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길 36
동화나라 숲길 산책-춘천 제이드 가든
아무리 걸어도 길이 편한 곳이 있다. 경치에 푹 빠져 힘겨움을 잊을 수도 있겠고, 길 자체가 편안해서일 수도 있겠다.
남산면 서천리 햇골 어름에 수목원이 들어섰다. 5월의 첫 주 문을 열었는데, 어린이날엔 인파가 엄청났단다. 해서, 서둘러 갔는데, 아홉 시에 연다나.
중세 유럽, 어느 영주의 성일 것 같은 건물이 우뚝하다. 건물의 한 편에 매표소가 있고 가운데에 들어가고 나오는 문이 있다. 영문 이탤릭 글씨로 “Jade Garden(제이드 가든)”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그다지 거부감이 일지 않는다. 수목원이니 정원이니 하는 것이 우리의 전통문화라기보다는 서양문화에 가까운데다가, 수목원의 수종이나 초목의 식재, 조경방식이나 구성 등이 전통문화에서 비켜 서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춘천이 마임축제와 인형극 등 국제적으로 알려진 축제와 함께 닭갈비처럼 일본과 중국에 알려진 음식문화를 지닌 국제도시(?)이고 보면, 햇골이니 서천이니 춘천이니 하는 지명에 기대거나 굳이 우리말을 찾아서 이름을 붙이는 것보다는 이런 이름을 붙이는 것도 나름대로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각시가 고우면 처갓집 말뚝보고도 절을 한댔다. 이제 저 안에 들어가면 모든 것이 흐뭇할 테다.
출입문에서 안쪽을 기웃하니, 숲길이 그윽한데 햇빛은 충만하다. 볕이 떨어져 흐르는 길은 언뜻 보이는 수목들과 더불어 동화 나라의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막 옅은 잎을 틔운 나무들과, 그 나무들 사이로 벋은 오솔길, 첩첩한 산등성이가 오월의 하늘과 함께 푸르다. 햇빛은 눈부시고 볕은 포근해서 마음이 달뜨고 있다.
“숲 속에서 만나는 작은 유럽”, 제이드 가든이 스스로 수식한 말이다. 이국의 정경이란 내 것과 달라서 으레 동경의 대상이 되기 마련이다.
근대에 접어들면서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아시아 대륙은 유럽의 식민지였던 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다. 어쩌면 유럽에 대한 동경은 그때 비롯되었을지도 모른다. 또는 오랜 역사와 문화를 지니고 있다는 동종의 자부심에서 싹텄거나 아니면 독주하는 미국의 힘에 대한 대안으로써 유럽을 기대할 수도 있겠다.

들어서서 왼쪽으로 걸음을 두면, 맑은 하늘 아래 햇빛이 묻어나는 푸른 잔디가 펼쳐졌는데, 양옆으로 작은 분수대가 가지런히 섰다. 물이 명랑하게 솟아나고 흥건하게 넘쳐서 그 아래 물길을 따라 흐른다. ‘이탈리안 가든’이다. 제이드 가든이 유럽풍이란 걸 처음 실감할 수 있는 곳이겠다. 멀리 산의 잔등이 중세풍의 건물과 어우러져 풍광이 그만이다. 한동안 거기 서 있었다. 고대 로마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 이런 정원을 둔 원로원 의원이나 장군의 집이 있었다. 과일나무가 있는데 청춘의 여자는 열매를 따서 남자에게 건넸지. 여자 또한 과일을 입에 넣고 살짝 깨물었는데, 과즙 때문이었을까, 촉촉한 입술과 은근한 눈빛이 기억에 선명하다.
바로 옆이 ‘키친 가든’인데, 유기농으로 채소류와 과실류를 재배하는 곳이란다. 저 중세풍 건물엔 레스토랑이 있다. 그곳에서 여기서 생산되는 것을 활용하여 맛깔스러운 음식으로 내놓는단다. 가는 철골을 엮어서 급한 아치형의 틀을 세웠다. 옆에는 나무로 뼈대를 세워 집의 형상을 만들어 놓았다. 덩굴식물들은 저마다 그것들의 기둥을 감아 오르고 있다. 머지않아 등나무 따위의 덩굴식물들이 진초록의 터널을 만들 것이다. 언제나처럼 덩굴손들은 도발적이다. 바람이 일자 그것들은 좌우로 흔들고 위아래로 곤댓짓하며 서로 말을 나누는 것 같다. 재작년 석파령을 넘으면서 만난 칡의 덩굴손만큼 위협적이진 않았지만, 그것들이 무언가 거머쥐려는 듯 이리저리 탐색하는 모습을 보면, 섬뜩하다.
길가에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아주 작은 폭포처럼 만들어 놓았다. 물은 한 필의 베처럼 넓고 고르게 흘러내린다. 파인더에 담고 보니, 물이 내리는 것은 일정하지 않다. 흥부 마누라의 치마처럼 중간에 커다란 구멍이 있다. 물은 일정하게 낙하하는 것이 아니어서 그 밑단은 울퉁불퉁하다. 모든 움직이는 것들은 순간순간 마디마디 끊어진 동작들의 촘촘한 반복이다. 시각이란 정밀한 것이 아니어서 불연속적인 것을 하나로 이어진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니, 진실과는 그만큼 거리가 먼 것이겠다. 그걸 알면서도 왜 물줄기들은 균등하게 낙하하고 있다고 생각했을까.
여기저기 하늘로 솟은 교목들은 본래부터 여기 있었을 테다. 마을 어귀에 섰으면 성황나무의 구실을 충분히 했을 거목이 있다. 느티나무거나 느릅나무일 테다(나는 나무를 잘 구분하지 못한다). 그 옆에 은행나무를 울타리로 삼아 미로를 만들어 놓았다. 지금은 나무가 어려서 길이 눈에 환히 뵈지만, 이것들이 자라서 몸집을 불리면 재미난 놀이공간이 될 테다.
2004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교외의 수목원 ‘따만 붕아’(Taman Bunga), 크기만 큰 것이 아니라 아기자기하게 잘 가꾸어 놓았다. 거기에 ‘미노타우로스의 정원’이라는 미로가 있었다. 길을 찾지 못해서 무척 애를 먹었지. 그 뒤 참으로 웃긴 일이 있었다. 제주도(였던가?)에 미로원을 만들고 ‘동양 최초’라고 보도했던 일이 있다. 우리나라는 이상하게도 최초와 최고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옆에는 한 눈에 미로를 살필 수 있는, 나무로 얽어놓은 집이 있다. 출렁다리를 만들어 놓아서 어른이고 아이들이고 한바탕 즐길만하다(내려오다가 보니 과연 아이들의 세상이었다). 언덕바지를 올라 ‘이끼원’ 가는 고갯길엔 ‘마녀의 집’이라며 댕그라니 허름한 오두막을 한 채 지었다. 놀이공간으로 마련해 둔 거란다. 그러니 서너 해 뒤, 나무들이 낙락하고 울창해지면, 이곳에선 모두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을 테다.
‘꽃물결원’은 산책길이다. 물결처럼 굽이진 산책길. 다른 수목원과 달리 나무도막과 껍질, 삭정이 등으로 길을 덮어놓아서 푹신푹신하다. 토양을 보호하고 보양함과 동시에 몸이 불편하거나 연로하신 분들을 위한 배려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은은한 나무 향은 잔잔하게 흐르는 음악과 더불어 마음을 편안하고 상쾌하게 만들어 준다. 산책길 곳곳에는 벤치가 놓여 있고, 길가에는 온갖 꽃들을 심어 놓았다. 사계절 내내 다양한 꽃들과 푸른 잎들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란다.
직선이 아닌 곡선의 길. 직선으로 달려가는 일상에서, 하루쯤은 여유를 가지고 느리게 걸어가는 삶을 생각해 볼 수 있는, 행복한 길이겠다. 음악이 나오는 스피커는 돌처럼 보이도록 만들어 놓았다. 인공의 흔적이 자연 속에 조용히 스며들어 자취가 없다. 전체 분위기가 동화 속의 세상 같고 길이 편하니, 마음이 가볍고 몸이 가뿐할 수밖에.

중간쯤에 연못이 있는데 한가운데 분수를 두어 물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아침 해가 무지개를 빚어내어 부채꼴로 펼쳐지는 분수의 아랫도리에 걸었다. 고만 마음을 놓쳤다. 언제부턴가 비 갠 하늘에서 커다랗게 걸린 무지개를 볼 수 없다. 그러니 작지만 오채영롱한 무지개를 두고 어찌 발걸음을 뗄 수 있겠느냐. 여기는 수생식물원이다. 붓꽃과 부들, 그리고 버드나무 등을 이곳에 심어 놓았다는데, 여름이 되어야 제 분위기가 날 테다.
그 언저리에 계곡물이 흘러내린다. ‘워터풀(waterfall) 가든’이다. 건너가는 다리와 똑같은 다리가 저만치 위에도 걸려 있다.
저 끄트머리에서는 폭포처럼 물이 여러 단을 흘러내리는데, 푸른 잎 사이로 햇빛이 비치니 환상적이다. 참으로 오묘한 것이 햇빛이다. 그저 푸른 나무 사이로 물이 흐르는 계곡일 뿐인데, 햇빛으로써 열대우림의 한 풍광을 연상하도록 만드니 말이다.
나무계단을 따라 언덕을 오르니 수생식물원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브로슈어(brochure)에는 길을 따라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순환 코스를 추천하고 있지만, 그저 마음대로 발길 닿는 대로 걷는다. ‘로도덴드론(Rhododendron) 가든’이라, 발음하기도 어렵다. 나라 안과 밖의 온갖 만병초가 있는 곳이니, 만병초원이다. 윤기 나는 잎이 짙푸르다. 만 가지 병을 고친다는 신비의 식물. 양치식물들도 함께 어우러져, 봄철인데도 제법 울창하다. 나무로 낸 산책로 양옆에는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교목들이 조밀하다. 진초록의 세상, 이 구역이야말로 수목원이라 할 만하다. 베인 나무의 나이테가 흙에 반쯤 드러나 있다. 나무의 죽음. 옆에는 푸른 고비가 하나 다소곳하다. 죽음과 탄생이라…….
물리적인 시간은 수직으로 흐르지만, 이야기 속의 시간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나란히 공존한다. 로베르트 슈벤트케의 <시간 여행자의 아내>(The Time Traveler’s Wife, 2009)라는 영화에서도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한꺼번에 놓여 있다. 지금 우리가 보는 별빛은 몇 광년 전의 것이다. 그것은 이미 수십 년 저쪽 과거의 빛이다. 그러니 과거와 현재가 수십 년의 상거를 무시하고 나란히 존재하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시간’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비껴서 건너편은 ‘드라이 가든’인데, 건조지대에서도 잘 자라는 국내외의 식물들을 심은 곳이란다. 잔돌들이 드러난 비탈은 강파르다. 비탈 아래엔 눈향나무와 할미꽃들이 단정하다. 어린 시절 지천으로 보던 할미꽃도 이제는 쉽게 볼 수 없다. 곁에는 상당히 큰 뽕나무가 있다. 양잠을 위해 밭에서 대량으로 기르는 것만을 본 내게 홀로 우뚝한 이 뽕나무는 그저 놀라울 뿐이다.
비탈을 올라 고개를 넘는다. 여기만 해도 높이가 있는 산허리다. 하늘이 가깝다. 내리막길은 나무가 우거진 오솔길이다. 돌아서서 바라보니 하늘은 파랗다. 산비탈을 향하여 가지를 뻗은 나무들과 비탈진 언덕에 맨몸으로 선 자잘한 나무들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숲을 빠져나오는 곳에 또 하나의 계곡이 있다. 제이드 가든은 생각보다 수량이 풍부한 곳이다. 갈래진 여러 물줄기들이 이곳의 수목들을 쑥쑥 자라게 하고 풍성하게 만들어주고 있는 게다. 애초 이곳은 스키장으로 계획했다가 환경 조건이 맞지 않아서 수목원으로 계획을 변경하고 몇 년 전부터 조성해 왔단다.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계곡의 돌에는 이끼가 잔뜩 끼어 있다. 이 위로 올라가면 ‘이끼원’일 테다. 이 구역 또한 여름철에 수풀이 울울하고 창창해야 제격이겠다. 계곡을 따라 오르지 않고 비탈을 따라 오르니 수목원의 끝이다. 겹벚나무의 꽃이 활짝 피었다. 꽃송이들을 파인더에 담는데, 한들한들 낯부끄러워한다. 매끄러운 살결을 지닌 하얀 백송이 정정하다. 내내 흐르는 팝송은 니나 사이먼(Nina Simone)의 목소리일까. 길가에 선 공원관리인의 차는 <쥬라기 공원>(Jurassic Park, 1993)에나 나옴직한 차다.
첩첩한 산마루의 등성이들, 더 멀리 화악산의 마루는 흐리다. 눈앞은, 골프장 ‘제이드 팰리스’이다. 며칠 전 타이거 우즈가 다녀갔단다. 그는 여자 문제로 하루아침에 하늘 끝에서 땅의 밑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래서일까, 그가 왔다갔다는데도 별 이야기가 없다. 그런 스캔들이야 넘치고 넘치지만, 꽤나 시끄러웠던 것은, 젊은 나이에 황제라고 불린 골퍼 이전에 흑인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언덕을 내려오면서 보니 야생화들을 심어 놓았다. 백합 등 다년초 구근식물들이란다. 보랏빛의 동글동글한 꽃들이 앙증맞다. 물어보니 관리인들도 처음이라 잘 모르겠다고 미안해한다. 뭐, 그럴 것까지야, 하는데, 정장차림의 직원이 잠시 기다리시라며 전화를 한다. 그러더니 ‘무스카리’란다. 처음이어서 그럴까. 참으로 친절하다. 무스카리와 함께 있는 관목들은 블루베리이다. 둥치가 더욱 굵고 굳어져서 마침내 짙푸른 열매를 맺을 때, 다시 찾아와야겠다.
바로 아래는 목련원이다. 진자주 목련과 황목련의 꽃이 소담하다. 이 둘은 희귀종이라는데, 천리포수목원에 있단다. 이곳을 천리포수목원 팀이 참여해서 조성했다는 게 사실인 것 같다.
붓꽃들을 감상할 수 있는 ‘아이리스 가든’을 지나, 수생식물원을 곁눈으로 보는가 싶더니 어느 새 쉼터인 ‘피크닉 가든’이다. 여기서는 취사를 할 수 없다. 음식물을 가지고 들어오지 못하는 건 다른 수목원들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매점을 이용해 간단한 간식은 사 먹을 수 있다.
‘키친 가든’ 바로 앞에 ‘고산온실’이 있다. 알프스, 히말라야, 백두산 등에서 자라는 고산식물들을 심어 놓았는데, 생각보다 공간이 작다. 주황빛 양귀비가 눈길을 끈다. 빨간 양귀비꽃을 본 건 한택식물원이었지. 오월의 햇빛엔 오히려 주황빛이 곱다. 양귀비의 아름다움에 빗대서 꽃 이름을 지었다는 게 허황된 말을 아니다. 그러나 양귀비의 죽음이 비극이듯이, 이 꽃에 취하면 그 삶 또한 비극적일 수밖에 없다. 법적으로는 개인이 기를 수 없으니, 수목원에서나 완상할 수 있겠다.
현재 제이드 가든은 163,528㎡의 공간에 만병초류, 블루베리류, 붓꽃류, 단풍나무류 등 총 2,662종을 지니고 있단다. 이미 이름이 널리 알려진 ‘강원도립화목원’과 앞으로 중도에 조성할 꽃 공원까지 갖추면, 춘천도 꽃 축제를 벌이는 안면도나 고양 부럽지 않은 꽃동네가 될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