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단체마다 선정하는 팔경의 의미 재검토가 필요해
물론 지역의 자랑거리를 선별하여 홍보하고자 하는 뜻을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팔경을 선정하는 과정이나 팔경을 통해 담아내려는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것에 있다. 팔경이 지니고 있는 의미를 간과하고 팔경이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기본 요건을 무시한 채, 지역 내에 있는 유명한 관광지 중에서 여덟곳을 대표적으로선정하는것이 팔경의전부라고생각해서는안 된다.
무엇보다 인식의 주객의 관계에 있어 주(主)와 객(客)이 바뀌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된다. 팔경의 주체는 사람이다. 그러나 요즘 새롭게 선정되고 있는 팔경들을 분석해보면, 지역의 자연물이나 인공물이 주체가 되고 오히려사람은 홍보의대상으로전락하고있음을 알 수 있다.
팔경과 구곡의 의미
팔경(八景)은 주역의 팔괘에서 유래되었다. 팔괘는 땅의 모든 방향을 의미하는 팔방의 개념 또한 지니고 있다. 팔경은 각각의 여덟 방향에 있는 대표적이면서 구체적인 8개의 아름다운(美)경관을 의미한다. 팔경은 일종의 자연물 아이콘으로서 각각의 경치는 자연스럽게 주변 경관을 연상하게 한다. 팔경은『주역(周易)』의 팔괘 원리를 자연에 적용하여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팔경시는『주역』팔괘 원리를
자연에 표상화한자연의 실경(實景)을 시로 읊은 것이라볼 수 있다.
팔경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중국 송적(宋迪)의 팔경도(八景圖)와 심약(沈約)의 팔영시(八詠詩)와 소식(蘇軾)의 시(詩)는『주역』팔괘 이론에 근거하여 여덟 개의‘경(景)’을 정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한국의 팔경은『주역』의 팔괘의 이론을 토대로 설정된 중국의 팔경을 모방한 것이며, 한국의 팔경시들은 중국의 팔경시를모방하여지은 것이다.
한편 구곡(九曲)은『주역』의 건괘에서 유래되었다. 『 주역(周易)』건(乾)괘에 대하여 공자가는“건(乾)의 큼이 구(九)를 쓰니 천하가 다스려지는 것”이라고 한 것을 보면 구(九)는 천하를 다스리는 숫자를 의미한다는것을 알 수 있다.
춘천팔경의 이미지
먼저 팔경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의 소상팔경(瀟湘八景)을 분석해 보자. 소상팔경이란 중국 후난성(湖南겛) 둥팅호(洞庭湖) 남쪽
의 샤오수이강(瀟水)과 샹장강(湘江)이 합류하는 곳에 있는 대표적인 8가지 아름다운 경치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팔경이란 개념은 먼저 그림과 같은 시각이미지로 등장하게 되었고, 이를 구체화하여 그린 팔경도(八景圖)에 영향을 받은 팔경시(八景詩)가 등장하면서 점차 이미지가 확대되어 갔다. 이렇게 시각 이미지와 시적 이미지로 제정된 팔경은 점차 이념화되어 가다가 결국 관념화되었고 마침내 이상화로 치닫게 되었다. 점차 실경묘사의성격은 사라지고만다.
우리나라에 소상팔경도가 알려지면서 나름의 팔경도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도입초기에는 중국의 소상을 상상력만으로 그리다가 후에는 우리나라 산수를 가지고 그리는 실경도로 전환하게 된다. 실경으로 변모하면서 이상화, 관념화보다는구체적이고실제적인묘사로 진행되었다.
팔경과 구곡을 전체적인 구도의 관점에서 보면, 구곡은 상하류로 이어진 선형으로 설정되었지만, 팔경은 자신이 관찰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설정하여 묘사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물론 팔경의 경우도 점차 범위가 확장되어보이지 않는 광범위한구역까지를포함시켜설정하기도한다.
구곡의 관찰자의 초점이 공간을 따라 이동을 하는 반면, 팔경은 관찰자의 초점을 고정시키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구곡을 관찰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이동하는 동선이 중요하다면, 팔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관찰하는지점(초점)을 선정하는것이 중요하다는것을 파악할수 있다.
예를 들어 관동팔경은 동해안을 따라 북에서 남으로 이어진 하나의 선형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단양팔경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흔히 단양팔경을 모두 순서대로 둘러보는 것이 수월치 않다고 이야기한다. 이것은 단양팔경이 관동팔경과 달리 동선을 따라 팔경이 선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단양팔경의 경우, 팔경 모두를 둘러볼 수 있는 하나의 초점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단양팔경의 설정은 우리나라 미학의 특징 중의 하나인 다(多)초점 묘사 방식을 따랐을 것으로 추측할 수있다.
중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팔경의 필수요소로 이수삼산(二水三山)을 들고 있다. 춘천은 소양강과 북한강의 두 물이 만나고 고산(孤山), 봉의산(鳳儀山), 삼악산(三岳山)의 세 산이 마주 서서 이수삼산(二水三山)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예로부터 두 물이 만나는 장소는 생명과 생명이 만나는 거룩하고 신비한 장소로 여겨져왔다.
춘천처럼 전체를 객관적으로 내려다볼 수 있는 삼악산, 중심에 서서 사방팔방을 조망할 수 있는 봉의산 그리고 두 강 사이에 신비스럽게 솟아있는 고산이 있어 다각적 시점에서 소양강 일대를 관찰 할 수 있는 곳이 전국에서 흔하지 않다. 춘천팔경의 근원으로서 소양정에 걸린 소양팔경을 분석하여보자.

소양팔경의 중심 초점이 소양정이라는 것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무수한 인물들이 소양정을 오르고 싶어 했다. 다산 역시 소양정에 대한 열망이 커서 1820년 봄에 배를 타고 북한강을 거슬러 청평산 등을 돌아보았고, 1823년 역시 봄(음력 4월)에 소양정을 오른다. 이러한 사실로부터춘천의이미지가봄과밀접한 관계를 갖고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팔경의 요건인 이수삼산
서울은 팔방을 조망하기에 좋은 산들에 둘러싸여 있다.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북악산과 중앙에서 팔방을 살필 수 있는 남산 그리고 강가의 작은 산들이 잘 어우러져 있다. 그러나 두 물이 합하는 곳이 아니어서팔경의요건을 갖추기에부족하다.
부산에는 용두산이라는 좋은 전망대를 가지고 있고, 부산 중심부를 두루 살펴볼 수 있는 봉래산 그리고 태종대를 소유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그러나 서울과 마찬가지로 두 물이 합하는 장소가 없기 때문에 팔경을 만족시킬 수가 없다.
춘천은 소양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 공간과 광각으로 관찰할 수 있는 삼악산, 다각적 관찰이 가능한 봉의산 또는 소양정이 있으며 근접 관찰이 용이한 고산의 세 산을 가지고 있다. 이들 세 산은 관점이 다른 세 개의 관망 장소이다. 그러나 현실적인 문제는 이들 산에 오르는 길과 전망대 모두 부족하다는점이다.
2008년 춘천시가 선정한 춘천팔경 (삼악산, 구곡폭포, 소양2교, 소양강댐, 공지천, 김유정문학촌, 청평사, 구봉산전망대)이나, 춘천시가 선정한 춘천비경8선(삼악산, 구곡폭포/검봉산, 의암호, 봉의산/봉의산성, 청평사/오봉산, 용화산, 남이섬, 소양댐/소양호)은 기본적으로선정에 문제가있다.
이들 팔경들은 주체와 객체의 인식에 있어 문제를 안고 있다. 팔경을 보고 감상하려는 주체인 사람 또는 관찰자를 중심으로 한 팔경선정이 아니라, 단순히 대상인 사물을 부각시키기 위한 선정이었다는 점이다. 이들 팔경에는 관찰자는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다. 이것은 곧바로 춘천을 찾아오는 관광객이 배제되어있다는것을 의미한다.
과거의 소양팔경은 자연물에 집중되어 있다. 현대 사회는 인공물의 가치 또한 높아지고 있다. 인공물을 포함한 새로운 팔경이 선정되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선정에 주체가 배제 되거나 이미지의고려가 없어 기억에남지 않는 팔경을선정한다면아무 의미가 없다.
新소양팔경을 위하여
팔경을 선정하는 방법으로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포커스를 중심으로 볼거리를조성하는 경우이다. 런던의 Big-eye나 파리의 에펠탑 그리고 우리나라의 남산타워를 예로 들 수 있다. 포커스를 중심으로 팔경을 선정하는 경우,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탑이나 높은 산 또는 건물이 필요하다. 이러한 방식으로 소양팔경을 선정하려면 춘천의 어느 지점을 포커스로 선정할 것인지가중요하다.
다른 하나는 선형(코스)으로 팔경을 조성하는 경우이다. 대표적으로 관동팔경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경우 동선을 고려하여 팔경의 코스를 선상(Liner)으로 만들어야 한다. 자동차로 움직이는 경우와 도보로 걷는경우를 각각 고려하여선정할 필요가있다.
선정의 방법과 더불어 중요한 것은 팔경의 내용과 이름을 결정하는 것이다. 팔경의 이름을 정할 때, 가능하면 사계절이 골고루 배당하고 시간대도 골고루 배당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지 않으면 집중적으로 관광객을 끌어 모을 계절과 시간대를 고려하여 팔경 선정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 위의 팔경 이미지 분석에서 알 수 있듯이 팔경에는 시간성과 공간성 그리고 미술성과 음악성을 배합시켜야 한다.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스토리텔링에서 시공간성의 확보는 필수적이다. 시간에는 기계적 시간과 의식의 시간이 있고, 공간에는 물리적 공간과 의미의 공간이 있다. 스토리텔링에서의미하는시공간성이란사건을 의미한다.
사건(event)은 기계적 시간과 물리적 공간의 결합을 의미적 시공간으로 바꾸어준다. 즉 사건은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전파시키는 힘이 있다. 이야기는 기억을 생산해낸다. 춘천의 어떤 기억을 심어줄 것인가 하는 것은 시공간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김유정 문학촌이 회자될 수 있었던 것은 실레마을이라는 공간 이미지와 봄이라는 시간 이미지가 결합되었기 때문이다. 김유정의 소설이 가능했던 것 역시 공간과 시간의 이미지가 결합되어 사건을 만들어내고이야기를생산할 수 있는 배경이형성되었기때문이다.
청평사 역시 회전문이란 공간 이미지와 여름이라는 시간 이미지가 결합되어 상사뱀이라는 이야기 생산해내었기에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수 있었다. 고산의 경우도 금강산에서 떠내려 온 바위라는 공간 이미지와 홍수라는 시간 이미지가 결합되어‘고산낙조’라는 아름다운 이미지를생산해낼 수 있었다.
따라서 팔경을 선정할 때, 단순히 8개의 경치만 선정할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의 독특한 정신문화세계를 반영하고 시대적 미의식을 반영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팔경 속에 사계절 이미지를 골고루 배치해야 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가능하면 2개씩 배당하는 것이 좋다. 시간대의 경우 역시 새벽부터 아침 오전과 오후 그리고 저녁과 한밤을 다르게 배치하여 변화를 줄 필요가있다.
색깔에 대한 이미지도 고려하여 빨, 노, 파와 흑과 백색을 균등하게 반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부드러움/강함, 두터움/연함, 집중/확산, 흐릿함/명료함 등의 대비되는 감각 이미지를 반영한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다양한 연령층의 취향을 고려하고 산, 강, 계곡, 벌판, 해, 달, 별 등의 이미지가 투영되면 좋다. 무엇보다 춘천의 특징인 안개, 노을, 호수, 섬, 맑은 밤하늘, 선명한 달과 별 부각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춘천팔경또는 소양팔경과연계하여전망대에관한구제적인제안을하고자 한다.
첫째, 봉의산 전망대의 개발이다. 봉의산에 전망대를 설치하기 위해서는 법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새롭게 조성될 옛 캠프페이지 구역과 연계하여 풀어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외지인들이 춘천역에 내렸을 때, 가장 인상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것이 봉의산 모습이다. 춘천을 팔방으로관망할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다.
둘째, 약사명동의 망대 주변의 재개발과 보존이다. 암암리에 네티즌 사이에 춘천의 숨은 볼거리로 가장 많이 알려진 곳이 망대골목이다. 전망이라는 면에서 망대만큼 훌륭한 곳이 없다. 춘천시가지를 팔방으로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셋째, 문화예술회관 뒤 언덕 부근의 개발이다. 문화예술회관과 몸짓극장 그리고 효자상과 연계될 수 있는 좋은 장소이다. 이곳 역시 춘천을 팔방으로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프랑스의 몽마르뜨 언덕이 유명해진 것은 정상에 있는 몽마르뜨 성당 때문만이 아니다. 파리를 내려다볼 수 있는 광장이 있어서만도 아니다. 거리의 음악가들과 화가들이 있는 문화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도시 전망과 문화가 어우러질수 있는 곳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