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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이 넘게 내린 올 여름 비, 그 우울함을 한 번에 싹 씻을 대관령국제음악제의 기대로 잠을 설쳤다. 2011년 8월 4일 대관령으로 먼저 가 있는 마음을 따라 일찍 길을 나섰다. 평창에 도착하자 해발 700m 하늘 턱 밑 알펜시아는 여름날 같지 않은 시원함으로 찾는 사람을 기쁘게 맞이했다. 때 묻지 않은 상큼한 공기를 욕심내어 폐 저 깊은 곳까지 밀어 넣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한 달음에 알펜시아 연주 홀로 가는 내 모습이 어린 아이처럼 보였는지 딸아이가 킥킥거렸다. 행복한 마음을 어찌 숨기겠는가. 매년 알펜시아에서의 저명 연주가 연주는 한 번 보는 것으로 만족했었다. 그러나 올해엔 한 곳에서 이틀 동안 도저히 만날 수 없는 세계 정상급 연주자들의 연주를 두 번, 게다가 떠오르는 별들의 연주회까지 볼 수 있는 기쁨으로 날아갈 것만 같았다.
떠오르는 별들의 연주는 아직 자신만의 연주 색깔이 고정되지 않은 신선함으로 기대가 되었다. 시간이 너무 일러 조용한 연주 홀 입구에서 연주자들의 프로필과 프로그램을 받아 자세히 읽어 보았다.
4일 연주자는 4명. 대부분 10대인 그들은 이미 세상에 떠올라 빛날 수 있는 날아오를 준비가 탄탄하게 된 별들이었다. 작년에 문을 연 알펜시아 연주 홀은 아직 나무향이 그윽해 마치 울창한 숲속에 든 것 같았다. 눈을 감고 별들의 연주를 기다리는 시간 내내 어린 시절 음악과의 만남이 아슴푸레 떠올랐다. 자장가 대신 밤이면 우리가곡 ‘봄 처녀’등을 불러 주시던 어머니, 그 덕에 따듯한 팔베개보다 뜻도 모르며 음악에게로 마음의 눈이 열리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때 학교에 처음 생긴 밴드부에 뽑혀 이름도 생소한 캐스터네츠를 하게 된 것으로 그저 음악이 좋아 음악시간이면 내 세상 같았다. 그러나 아주 작은 시골 화천에서 음악의 길로 가는 길은 그 끝도 안 보였고 길의 입구조차 찾을 수 없었다. 고등학교 때 춘천에서 제대로 피아노와 작곡을 배우기 시작했으나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너무 늦게 시작한 것을 깨닫게 되어 음악교사로 만족해야 했다. 그런 내게 떠오르는 별들의 화려한 프로필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들이 시대와 부모 그리고 스승을 잘 만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뼈를 깎는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내어 얻은 값진 결과이리라.

 

드디어 연주 홀은 대부분 학생들로 찼고 곧이어 연주가 시작되었다.
서울예고 재학 중인 16세의 김민겸은 라벨의 치간느를 연주했다. 어린 나이임에도 그는 바이올린의 그 작은 울림통에서 울려 낼 수 있는 forte는 다 꺼내어 보이는 가하면 끊어짐 없는 매끄러운 piano를 만들어 내는 솜씨 또한 대단했다. 피치카토(pizz)와 글리산도(gliss)주법 또한 흠 잡을 데 없이 깊고 윤택한 소리로 아름다운 연주를 했다. 간간이 들리는 숨소리마저 마치 악보의 일부분을 소리로 불러내는 듯했다. 어린 나이 임에도 라벨 특유의 음색을 대단히 잘 표현한 훌륭한 연주로 듣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두 번째 연주자 18세의 이성진은 커티스 음악원 재학 중으로 에네스코의 비올라를 위한 콘서트 피스를 연주했다. 이제까지 높지도 낮지도 않은 음역의 답답함으로 별로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비올라를 새롭게 만나게 되는 시간이었다. 그녀의 자신에 찬 연주가 처음 듣는 곡 임에도 격하지 않은 은은함이 알펜시아의 정경과 하나가 되는 느낌이었다.
음악은 잡을 수도 볼 수도 없으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아 그 끝을 알 수 없는 상상의 세계로 가는 나래를 펴게 한다.  또한 우리들 각자가 열어 놓는 만큼의 그릇에 담겨지는 음악은 물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빨강도 주홍도 아닌 비올라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그녀의 살구 빛 드레스만큼이나 세련된 아름다운 연주였다.
세 번째 연주자는 17세의 줄리어드 음악원 예비학교 전액 장학생인 문태국. 부여 받은 재능을 어떻게 갈고 닦았는지를 충분히 보여준 정말로 감탄을 하게 한 훌륭한 연주였다.


장엄한 굵은 선율과 무거운 화음으로 떠오르는 차이코프스키, 그의 작품 중 변덕스러운 소품(Pezzo Capriccioso) 작품62. 블랑제의 3개의 첼로 소품. 그리고 마치 곤충들이 하늘을 경쟁하듯 나르는 것 같은 장면을 떠 올리게 하는, 제목과는 느낌이 조금 다른 물레의 노래(Spinning Song)는 포퍼(Popper)의 곡으로 일반인들이게 클래식을 쉽게 다가서게 할 수 있는 재미있는 곡이었다.
참으로 자랑스러웠다. 마치 악기가 몸의 일부인 것처럼 활이 손의 연장인 것처럼 자재자유로 연주하는 그들을 보는 시간이 언제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였다. 저명연주가들의 연주는 물론 기대한 만큼의 큰 감동을 받게 한다. 그러나 처음 만난 이 어린 학생들의 연주는 신선하고 맑은 가슴 벅찬 감동을 깊이 받게 했다. 부디 저들이 오늘 같은 훌륭한 연주를 준비 해 온 시간에 겪은 온갖 어려움을 극복 했듯이 앞으로 맞게 될 어떤 어려움도 다 이겨내리란 이 믿음이 실현되기를 기도했다.
마지막으로 무대에 오른 프랑스에 서 온 보리스 볼고로토(Boris Borgolotto)의 바이올린 연주는 군살을 뺀 듯 군더더기 없는 소리로 비에냐브스키(Wieniawski)의 파우스트 판타지(Faust Fantasy)와 Elgar의 사랑의 인사를 연주했다. 일부 성급한 박수의 노예 들이 첫 곡의 후반부에서 코다 같은 부분이 나오자 박수를 쳐서 민망케 했다. 왜 사람들은 오직 음악에서만 느낄 수 있는 끝 부분의 그 기막힌 여음을 즐기려 하지 않을까? 오로지 박수를 치기 위해 음악회에 온 사람 같다.
기대 이상의 기량을 보여준 떠오르는 별들 네 명의 찬란한 소리의 빛을 보며 한없이 부러웠고 자랑스러웠다. 김민겸, 이성진, 문태국 이 세 명의 이름이 대관령에서 전 세계로 뻗어 나가는 빛이 될 것임에 뿌듯하였고 푸른 눈의 보리스 볼고로토는 대관령과 한국을 오래 오래 기억하고 이 순간을 감사 하리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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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단 줄의 글이 없어도 그를 향해 귀를 열어 놓은 사람들에게 무수한 말을 전하고 모두 다른 색의 사람들을 하나가 되게 한다. 마음을 열어 놓은 이들에게는 따뜻함이 되기도 하고 마음 닫은 슬픈 이들에게는 위로가 되어 카타르시스가 되기도 한다. 모든 것이 다른 지구위의 인간들, 우리들의 서로 다른 소통의 장벽, 언어를 뛰어넘어 언어보다 더 많은 의미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베토벤은 신이 인간에게 주신 선물 중 가장 뛰어 난 선물이 음악이라 하지 않았겠는가. 이 선물을 제대로 누구나 받을 수 있도록 대관령국제 음악제가 앞장 서는 것이 뿌듯하기만 하다. 더불어 이 음악제를 통해 강원도가 함께 빛나도록 많은 사람들의 애정이 필요할 것이다.
세계의 공통어 악보를 잉태 하여 화음의 빛을 출산하는 ‘빛이 되어 Illumination’의 산실 알펜시아 콘서트홀을 나오니 하늘의 별들이 대관령 그 아름다운 능선 위로 소리의 빛이 되어 쏟아지고 있었다.

 

송경애 작곡가, 전 유봉여고 음악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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