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길 40 -파란 하늘과 멀리 보이는 마을, 곁을 스치는 나무들을 바라보며 굽이굽이 산길을 돈다. 쾌청한 날의 이른 아침, 청평사(淸平寺)에 도착한다. 바람이 시원하다. 얼추 열다섯 해쯤 지났나 보다. 길이 예전과 좀 달라졌다.매표소를 지나자 조금 전까지의 따분하고 짜증나던 일상은 금세 사라진다. 절집으로 오르는 산길은 어디나 다 이렇다. 길은 끊어지지 않고 세상과 이어져 있고, 조금 전에 보던 하늘이나 방금 쳐다보는 하늘이나 다 같은 하늘이건만, 절의 경내 이편과 저편은 사람의 마음가짐을 이렇게 다르게 한다. 불가에서는 세상 모든 곳이 다 부처의 땅이라고 하지만, 성스러운 땅과 그렇지 않은 땅은 틀림없이 그 경계가 있다 하겠다.
골짜기가 그윽하다. 촘촘한 나뭇잎들이 해를 가리고 있기 때문일 테다. 곁에서 흐르는 물과 물가로 바투 내리닫는 강파른 비탈들, 그 비탈에 잗다란 줄기를 가진 나무들이 제법 몸을 불려가는 둥치들 사이에서 다투어 키 재기를 한다. 그러면서 가지를 벋어가고 잎들을 빼곡하게 달아서 울울하고 창창한 숲을, 고즈넉한 숲길을 만들어내고 있다. 가을이어서 점점 수량이 줄고 있다. 처음 만나는 너럭바위가 물을 그러모아서 웅덩이를 만들었다. 물은 거기서 잠시 한숨을 쉬곤 느릿느릿 아래로 흘러간다.
너럭바위 위에 달래는 듯, 어르는 듯 뱀과 눈길을 마주하고 있는 여인의 브론즈가 아침햇살을 받으며 다소곳이 있다. ‘다소곳이’라, 그렇다. 뱀은 날씬하고 미끈하며 여인은 말쑥하고 다소곳하다. 단정하게 옷매무시한 여인에게 틈이 있다면 그것은 맨발이다. 채색화라면 가늘고 긴 발가락을 지닌 하얀 맨발일 테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것은 볼부터 붉어지는 농염하기 짝이 없는 상상의 원천이다.
『신증 동국여지승람』에 고려 광종 24년(973) 백암선원(白岩禪院)이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니, 청평사는 무척 역사 깊은 절이다. 경치 또한 뛰어나서 김시습과 정약용을 비롯한 수많은 시인과 묵객들이 다녀간 곳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상당한 분량으로 사찰의 내력을 기술해 놓고 있는데, 원나라 황실에서 청평사에 불경을 보내 황실을 안녕을 기원했다고 한다. 어림짐작해 본다면 청평사는 예로부터 신묘하고 영험한 절로 천하에 이름을 떨친 절이었을 테다. 여러 문화 유적이 산재해 있지만, 압권은 ‘공주와 상사뱀의 이야기’이다. 어린 시절부터 귀가 닳도록 그 이야기를 들었기에, 상사뱀 또는 옛이야기 속의 뱀에 관해서 상당한 흥미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야기 속의 뱀은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을 암유(暗喩)한다. 공주와 상사뱀의 이야기는, 어느 절집에서도 들을 수 없는 에로틱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공주가 순수의 표상이라면, 뱀은 폭력적인 격정, 사납게 꿈틀거리는 위험한 욕망의 알레고리(allegory)이다.
잠시 중국 4대 전설의 하나라는 백사(白蛇)의 슬픈 사랑이 덧놓이고 있다. 비 오는 날, 시후(서호)를 산책하던 허선은 백소정이라는 아름다운 여인을 만난다. 때마침 비가 내려, 허선이 여인에게 우산을 건네주면서 슬픈 사랑은 시작된다. 백소정은 백사의 화신이었다. 세상의 모든 요괴를 제자리로 돌려보내겠다는 집념을 가진 법해 스님이 백소정의 정체를 알게 된다. 마침내 스님은 처절한 혈투 끝에 백소정을 레이펑타(뇌봉탑)에 가두어 죽이고 만다. 2006년 2월, 쑤저우의 시후에 있는 레이펑타를 올랐다. 탑 안에는 빙 둘러 그 이야기를 커다랗게 목각해 놓았다. 내 마음을 사로잡은 건 그것보다 공원 입구 음식점 앞에 있던, 백소정에게 우산을 건네는 허선의 브론즈였다. 설레는 만남의 그 순간. 모르는 이들에게는 단지 조각이겠지만, 내 가슴은 잘게 저미어 지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흐린 날이어서 더욱 뭉클하였다. 그날 중국인에 대한 편견을 상당히 버렸다. 이야기에 섬세한 감동을 담아서 생생한 브론즈로 만들 수 있는 중국인. 그것은 그들이 감추고 있는 잠재력이었다.
화사(花蛇) 또는 구렁이로 대표되는 뱀은 인간의 뜨거운 욕망이다. 꿈틀꿈틀 대는 얼룩덜룩한 몸, 험한 돌과 거친 나무 사이도 매끈하게 미끄러져 나가는 몸,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이리저리 뒤얽히고 있는 몸, 그것들은 굳이 말로 형용하지 않더라도 웅숭깊은 원초적인 욕망의 알레고리가 되기에 충분하다. 어둔 밤의 옛이야기에서 여자의 몸을 얽는 상사뱀은 그 꼬리를 여자의 은밀한 곳에 붙여두고 있다. 그리곤 여자의 정기를 조금씩 취하면서 여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한낮의 이야기에서 뱀은 여자의 몸에 붙어서 밥을 빼앗아 먹는다는 이야기로 에둘러 전승되고 있다. 공주를 끔찍이 사랑했기에 청년은 뱀이 되어서도 공주에게 우악스럽게 폭력을 가할 수는 없었을 터. 그래서 공주의 여린 몸에 붙은 뱀은 조촐하고, 사연을 알고 있는 공주 또한 다정하게 눈길을 건넬 수 있었겠다.
그런데도 여전히 상사뱀은 이브를 유혹하던 뱀으로 떠오르니 이 무슨 끔찍한 상상이란 말인가. 인간의 욕망을 끊어내야 하는 절집의 경내에서 음험한 생각만 하고 있다. 공주가 절집으로 밥을 얻으러 가자 뱀은 잠시 공주의 몸에서 떨어진다. 기다리다 지친 뱀이 공주를 찾으러 절집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하늘에서 뇌성벽력과 함께 폭우가 쏟아져 뱀은 죽고 만다. 이렇게 끝나는 걸 보면, 이야기는 인간의 욕망이란 결국 헛된 일이니 모든 것을 끊어버리고 진리를 찾는 일에 전념하라는 부처의 가르침에 다름 아니다. 나는 하릴없는 세속의 욕망덩이라 고매한 가르침을 애써 외면하고 뱀에 집착하고 있다. 아둔한 중생이여!
거북바위를 지나니 두 갈래로 쏟아져 내리는 쌍폭이다. 바로 위가 구성폭포이다. 정약용은 쌍폭을 경운대폭포라고 했다는데, 오봉산을 예전에 경운산이라고 불렀던 것과 관련이 있을 테다. 구성폭포는 본래는 구송폭포였단다. 실제 누정이 있었는지, 아니면 아홉 그루 소나무가 운치를 자아내어 그런 이름을 붙였는지 알 수 없지만, 정약용은 이 폭포를 구송폭포라고 했단다. 그것이 와전되어서, 어느 때부턴가 구성폭포가 되었다. 봉황은 다섯 음률로 노래를 한다는데, 폭포는 아홉 음률로 노래를 하니 신묘하기 이를 데 없다. 아니면 누군가가 물소리를 아홉 가지로 나눌 수 있는 헤아림을 지녔을 테다. 그 누군가는 마음으로 세상의 이치를 꿰뚫어 볼 수 있는 현인(賢人)이 분명하겠다.
이른 아침에 절에 올라와 그런지 사람들이 많지 않다. 조금 오래 폭포를 바라보고 있다. 폭포는 높지도 낮지도 않아 좋다. 꼭 그만큼으로만 여기에 존재하고 있다. 폭포는 웅장하지 않아 몸이 위축되지 않는다. 그래도 폭포여서 여름철이라면 제법 너비를 갖추고 세차게 쏟아지겠지만 오늘은 차분하다. 아홉 소리는커녕 물 흐르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고요. 적막.
TV의 폭포는 항상 거칠고 사납게 쏟아져 내리면서 하얀 물보라를 날리며 커다란 소를 이루고, 사람들의 아우성과 굉음이 뒤섞여 사나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땅바닥에 내리꽂히는 빗발과 귀를 멀게 하며 제 소리만 내지르는 폭포는, TV가 만들어낸 ‘여름 고향’의 이미지이다. 그래서 이렇게 차분하게 내리는 폭포는 사람들에게 싱겁기 짝이 없을 수도 있겠다. 만들어진 이미지를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 폭포는 나이아가라나 이과수, 백두산이나 여산의 그것처럼 ‘비류직하삼천척’(飛流直下三千尺)을 떠올리게 하는 것만 폭포일 테다.
골짜기 초입에 있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사람들은 안내판을 읽곤 힐끔 쳐다보며 길을 오르고 있다. 길에서 몇 걸음 내려와 이렇게 조용히 폭포를 마음 놓고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하늘이 선사하는 축복이다. 마음이 잔잔해진다. 나뭇잎 사이로 햇빛이 어리비친다. 햇빛을 받는 암벽이 반쯤 환해지자 나머지는 저절로 어둡다. 그 한가운데에서 폭포는 그저 흘러내리고 있을 뿐이다.
진락공(眞樂公) 이자현(李資玄)의 부도 건너편이 영지(影池). 고려정원 터다. 일본 교토의 사이호사(西芳寺)의 고산수식(枯山水式) 정원보다 200여 년 앞섰다는데, 우리나라 정원의 역사 또는 형태를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라고 한다. 예전보다 풀이 많이 우거졌다. 가운데 큰 돌들은 전통적인 정원에서 한가운데 두었던 삼신산을 의미한다. 삼신산은 신선이 산다는 세 곳인데, 봉래산, 방장산, 영주산을 말한다. 현실에서 삼신산은 금강산(봉래산), 지리산(방장산), 한라산(영주산)이다. 비교적 사상으로부터 자유로웠던 고려시대의 정원이라 도교적인 꾸밈이 가능했을 테다. 조선시대의 도교는 풍류를 꾸며주는 장식으로서, 또는 성리학의 얽매임으로부터 일탈을 꿈꾸는 환상의 관문 구실을 했을 테다. 못에는 잉어들이 세상을 소요유하고 있는데, 기운차게 회전할 때마다 물 위에 동심원들이 태어났다가 사라지곤 한다.
산길을 오르니 석축으로 단을 높이 둔 곳에 커다란 소나무가 둘 우뚝하다. 산문(山門)을 대신 한 것처럼 보인다. 그 사이로 오봉산이 정정한데, 잠시 뒤 회전문(廻轉門, 보물 제164호)이 눈에 들어온다. 전설에는 이 문으로 들어오던 상사뱀이 벼락을 맞고 밖으로 돌아나갔대서 회전문이란다. 회전문은 빙글빙글 도는 문이 아니라, ‘윤회전생’(輪廻轉生)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다른 절집의 사천왕문(四天王門) 쯤에 해당하는데, 현재 청평사에서 극락보전과 함께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고려 문종 2년(1068) 이의(李顗)는 백암선원을 중건하여 보현원(普賢院)이라 하였다. 그 후 그의 아들 이자현이 이곳으로 내려와 은거하자 오봉산에 도적이며 호랑이와 이리가 없어졌다던가. 그래서 산 이름을 청평산으로 바꾸었고, 절집을 중창하여 문수원(文殊院)이라 고쳐 불렀단다. 보현원이나 문수원이나 모두 지혜를 나타내는 보현보살이나 문수보살에 따온 이름이다. 불타의 지혜로써 세상을 밝게 하여 뭇 중생들의 신산한 삶을 덜어주려는 뜻은 아니었을까. 문수원이 청평사로 이름을 바꾼 것은 조선 명종 5년(1550) 보우(普雨) 스님에 의해서이다. 청평사의 건물은 상당히 화려했다고 한다. 그러나 6 ·25전쟁으로 모두 불타 버리고 회전문과 극락보전만이 남았던 것이다.
회전문은 주심포 맞배지붕의 단순한 형식으로 되어 있으나 그래서 오히려 아름답다. 복원한 대웅전의 화려함과 대비되어 그 단출함이 무욕무상의 뜻을 은근히 드러내고 있다. 회전문을 보면, 상사뱀이 왜 여기서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짐작이 간다.
열다섯 해쯤 전에 회전문과 극락보전, 그리고 텅 빈 마당만 보았던 내게 새로 복원한 경운루와 대웅전, 나한전 등 건물들이 들어찬 마당은 무척 답답하다.
얼른 둘러보고 극락보전으로 올라간다. 팔작지붕에 단청이 예쁘지만 아담해서 그런가, 대웅전보다 소박하다. 기와 위에 풀이 돋아 있다. 세상과 인연을 끊은 이곳에서 그것은 곧 시간일 것이다. 건너편 산이 아름답다. 추녀 끝의 풍경이 바람에 흔들린다. 땡그랑. 대웅전 지붕 위에 쏟아지는 햇빛이 출렁인다. 800년이나 되었다는 주목의 잎에도 둥치에도 햇빛이 쏟아지고 있다. 갑자기 따스한 햇볕이 절집 마당에 하나 가득 내려앉는다. 땡그랑. 절집은 조용하고, 앞산이 환해진다. 우담발화라도 한 송이 피어나려나. 땡그랑. 적막도 잠시, 풀들이, 산들이 다시 수런대기 시작한다. 세상은 환하고 몸은 따뜻해진다. 황금빛 찬란한 절집이다.
조용히 언덕을 내려온다. 언덕 아래에 2008년 7월에 복원한 ‘진락공중수청평산문수원기’(眞樂公重修淸平山文殊院記) 비석이 있다. 이자현의 행적 등을 기록한 이 비석은 고려의 문장가인 김부철(金富轍)이 비문을 짓고 당대의 명필인 탄연(坦然)이 쓴 글씨로 유명하다. 본래의 비석은 받침돌만 남겨놓고 전쟁 때 청평사의 다른 건물들이 불탈 적에 함께 파괴되었단다. 문수원기 비문은 이 분야의 전공자나 서예가들에게는 꿈에서라도 한번 보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것을 강원지역문화연구회가 춘천시의 지원을 받아서, 문헌과 탁본, 사진 등을 꼼꼼하게 비교 분석하는 과정을 통해 천신만고 끝에 복원해 낸 것이다.
그 옆에 이정표가 서 있다.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환적대사의 부도와 해탈문, 적멸보궁이 있을 테다. 그러나 더 이상의 여유가 없어 여기에서 마음을 접는다. 시간이 끊어진 곳에서 시간에 쫓기는 중생이여!
이정표는 해학적이다. ‘해우소’라는 글씨 옆에 동자승이 궁둥이를 내놓곤 머쓱해 하고 있는 그림이 있다. 채마밭과 해우소가 있는 갈림길의 이정표엔 ‘해우소’를 향하여 멧돼지가 콧바람을 내 뿜으며 질주하고 있다.
허허. 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