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향의 달걀과 직선의 짚이 이루어내는 기하학,
유기질과 무기질의 촉감에 있어서나 추상조각과 같은 완벽한
대조와 조화의 아름다움은 또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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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같이 서울을 다녀왔습니다. 고속도로가 있어도 맹맹하기 그지없는 길을 가기 싫어서 늘 국도를 이용합니다. 춘천 가까이, 가평 어디쯤 이었던가 봅니다. 오줌이 마려워 차를 세웠습니다. 오가는 자동차에서 내가 뭘 하는지 모를 만큼의 거리로 가자니 추수가 끝난 빈 들판의 복판에 섰습니다. 논바닥엔 탈곡을 끝낸 볏짚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습니다. 까칠하지만 어느 구석에도 부족함이 없는 해탈의 군상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눈물이 났습니다. 오줌을 털다 말고 주섬주섬 볏짚을 모아들었습니다. 그리고 가평 장에 들러 열 개 들이 달걀도 한 판 샀습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볏짚에 물을 뿌려 눅눅하게 만들어서 가지런하게 추렸습니다. 짚의 일부로는 새끼를 꼬고, 물을 먹고 눅눅해진 짚으로는 달걀 꾸러미를 만들었습니다. 내 나이 아직 초등학교 저학년 때, 5일장엘 가야하는 어머니를 위해 만들던 그 솜씨를 재현했습니다.


사실 달걀꾸러미는 ‘꾸러미’라는 포장의 개념보다는 달걀이 들어있던 ‘둥지’의 구실에서 앞섭니다. 습기를 막아주고 충격을 완화하는 기능이 없지는 않지만, 계란꾸러미는 가장 포근하고 안전한 달걀의 집, 제2의 둥지와도 같습니다. 내가 달걀 꾸러미를 포장의 개념이 아니라는 뜻은 달걀꾸러미가 반 개방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안전하게 포장을 할라치면 꾸러미의 절반만 짚으로 두르지 말고 모두 감듯이 짚을 덮어 달걀을 싸야 옳습니다. 그러나 우리네 달걀 꾸러미는 반만 싸고 반은 그대로 두어 밖으로 드러나게 하는데 회화적 의미가 있습니다.


왜 반만 쌌을까요? 기능만을 생각했다면 일본 사람들의 달걀꾸러미처럼 다 싸는 게 안전했을 겁니다.
그러나 그렇게 했다면 포장으로서의 기능은 충족 되었을지 몰라도 달걀의 형태와 구조가 가려져서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되었을 겁니다. 그러면 달걀의 정보성과 언어성이 사라지게 되겠죠. 달걀꾸러미를 반 개방성으로 하지 않고 완전히 뒤집어 싼다고 생각해 보세요. 듣는 것만으로도 확, 신경질이 나지 않습니까? 아마 그런 달걀 꾸러미가 앞에 있다면 발로 밟아 뭉개고 싶은 충동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내가 달걀꾸러미를 반만 싸는 것은 물리적인 기능만 생각한 게 아니고 그 정보성을 중시하는 겁니다.
반만 싼 꾸러미는 그것을 들고 다니는 사람 스스로 조심하게 됩니다. 또 그것이 상품으로 전환이 될 때에 그 신선도나 크기의 정보를 한 눈에 전달하는 효과를 가집니다. 정보만이 아니라 시각적인 디자인의 미학에 담겨 있는 거죠. 원향의 달걀과 직선의 짚이 이루어내는 기하학, 유기질과 무기질의 촉감에 있어서나 추상조각과 같은 완벽한 대조와 조화의 아름다움은 또 어떻습니까?


‘달걀꾸러미’는 기술적 합리주의가 낳은 단순화와 협소화에서의 해방을 시도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예술(?)입니다. 왜냐하면 반만 포장된 달걀꾸러미야 말로 기능주의의 합리성을 커뮤니케이션의 합리성으로 대치하는 탈산업화시대의 정신과 통하기 때문입니다.


형태와 구조를 노출시키는 아름다움, 깨지지 않게 내용물을 보호하는 합리적인 기능성, 포장의 내용을 남에게 알려주는 정보의 공개성을 동시적으로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죠. 비즈니스에서는 ‘부러우면’ 지는 게 아니라 ‘비슷하면’ 집니다. 그래서 ‘차별화 differentiation’를 위해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숙한 카테고리의 제품일수록 차별화가 아니라 동일화가 일어납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의 휴대폰과 아이폰의 기기는 차별화를 추구 할수록 점점 유사한 형태로 동일화가 된다는 말입니다.


‘차별화’는 새로운 사고의 틀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이며 응용입니다. 그러므로 ‘달걀꾸러미’는 기술적 합리주의의 해방을 시도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예술’일 뿐만 아니라, 존재내적인 삶의 풍요를 공급하는 ‘차별화’된 의식의 표징입니다.


비닐 포장재에 혹은 뚜껑을 덮은 ‘계란’을 드실, 노른 자위는 홀랑 빼 놓고 단백질만 ‘계란’이라는 당신에게 추상조각 한 점 선물로 드립니다.


허태수 춘천성암교회 목사. 설교와 함께 글을 통해 삶을 일깨우는 일에 몰두하고 있으며 <자기포기>, <영혼의 약국>, <사람이 중심이지요> 등 여러 권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