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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까마귀> 공연에는 소설 본래의 텍스트가 가진 리얼리티 를 완벽하게 추구하고, 연극을 위해 쓰이지 않은 텍스트를 무대화한 배우가 있다.
배우는 바로 극장 ‘몸짓’이다.

 

 

몸짓극장.jpg일제강점기 때 일본은 전쟁을 위해 많은 조선인을 강제징용했다. 징용된 조선인 중 일부는 일본군으로, 일부는 위안부로 그리고 또 많은 이들이 탄광으로 끌려갔다. 그들은 지옥 같은 전쟁터에서 고통에 시달리다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죽어갔다.


일본은 바다 밑 깊은 곳의 석탄을 캐기 위해 하시마섬에 탄광을 만들고 6만여 명의 조선인에게 강제로 노역을 시켰다. 섬의 모양이 군함을 닮아 ‘군함도’라고 불리기도 한다. 작가 한수산은 ‘군함도’에서 슬프게 살다 죽어간 조선인의 이야기를『까마귀』라는 소설에 담았다. 그 소설을 문화강대국에서 무대에 올린 것이 연극 <까마귀>이다.


제목이 까마귀인 것이 일본에 까마귀가 많아서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연극 속 금화의 대사에서 물새 한 마리 살지 않고 오직 까마귀만이 득실대는 섬 군함도를 이야기한다. 이는 죽음의 섬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탄광에서 일하는 조선인들의 검은 몸뚱이를 표현하는 듯하다. 백의민족이 나라를 잃어 희망이 없는 어둠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또한, 많은 이들이 노동에, 굶주림에, 병마에 쓰러져 죽으면 조장(鳥葬)을 지내듯이 까마귀들이 가는 이들의 육신을 거뒀으리라. 그래서 이 연극의 제목이 <까마귀>인듯하다

 

연극 <까마귀>는 시종일관 무겁다

 

몸짓극장2.jpg보통의 연극은 흐름에 따라 템포를 조절하기도 하고, 작은 이야기와 큰 이야기를 적절하게 배치하여 긴장과 이완을 주고, 즐거움 뒤에 슬픔을 표현하거나 불행 뒤에 작은 희망을 배치하여 지루함을 없애고 보는 즐거움을 준다. 그러나 연극 <까마귀>는 시종일관 슬프고 무겁다. 연극 <까마귀>는 군함도에서 살다 죽어간 많은 조선인의 모습 중 일부를 연극이라는 창으로 들여다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 어떠한 연극적 장치도 필요 없다. 그러한 미장센의 시도 자체가 사치일 것이다.
이 연극에서는 사랑도 슬픔이다. 지옥에서 잡초처럼 돋아난 금화와 우석의 사랑이나 어렵게 전해진 명국의 득남 소식도 이루어질 수 없고 만날 수 없기에 그저 슬플 뿐이다. 연극 <까마귀>는 무대에 오른 것만으로도 가치가 충분하다.

 

축제극장 ‘몸짓’을 극적으로 활용하다

 

몸짓극장3.jpg연극 <까마귀>를 연극적 특성으로 바라본다면, 몇 가지 좋은 점과 아쉬운 점이 보인다.
무대 위쪽에 브릿지를 설치하여 지상의 공간을 상징하고 그 아래를 탄광과 조선인이 사는 숙소 등으로 표현한 무대는 일본인과 조선인의 관계, 즉 지배하는 자와 지배받는 자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로 축제극장 ‘몸짓’의 특징을 잘 활용하였다. 브릿지와 무대 바닥 높이 차이가 상당해 무대 바닥의 조선인이 브릿지 위의 일본인을 바라볼 때 기형적으로 고개를 들고 쳐다봐야 한다.
당시 일본인과 조선인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잘 보여준다.


무대에서 공간을 분할하고 공간에 의미를 주고 그 공간을 이용하여 연기하고 시선을 처리하는 등의 기본적 언어, 즉 통념적으로 사용하는 연극적 기호들이 있는데, 연극 <까마귀>는 그 기호가 무시되는 장면들이 많은 편이다. 처음에는 어떤 의도를 가진 것으로 이해하려고 했으나 어떤 의도나 통일성을 발견하지 못했다. 이는 연극을 만드는 이들이 연극적 기호들을 이해하지 못해서 나타난 현상이다.


예를 들면 암전과 무대 전환이 필요 이상으로 많아 극 흐름을 방해하는가 하면, 무대 세트는 공간을 압도하지만 활용도가 부족하다. 배우 또한 연기자라고 하기에는 어색한 연기를 하는 이들이 많았다. 아마도 다원예술단체인 문화강대국의 특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전문 연기자가 아닌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문화 활동을 하는 구성원들이 연기하다 보니 생기는 현상으로 이해된다.
앞으로 체계적인 연극적 연구와 훈련을 통해 기호적 통일성을 갖춘다면 훨씬 더 훌륭한 문화강대국만의 연극이 만들어질 것이라 기대한다.

 

용선중 연극 연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