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7월 25일, 춘천은 ‘경춘선 기차’라는 근대 문명을 받아들인다. 춘천사람들은 이 기차를 애태우며 기다렸다.
京春線의 첫 汽笛聲 盛大한 歡迎裡 建設列車 春川着.
경춘선 개통을 7월 22일로 날 받아놓았으나 이번에 또 틀리지 않을까? 기다리다 못해 일반의 마음이 초조하던 바, 기점 경성역에서 종점 춘천역까지 공사가 완결되어 지난 26일 오후 5시 처녀지 춘천에 드디어 열차가 들어왔다. (동아일보. 1939. 6. 29)
동아일보 1939년 6월 29일자 신문은 경춘열차의 시운전 보도에서 몇 번이나 개통 예정일이 늦춰져 온 것에 안타까움을 표하며 초조하게 개통을 기다리던 춘천지역민의 마음을 보여주고 있다.
70여년이 지난 지금도, 춘천지역민들은 그렇게 경춘고속도로, 경춘복선 전철을 맞았다. 한 시간 남짓의 시간에 서울과 이어지는 교통망을 확보함으로써 춘천은 도처에 막국수 닭갈비 업소가 성행하고 있으며 예상을 뛰어넘은 숫자의 사람이 몰리고 있다. 춘천시민인 나도 이 전철 덕에 뻔질나게 서울로 공연과 전시를 보러 다니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이 시점 나와 내 주변사람들은 춘천이 어떤 모습으로 발전하는 것이냐는 물음을 자주 한다. 그리고 어느 샌가 슬슬 없어지고 있는 우리의 추억들을 못내 아쉬워하면서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해 전전긍긍한다.
변화는 빠르고 그 사이 정말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해야 할 것들이 마구 사라지지만 뚜렷한 가치 기준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근대를 상징하는 테크놀로지들은 전통적인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무너뜨렸고 삶의 리듬을 바꾸어 놓는 가운데 다양한 문화들이 뒤섞인 새로운 문화들을 만들어 냈다. 그 가운데 기차는 대표적 근대문명의 상징물이었다. 기차는 기존의 거리 개념을 파괴하면서 사람들을 빠르게 이동시켰고 이로 인해 사람들은 새로운 문화와 만나면서 제한된 공간에서 형성해온 삶의 양식들을 변화시켜 나갔다.
조금 과장한다면 기차는 전통사회의 생활양식과 새로운 문화가 만나는 지점에서 신문화를 싣고 와 우리들의 삶속에 이질적인 문화들을 뿌려 놓으며 삶의 균형을 흔들어 놓은 진앙지 역할을 한 것이다.
춘천을 하나의 예로 들고 있지만 요즘의 지역문화는 각종 미디어와 교통수단이 전파하는 새로운 문화들과 뒤섞이며 중심을 잃은 지 오래되었다.
요즘 춘천의 모습은 그런 상태를 실감케 한다. 사람들을 적당히 품어주는 뒷골목 문화와 함께 소박하지만 정감 넘치는 이야기 마당이었던 닭갈비집의 정취는 사라지고, 주인이 먹을 수 있도록 완벽하게 익혀주어야 먹는 먹을거리로만 남았고, 생활문화는 서울로 편입되어 가고 있다.
“호수는 평화와 고요와 사랑이 아니라 부질없이 설레는 막막함과 같은 유배감이었다. 춘천에서 나는 호반의 벤치가 아니라 호반의 유배와 만나고 춘천 출신 시인 최승호는 삼면이 물로 된 춘천에서 자궁, 나른한 권태, 몽상을 읽지만 나는 답답한 유배의식을 읽었다. 그래서인가? 최승호, 박찬일, 최수철 같은 춘천 출신 문인들은 자연이 아니라 방황하는 현대인의 내면을 노래한다. 유배의식이 현대성과 통하고 그런 의미에서 호반 도시춘천은 현대의 내면이다.”
춘천출신 시인 이승훈이 기억하는 고향 춘천은 지금 춘천에 없다.
옛것, 우리 것에 집착하는 것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변화시켜야 할 것인가 생각을 모아야 하지 않을까. 문화융합, 문화의 다원화, 이런 말들이 더 이상 생소한 것이 아닌 듯싶다.
속도전쟁을 하는 길, 유비쿼터스의 길에서 쏟아지는 새로운 문화들을 넉넉히 품어서 내 안으로 녹여낼 수 있는 힘이 우리 지역에 있는가, 냉정한 물음을 가져야 할 때이다.
유현옥 문화통신 편집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