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마당
2012-05-07
2012-03-28
2012-03-07
2012-02-02
줌인 줌아웃
이상한 꽃잔치 - 문화통신 file
2012-05-05
들꽃, 봄을 말하다 - 문화통신 file
2012-04-16
2012-02-21
2011-11-29
소양호 모습 - 문화통신 file
2011-11-15
홍보마당

달이 없어도 별이 좋은 밤,
말은 어디에 있을까

 

달이 없어도 별이 좋은 밤이었다. 아부제의 술냄새가 조금도 싫지 않았다.
노새는 연신 딸랑딸랑 방울을 울리고, 길 옆은 온통 메밀밭이었다.

img06.jpg

그러니까 길은 반쪽달의 은색 달빛이 내려 쏘이고, 바람이라도 불면 사라락~ 하고 소금 쓸리는 소리가 날듯 한 한 밤중이면 좋겠다. 그 길 위로 그닥 서두를 이유가 없는 산보 같은 행장으로 걸어가는 나귀나 노새의 발굽소리가 들려도 좋겠다. 그리하여 하늘을 꽉 채운 달빛과 땅으로 가득한 메밀꽃이 서로 호젓하게 낭창한 시골길이면 더욱이 좋겠다.

img07.jpg

이효석의 ‘메밀 꽃 필 무렵’이라는 소설 얘기가 아니다. 그 풍광이야 조금 달라졌다고 한들, 그 주된 감흥은 조금도 변하지 않은 반세기도 넘은 후의 이순원의 소설을 읽고 난 뒤의 느낌이 그러하다. 소설은 주인공이 중학교 1학년이던 60년대 말 쯤을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은 마흔이 넘도록 자식이 없는 당숙의 양아들로 들기 위해 우여곡절 끝에 대관령 길을 걸어 봉평에 있는 당숙을 만나 화해하는 과정을 그렸는데, 이 둘이 걷는 밤길의 풍광이 영락없는 ‘메밀 꽃 필 무렵’을 닮았다.

 

암말과 수나귀 사이에서 태어난 노새는 생식력도 없는 큰 자지를 거들먹거리며, 한창 사춘기를 지내고 있는 주인공 수호의 마음을 창피하고 당혹스럽게 만든다. 작은 아버지와 같이 식구의 밥벌이를 감당하고 있는 ‘은별’은 그러나 당시에는 단지 부끄러움을 증폭시키는 거추장스런 존재였을 뿐이다. 그러고 보면 예전, 가난이 모든 이들의 공통분모였을 때 집에서 키우는 가축들은 지금과는 사뭇 다른 존재였던 것이다.
예전에는 집집마다 한 두 마리의 소가 자랑스럽게 외양간에서 음메거렸고, 닭이나 돼지도 너 댓 마리, 개도 한 두어 마리쯤이 그야말로 고정된 풍경처럼 있었다. 또한, 단순히 기르는 것만이 아닌 어엿한 식구로 인정되고는 했었다. 그러던 것이 경제상의 이유로, 또 환경상의 이유로 방목장으로, 양계장으로 기업화되고 타자화 되는 과정을 겪었던 것이다. 이는 어떤 면에서 대가족이 핵가족화 되는 근대화 방식과 닮은 모습을 보인다.

 

img08.jpg 어찌됐던 작가 이순원이 굳이 말도 아닌 나귀를 일러 ‘말을 찾아서’라는 제목을 붙인 것은 의미심장해 보인다. 그만큼 말(馬)과 말(言)의 이중적 장치를 교묘히 사용했다고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아부지’와 ‘아부제’라고 부르는 호칭의 차이만큼, 주인공 나름의 조심스럽고 세심한 마음의 결이 드러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달이 없어도 별이 좋은 밤이었다. 아부제의 술냄새가 조금도 싫지 않았다.
노새는 연신 딸랑딸랑 방울을 울리고, 길 옆은 온통 메밀밭이었다.

 

말(馬)과 인류는 약 4천 년 전부터 서로 관계를 가져왔다고 한다. 그렇지만 아직도 말의 야생성은 남아있다고 한다. 만약 인류역사에 말이 없었다면 많은 것이 달라졌을 것이다. 말이 없는 알렉산더, 징기스칸, 나폴레옹을 상상할 수 없듯이, 인류는 달나라에 가기 60여 년 전까지 대부분의 힘을 말에 의지했던 시대가 엄연히 이어졌던 것이다. 또한, 말(言)은 이미 인류의 문명과 같은 것이어서 새삼 거론하는 것조차 진부한 지경이다.

 

이처럼 말(馬)과 말(言)을 둘러 싼 이중적 의미구조는 중층적이다. 소설 속에서 당숙과 수호가 갈등을 빚고 나중에 화해하는 과정은 그때까지 유지돼오던 ‘대가족’이라는 전통이 주는 심리적 영향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작가가 찾던 ‘말’의 의미는 이렇게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할 줄 알았던 아련한 사람들 간의 맨몸스러움에 대한 추억은 아니었을까.  img09.jpg
각 소설 속에 나타난 30년대의 길과 60년대의 길은 그렇게 차이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당숙을 찾으러 나선 수호가 본 남폿불이며, 숯불에 달이는 커피며, 국밥집의 풍경은 느린 기차를 타고 내다보는 시대의 풍광처럼 느릿한 변화를 보여준다. 또한, 물레방아에서의 추억을 곱씹으며 걷던 허생원과 동이의 마음처럼, 당숙과 수호의 마음은 달빛이 젖어드는 것처럼 서로에게 어떤 공명현상이 있었으리라.

 

그 둘이 걸었던 대관령 옛길은 한 번의 고속도로와 또 한 번의 도로확장으로 밀려나 이제는 사람들에게 등산로로 쓰이고 있지만, 예전에는 영(嶺)사이를 소통시키는 주요한 통로였던 것이다. 대관령목장의 한가로운 풍경 옆으로 난 길에는 어느새 계절이 바뀌는 통로로도 쓰였는지 그 길을 따라 이제 막 단풍이 줄을 잇고 있다.


이순원. 1957년 강원도 강릉 출생.  1988년 「문학사상」 신인상에 단편 「낮달」이 당선되어 등단. 창작집으로 「그 여름의 꽃게」 「얼굴」 「말을 찾아서」 등이 있고, 장편소설「우리들의 석기시대」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 「에덴에 그를 보낸다」 「미혼에게 바친다」 「수색, 그 물빛무늬」 「아들과 함께 걷는 길」 등이 있다. 1996년 단편 「수색, 어머니 가슴속으로 흐르는 무늬」로 제27회 동인문학상을, 1997년 중편 「은비령」으로 제42회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최삼경 문화통신 편집위원

List of Articles
원형의 그리움을 따라가는 '오세암' file
오세암이 있는 설악산 마등령 중턱으로 오르는 길은 한창 공사 중이었다. 하늘과 땅이 만들어내는 천지공사, 그야말로 울울창창, 만화방창이라는 말이 절로 떠올랐다. 우리는 곧잘 사계절을 인생에 비유하곤 하는데 인생의 유년기, 봄을 맞은 설악산은 새로운 생명활동으로 푸르게 분망하였다. 산은 멀리서 바라보면 녹색의 단일화로 보이지만, 산 속 가까이 들어가 보면 그 안에는 많은 색의 정교한 스펙트럼이 펼쳐져 있다. 거기에는 이름 모를 풀들이 펼치는 노랑과 분홍과 빨강과 하얀 색들이 살랑거리며 숲이 만들어 낸 푸른 바다가 되어 넘실거리는 것이다. 요컨대, 신록이라 할 때의 숲은 하나로 된 일방의 색이 아니라 어떤 혈기가...  
이순원의 ‘말을 찾아서’ file
달이 없어도 별이 좋은 밤, 말은 어디에 있을까 달이 없어도 별이 좋은 밤이었다. 아부제의 술냄새가 조금도 싫지 않았다. 노새는 연신 딸랑딸랑 방울을 울리고, 길 옆은 온통 메밀밭이었다. 그러니까 길은 반쪽달의 은색 달빛이 내려 쏘이고, 바람이라도 불면 사라락~ 하고 소금 쓸리는 소리가 날듯 한 한 밤중이면 좋겠다. 그 길 위로 그닥 서두를 이유가 없는 산보 같은 행장으로 걸어가는 나귀나 노새의 발굽소리가 들려도 좋겠다. 그리하여 하늘을 꽉 채운 달빛과 땅으로 가득한 메밀꽃이 서로 호젓하게 낭창한 시골길이면 더욱이 좋겠다. 이효석의 ‘메밀 꽃 필 무렵’이라는 소설 얘기가 아니다. 그 풍광이야 조금 달라졌다고 한들, ...  
‘비오리 가족처럼 바쁘고 부지런하게 살아라’ file
원재길의 ‘비오리’ ‘비오리 가족처럼 바쁘고 부지런하게 살아라’ 구절리 개울가에서 듣는 자연의 소리 하나의 계절이 다른 계절로 바뀌는 것은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이루어지는 것이어서 낮과 밤이 서로 변하는 과정과 닮아있다. 고즈넉한 햇살이 서쪽 하늘에서 붉어지다가 시나브로 주위를 알아보기 힘들다 싶으면 어느새 문득 밤이 되는 것이다. 그것처럼 날씨도 어찌 어찌하다보면 다른 계절에 와 있게 되는 것이어서 철따라 바뀌는 계절의 조화가 어찌 이리 정확한가 하는 탄성을 내지르게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지구 온난화 등의 기후변화에는 예외가 없는 때문인지 우리나라도 4계절 중에 점차로 봄과 가을이 실종돼가는 느낌이다....  
김애란의 ‘누가 해변에서 함부로 불꽃놀이를 하는가’ file
“아버지, 나는 어떻게 태어 났나요?” 살아가면서 이 질문만큼 서로를 난감하게 만드는 질문도 없을 것이다. 이는 작가김애란의 소설속에서 어린아이가 자기 아버지에게 갖는 의문이다. 이에대해 아버지는 의뭉스레 “그런것은 어머니에게 물어보는 것이자 비밀”이라고 답한다. 하지만 아들은 계속해서 엄마와의 만남이나 자신의 출생등에 대한 궁금증을 표한다. 그리하여 아버지는 아들에게 그 해 엄마와 만나게된 해변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물론, 아직 여물지 않은 아들의 나이를 안배하여 다소과장되고 적당한 재미가 범벅된 시나리오 였지만, 아이는 시종 진지하게 받아 들인다. 여름, 깊이를 알 수 없는 달빛과 바다 때문에 모여 ...  
박상우의 ‘말무리반도’속 고성 file
어느새 봄이다. 아직도 응달에는 희뜩하게 눈의 잔해가 남았지만, 어쩔 수 없이 봄이다. 소설‘말무리 반도’의 배경이 되었던 강원도 고성을 찾자하니 진부령의 나무들은 일제히 푸름과 생명을 퍼 올리고 있었다. 경계도 없는 꽃과 나무들이‘세계 유일의 분단도’라는 강원도 북방의철조망을넘나들고있다. 댓재, 백봉령, 대관령, 미시령, 진부령은 오래 전부터 영동과 영서를 이어주는 주요 고갯길이었다. 그 중 가장 북쪽에 위치한 진부령은 미시령보다는 원만하다지만, 강원도 고갯길이 그러하듯이 굽이굽이 커브길이 곳곳에서 휘돌아 친다. 썩어도 준치요, 이래봬도 백두대간이라는 것인지, 아니면 아직은 겨울의 결기가 녹지 않은 것인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