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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장공 한백록 장군 전사지-미조항

 

 

조선의 아픈 역사인 임진왜란 당시 첫 해전인 옥포해전은 1592년 5월 전라좌수사 이순신이 일본수군을 대파한 전투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순신은 임진왜란에서 빛나는 전공을 세우고 역사에 길이 남아있다. 그의 흔적은 엄청난 선양사업으로 인해 도처에서 빛을 발한다.

4월 8일 한백록기념사업회가 추진한 역사문화답사를 떠났다. 1박2일의 일정이었다.

충장공 한백록(1555~1592). 춘천 서면출생으로 25세에 무과에 합격하고 진잠현감을 지녔고 지세포만호였다. 그리고 임진왜란을 맞아 전투에 참여한다.

옥포해전을 시작으로 그해 7월 미조항 전투에서 숨을 거두기까지 짧은 시간이지만 그의 활동은 두드러졌고 후에 병조판서가 작위와 충장(忠壯)이라는 시호를 받는 등 조선은 그의 공을 기억했다. 그의 시신은 노비 득충에 의해 고향으로 이장되어 안치되어 있고 정려문도 남아있다. 하지만 그의 고향에서는 그리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최근 기념사업회가 생기면서 다시 그가 역사에서 호명되고 있다.

 

이번 답사는 기념사업회가 3번째 추진한 한백록 흔적을 따라가는 여행이었다. 경남 사천, 미조, 그리고 노량해전과 임진왜란의 역사, 유물이 있는 진주박물관 등을 돌아보는 일정이었다.

역사적 인물을 따라가는 시간여행은 조금은 엄숙하다. 여행 내내 그의 흔적을 되새기고 과거와 현재를 잇는 작업을 하게 된다. 특히 이번 답사에서 미조항 한백록장군의 가묘 터를 돌아보는 일은 사람들을 숙연하게 했다.

임진왜란 당시 해안 깊은 곳으로 시체가 떠밀려 왔고 그 중 한백록 장군의 시신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곳 해안 높은 곳에 임시로 묘소가 있었다는 것. 그런 이야기들의 지역주민들 사이에 전해온다는 것이 놀랍기만 했다. 그 긴 시간의 이야기, 그리고 보여지는 흔적들…….

 

답사 내내 수많은 이순신 장군의 유적지가 빛났다. 우리의 여정은 그분 뒤에 가려있는 사람을 찾아 가물한 흔적을 뒤지는 시간이었다, 역사인물은 시대의 필요에 따라 그 업적이 확장되고 축소되기도 한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한사람의 빛나는 지도자의 신화에 매달려왔다. 역사인물을 선양하는 사업이 또 다른 인물 키우기가 아니라 다양한 시선을 존중하는 방식을 고민할 때라는 생각이 드는 답사여행이었다. 비록 역사에 기록되어 있지 못하지만 당당한 자기 몫을 했던 사람들, 그들의 흔적으로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지표를 새겨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