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저민 사랑의 사연을 간직한 절집-춘천 청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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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길 40 -파란 하늘과 멀리 보이는 마을, 곁을 스치는 나무들을 바라보며 굽이굽이 산길을 돈다. 쾌청한 날의 이른 아침, 청평사(淸平寺)에 도착한다. 바람이 시원하다. 얼추 열다섯 해쯤 지났나 보다. 길이 예전과 좀 달라졌다. 매표소를 지나자 조금 전까지의 따분하고 짜증나던 일상은 금세 사라진다. 절집으로 오르는 산길은 어디나 다 이렇다. 길은 끊어지지 않고 세상과 이어져 있고, 조금 전에 보던 하늘이나 방금 쳐다보는 하늘이나 다 같은 하늘이건만, 절의 경내 이편과 저편은 사람의 마음가짐을 이렇게 다르게 한다. 불가에서는 세상 모든 곳이 다 부처의 땅이라고 하지만, 성스러운 땅과 그렇지 않은 땅은 틀림없이 그 경계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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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사람들의 활기찬 거리-춘천풍물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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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길․39
평범한 사람들의 활기찬 거리-춘천풍물시장
시장을 간다. 거기엔 숨 쉬는 삶이 있다. 대형마트 때문에 재래시장이 다 죽는다고 하지만, 대형마트든 재래시장이든 시장은 언제나 활기차다. 굳이 흠을 잡자면 대형마트(를 비롯해서 24시편의점이라든가 동네 슈퍼마켓)에는 정가대로 셈한 바코드를 붙여놓아 물건을 사고파는 과정에 흥정이 없다.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는 속담도 있듯이 시장 구경엔 흥정이 한몫을 하게 마련이다. 여기엔 공정거래란 경제용어가 끼어들 틈은 없겠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재래시장에서 물건의 값이란 엿장수 마음대로 아닌가. 전(廛)마다 가격이 다르다, 상인마다 값을 달리해서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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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청한 하늘, 포효하는 바다-양양 낙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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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길 38
쾌청한 하늘, 포효하는 바다-양양 낙산사
오래 내린 비가 그친 뒤의 하늘이다. 쾌청하다. 바다는 하늘을 닮아서 새파랄 테다. 7번 국도를 따라서 낙산사(洛山寺)를 가는 길이다.
대포는 사람으로 붐빈다. 피서 철임을 실감한다. 뭉게구름이 떠 있어 하늘은 더욱 파랗다. 그런데 하늘과 달리 바다는 흐리다. 사납다. 물결이 높다. 거듭해서 꾸역꾸역 뭍으로 밀려오고 있다. 물결이 몸을 세우지 않는 게 다행이다. 바다에 바짝 닿은 길은 파도에 깎이지 말라고 아래쪽에 콘크리트 벽을 대었다. 물결이 몸을 곧추 세워 솟구쳐 오른다면, 길은 벽을 때리는 물결의 포말을 뒤집어 써 흥건해졌을 테니 말이다.
자동차가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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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에서 동물원을 보다-에버랜드 주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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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길 37
동물원에서 동물원을 보다-에버랜드 주토피아
에버랜드에서 나는 갈 곳을 잃었다. 아니, 갈 곳이 없다. 굉음을 울리며 질주하는 T익스프레스를 비롯한 롤러코스터도, 환호성들도, 화사한 얼굴로 산책하는 가족들도, 볕 아래 따뜻한 길들도 모두 저 너머에 있다. 찾아갈 곳이 없는 건 아닐 테다. 그저 혼자서도 편안한 곳이 없을 뿐. 터벅터벅.
동물원이다. 주토피아(Zoo-Topia ?). 유토피아에서 한 글자를 바꾸었겠다. 그러고 보니 에버랜드도 네버랜드에서 한 글자를 바꾸지 않았나. 피터팬이 머무는 환상의 섬, 네버랜드. 유토피아와 마찬가지로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땅’이다. 그러니 에버랜드는 현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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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나라 숲길 산책-춘천 제이드 가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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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길 36
동화나라 숲길 산책-춘천 제이드 가든
아무리 걸어도 길이 편한 곳이 있다. 경치에 푹 빠져 힘겨움을 잊을 수도 있겠고, 길 자체가 편안해서일 수도 있겠다.
남산면 서천리 햇골 어름에 수목원이 들어섰다. 5월의 첫 주 문을 열었는데, 어린이날엔 인파가 엄청났단다. 해서, 서둘러 갔는데, 아홉 시에 연다나.
중세 유럽, 어느 영주의 성일 것 같은 건물이 우뚝하다. 건물의 한 편에 매표소가 있고 가운데에 들어가고 나오는 문이 있다. 영문 이탤릭 글씨로 “Jade Garden(제이드 가든)”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그다지 거부감이 일지 않는다. 수목원이니 정원이니 하는 것이 우리의 전통문화라기보다는 서양문화에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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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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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길 35 꽃이, 지고있다 - 춘천퇴계동에서삼천동, 서면
꽃이, 지고 있다. 지난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봄으로 접어든 다음에야 탈고(脫稿)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오래 걸렸다. 뜻하지않게 칩거한 셈이었다. 저만치 언덕에 활짝 핀 매화꽃이며 개나리꽃을 보면서 올해는 봄이 참 더디 온다고 생각했다. 이맘때면벌써꽃들이 수런거리는봄 길을 나섰을 터였다. 4월도 절반이 지나고서야 나들이한다. 그런데 꽃은, 꽃은 하마 지고 있었다. 더딘 건 봄이 아니라 나였다. 퇴계동과칠전동 어름, 언덕바지엔개나리꽃이, 낮은 산엔 진달래꽃이 한창이다. 개나리꽃은 한낮의 햇빛 아래서 더욱 샛노랗다. 반 고흐의 해바라기처럼 태양 아래에서 빛깔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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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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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길 34
역
길이 열렸다. 철판으로 된 울을 걷어내고 정지(整地) 작업 중이다. 역사(驛舍)가 있었던 흔적은 말끔하다. 길이 곧다. 궁궁궁……. 레일을 울리던 소리는 아슴푸레하다.
옛 역의 풍경은 지난해 가을 이른 아침, 서울 가면서 찍은 사진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추억의 갈피에서 역은 ‘하염없는 기다림’으로 남아 있다. 기다림은 그리움의 다른 얼굴이다. 플랫폼에 서면 언제나 뭉게뭉게 그리움이 인다. 아무도 약속한 이가 없는데도, 플랫폼에 서 있으면 누군가 반가운 이가 내릴 것만 같다. 출발 직전에 숨이 차서 뛰어왔더랬지. 일이 있어서, 함께 갈 수 없다고. 발갛게 상기된 얼굴은 기억나지 않는데, 숨이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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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희망, 공작산 생태숲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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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길 33
작은 희망, 공작산 생태숲 공원
숲은 그윽함이다. 웅숭깊어 바깥에 무방비로 노출되지 않은 편안함이다. 숲은 마을의 한가운데에서 또는 마을 어름에서 풍수비보(風水裨補)의 구실을 한다. 삿되고 잡스러운 귓것이며 액(厄)이며 살(煞)이며 하는 것들을 막아주는 마을지킴이다. 땅의 기운이 허(虛)하거나 땅의 생김새가 허술하거나 땅의 운수가 불길하거나 부정(不淨)하여서, 땅에 기대어 사는 이들의 운수가 모질거나 박복할 것을 예방함으로써 숙거나 꿇지 않고 삶의 고비들을 넘어갈 수 있도록 보태고 도와주는, 든든한 도사공(都沙工)이다.
숲은 바람을 제어하고 물을 갈무리해서 땅이 거칠어지지 않고 삶이 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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