던 그녀에게 한 남자가 다가왔다. 시내 중심가에 있던 미장원으로 출퇴근하는 모습을 본 남학생이 그녀의 모습에 반하여 이리저리 다리를 놓아 만나기를 간청하고 급기야 협박까지 하면서 만나고자 한다. 사람의 인연이란 참 알 수 없는 것, 그 집요함에 혼인을 하게 되지만 그 혼인은 그렇게 행복하지 않았다.

    시댁은 여유가 있었으나 경제능력이 없는 남편과의 삶은 고단했다. 급기야 폭력까지 휘두르는 남편을 피해 윤 씨는 자녀 둘을 데리고 서울로 식모살이를 간다. 그리고 고향 춘천으로 돌아온다. 낯선 곳 보다는 그래도 고향이 나으려니 하는 기대 때문에…. 그렇게 시작한 삶은 바느질, 빨래 같은 일로 자식들을 키우며 셋집을 전전하는 삶으로 이어진다.

r_DSC_0945.jpg 김옥진. 올해나이  68세, 얼핏보면 퉁명스러워 말을 건네기 조심스럽지만 한번 판을 깔면 못하는 일이 없다. 뜨개질 선수, 그림그리기, 만들기에도 솜씨가 야무지다. 그런데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하라고 하면 손사래를 짓고 피한다. 그녀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5살 어린나이에 맞은 6.25전쟁 중에 어머니를 잃었다. 어머니를 잃은 사연은 눈물겹다. 전쟁이 끝난줄 알고 집으로 가서 불을 피우다 미군의 폭격을 맞아 참혹하게 죽음을 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아버지도 곧 돌아가시고 청계천 피복공장에서 일하다 춘천에 가면 돈을 벌 일이 있다고 해서 춘천으로 왔다가 사기를 당한다. 일원 한푼 없는 신세가 되어 경찰의 도움으로 남의집 식당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 사연. 그러다 만난 남편의 폭력, 가출, 재혼으로 이어지는 삶은 고단한 여정이다. 그래서 말하기 싫었다.

삶이 묻어있는 역사, 생애이야기
    춘천효자종합사회복지관에서 진행된 ‘생활의 발견 프로젝트’. 이 프로그램은 문화커뮤니티 금토가 여성노인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삶을 이야기로 풀어내도록 기획한 문화프로그램이다.
그림도 그리도 바느질도 하고, 옛날 영화도 보고. 자신들의 삶의 여정과 연관된 문화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이다.

 

    살아온 이야기의 속을 들출 때마다 억눌리고, 고생했던 세월의 상처가 다시 일어날까봐 마음을 열지 못하던 할머니들은 이제 카메라만 열어 놓으면 부끄럼 없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쏟아낸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일제 식민지, 해방, 6.25 전쟁 등 우리사회의 요동치는 변화로 인해 삶이 굴곡되고, 여성들이어서 공부의 기회를 놓치고 서둘러 시집 보내져 낯선 환경에서 살아가야 했던 여성들의 역사가 담겨있다.

 r_DSC_0940.jpg    역사는 승리의 기록이라는 말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배의 뒤에 숨어있는 역사는 잊혀지거나 왜곡된다. 주류 역사처럼 역사의 큰 줄기를 이루지 못하지만 한사람, 한사람이 살아온 흔적을 기록하는 일은 살아있는 역사이다. 그 시대를 같이 했던 사람이나 그것을 경험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도 생생한 기록으로 전해진다.
그 기록들이 모여서 역사가 미처 담아내지 못한 삶의 흔적들을 보여주고있어 소중하다. 큰 것에 가리고, 힘에 눌려 드러나지 않은 역사에 눈을 돌리면 그 가운데서 새로운 역사를 읽을 수 있다. 그 숨어있는 역사는 우리의 삶에 더 많은 메시지들을 준다.
나의 삶을 기록으로 하여 만드는 작은 역사, 내가 살아온 마을의 과거를 거슬러 찾아가는 삶의 공간이 갖는 흔적들…. 이런 것들에서 내가 발 딛고 서있는 곳이 어딘가를 다시 확인할 수 있으며 그 삶의 흔적에서 내 삶의 길도 들여다보게 된다.
작은 역사 찾기, 내 삶의 뿌리 찾기를 일상의 문화로 만들어 가야 한다.


나의 삶 나의 이야기
어린 시누와 함께 뛰어 놀던 시집살이


철모르고 간 시집
    춘천 송암리에서 태어나고 자랐어요.
어느 날 갑자기 일요일에 6.25가 났는데 월요일에 2학기 책을 준다고 해서 책보를 가지고 멸공장쪽을 지나가는데 언니가 어딜 가냐고 하여 학교 가서 책을가지고 오겠다고 하니 인민군이 내려와서 피난을 못 가게 한다고 집에 꼼짝 말고 있으라고 하였어요. 그래서 정신없이 집에 와서 무서워서 가만히 숨어 있었어요.

 14살에 엄마가 돌아가시고 큰 언니와 둘째 언니는 출가하고 결국엔 7식구에서 세 식구만 남았는데  내가 다 빨래도 하구 살림을 하며 살았죠.

    어느 날, 아버지가 어디 놀러가지 말고 있으라고 하여 기다리는데 시누남편이 사주를 가지고 왔어요. 상에다 냉수 한 그릇을 받아가지고 사주를 받았는데 뭣도 모르고 혼인을 하게 된 것이죠. 그렇게 정월에 사주를 받고 2월에 결혼을 했어요. 도락구(트러)를 타고 시집을 갔는데 그때  18살이었어요.
남편 얼굴도 못보고 사주만 보고 갔는데 결혼식 날에도 사람들이 가득 있고 나는 머리에 뭘 쓰고 있어서 못봤어요.

 

농사와 집안일로 하루해가 짧은 시절
    하일로 시집을 갔는데 남편은 얼마 안 있다가 군대를 가고, 사촌 시누들과 맨날 들뛰고 놀았어요. 그걸 보시던 시아버지는 웃으시고 시어머니는 ‘시집 온 년이나 안 간년이나 다 똑같다’고 하시며 꾸짖으셨어요. 시집에서도 살림을 하느라 힘들었어요. 시댁 일과 큰 아버지댁, 아래 윗집으로 다니면서 일만 죽도록 하다가 남편이 군대에서 삼 년 있다가 제대해 온 뒤에 살림을 내줘서 따로 나와 살았어요.
24살에 첫 애기를 하일에서 낳았는데 그때는 남들보다 늦게 낳은 편이에요. 그렇게 딸 하나로 시작해서 5~6년 동안 4남매를 낳았어요. 그 후 삼천동으로 이사 와 20년 정도 농사지으면서 살았지요. 일꾼의 5~6명 몫을 나 혼자 했어요. 지금 같으면 다 팽개쳐버리고 도망갔을 거예요. 그 때 하도 일해서 키도 안 큰 것 같아요.  그 때를 떠올려 보면 하루도 행복할 날이 없었어요. 샘물 길러 열 번을 왔다갔다 하기도 하고 두루마기, 바지저고리 하나를 할래도 밤을 새야 하고, 하루  해도 왜 그렇게 짧은지, 물을 긷고 나면 점심 먹어야 하고, 치우고 나면 저녁 해야 하고, 또 치워야 하고… 하루가 짧다 해도 그때가 제일 짧은 거 같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농사도 짓고 집안 일도 하고 일꾼들 20여 명 밥 해 먹이고, 보리방아도 디딜방아에 찧고 밀도 맷돌에 갈았어요. 그 뒤 몇 년이 지난 후에야 기계 방앗간이 생겼어요. 그때는 리어카도 없이 지게에 지고 머리에 이고 지고 해 가면서 다녔어요.

 

극장구경의 추억
시집을 가서 신랑은 군대 갔을 때 서부시장에 신도극장이 생겨서 동네 새댁이고 총각이고 모두 모여서 저녁 먹고 극장 구경을 갔어요. 십리는 되는 길을 걸어서 갔지만 즐거웠죠.
그러던 어느 날, 극장구경을 갔다오다가 깡패를 만나서 같이 가던 열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다 도망가고 소양강 웃다리에서 다시 만나 나룻배를 타고 집에 간적이 있어요.
시집살이가 힘들었지만 7살이나 어린 시누하고 나하고 맘이 잘 맞아서 친구처럼 잘 지냈어요. 구경도 잘 다니고 시누노릇도 안하고. 시누이도 2살 때 엄마를 잃어서 그런지 나를 잘 이해해 주기도 하고 지금까지도 잘해요. 오히려 엄마 제사는 안 보러와도 내 생일에는 꼬박꼬박 오죠.

    남편은 65세, 내가 63살에 가셨는데 그래도 청춘도 보내고 환갑도 지내고 가셨으니 그나마 다행이죠. 남편은 착한 사람이었는데 어머니를 일찍 잃고 남의 엄마 슬하에서 고생을 많이 하고 자라서 그런지 부모 없는 사람끼리 만나니 맘을 잘 이해하며 잘 살았어요.
자녀들은 큰아들은 데리고 있고 딸과 아들은 경주에 살아요.
내가 저혈당이라 걱정돼서 될 수 있으면 쉬라고 하며 딸도 하루에 세 번씩 전화를 해요.

남은 바람이 있다면 내 몸이라도 건강하게 했다가 깨끗하게 가는거예요.
살아온 것은 이밥 실컷 못 먹고 고생하고, 시집살이 하고 뭐 그런 거 밖에 없어요. 시집와서 콩을 댓가마니 하면 그걸 다 콩탕을 만들고 해서 먹기 싫어 굶을 때가 많았어요. 그래서 지금도 콩탕을 못 먹어요. 지금도 냄새를 잘 못 맡는데 그 이유가 첫 애 가졌을 때 깡 조밥 냄새만 맡아서 그래요. 지금도 잡곡이 몸에 좋다고 하지만 나는 싫어요. 그냥 이밥이 좋아요.
난 지금이 제일 행복한 것 같아요. 해야 할 일도 없고 이제는 해도 길고, 이렇게 놀러다니는 게 제일 행복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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