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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화점에 쌍화 사러 갔더니
회회(回回)아비 내 손목을 쥐더이다.
이 소문이 집 밖으로 나가면
조그만 새끼 광대야
네가 퍼뜨린 줄 알겠노라.


고려가요 <쌍화점>의 일부분이다. 여기‘쌍화’는 오늘날 만두 비슷한 떡이다. 상화(霜花) 또는 상화(床花)라고도 하는데, 최남선은 《조선상식문답》에서 조선의 떡 중에서 가장 이색적인 것은 상화(霜花)가 증병(蒸餠) 종류라고 했다. 상화는 쌀가루나 밀가루를 반죽하고 거기에 술을 넣어 속이 푸석하게 부풀어 오르게 한 후 덩이덩이 만들어 먹는 떡이라고 했다. 《조선상식문답》에서는 멥쌀가루에 술을 넣고 질게 반죽한 것으로 더운 방에서 하루 동안 피어오르게 한 후 시루나 솥에 넣어 쪄내는 떡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술떡은 빵 같은 떡이다. 술떡 곧 증편(蒸片)은 쌀가루를 발효시켜 빵처럼 만든 떡이다. 요즘은 아무 때나 먹지만 예전에는 주로 음력 6
월 15일 유두절에 먹었다. 술을 넣어 발효시켰기 때문에 여름철에 쉽게 상하지 않는 장점도 있는 한편으로 밀가루를 발효시켜 상화를 대신하기 때문에 본래 밀의 수확철인 초여름에 먹었다.


경춘국도를 따라 서울을 가다보면 ‘술 빵’장사치들을 만나게 된다. 길이 막히는 주말이나 휴일엔 어김없이 나타나는 ‘빵’으로 불리는 ‘떡’들이 안쓰럽게 보였다. 멥쌀가루로 하건 밀가루로 하건, 상화(霜花)건 증병(蒸餠)이건 혹은 증편(蒸片)이건 ‘빵’이 아니라 ‘떡’이기 때문이다.
이러면 누군가 ‘떡이면 어떻고 빵이면 어떻노.’하겠지만 ‘어떻지’ 않으니 하는 소리다. 어느 학자는 서양사람들이 빵을 먹었기 때문에 밀가루를 빻아야 했고 그 때문에 일찍 동력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했지만 그보다는 열(熱)로 익히는 방식의 차이에서 떡과 빵이 갈라진 거다. 즉 빵은 ‘굽는 것’이고 떡은 ‘찌고 뜸 들이는’ 것이다. 그래서 빵은 조금 딱딱해져도 한번 구우면 일주일쯤 두고 먹을 수 있는 보관식품이다. 그러나 떡은 만들어 두었다가 먹는 게 아니다. 매일매일 찌고 치고 궁글리고 매만져서 금세 먹어야 한다. 그러니 빵은 오늘날 라면처럼 인스턴트식품과 진배없는 반면 떡은 뜸까지 들여야 하는 본질적으로 반(反)인스턴트 식품이다.


밥을 짓고 그걸 뭉개서 떡을 만들었던 쌀이 값 없단다. 그야말로 떡이 죽이 되어 가고 있다. 쌀 농사짓는 농부들이 죽을 판이다.


옛날 조선 사람을 키운 건 8할이 쌀이었는데 요즘‘케이 피플-요즘은 한국을 그냥 영어의 K라고 한다. K-팝처럼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케이사람들이다-’은 9할이 빵과 커피로 산다. 케이-피플이 꼭 애들만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다. 춘천 구봉산 기슭에도 새로 생긴 빵집이 하나 있는데 낮이나 밤이나 손님이 차고 넘친단다. 특히 밥을 짓고 떡을 찌던 아녀자들이 고아하게 모여앉아 빵과 커피를 밥과 떡 대신 먹는다고 들었다. 어른 애 할 것 없이 밥과 떡이 아니라 빵과 커피로 사는 것이니 이제 ‘조선 사람’에서‘K-People’로 바뀐 게 아니고 뭔가.


사람이 달라지면 인간성도 바뀐다. 빵과 커피처럼 성급한 리모트콘트롤형 인간이 된 것이다. 물론 빵도 빵 나름이고 커피도 커피 나름인 건 안다. 하지만 무쇠솥에 밥을 짓고, 찌고 뜸 들여 뭉개고 궁글려야 떡이 되던 그때의 발효 시간성에 비하면 빵과 커피는 그야말로 번갯불에 굽는 콩이다. 그래서 케이-피플들은 화들짝거리길 잘하고 뜨거워서 자기도 남도 쉽게 데이고 잘 놀래킨다. 이른바 ‘사회적증후군’인 분노조절 불가, 충동조절 불가, 감정 과잉의 인간사회가 증식되는 것이다. ADHD(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라고 불리는 이 ‘사회적증후군’이 과거에는 8세 미만의 아동에서 발견되었다지만 이제는 성인들에게 부쩍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뜸’의 정신적 발효시간이 증발되어서 생기는 불행한 현상인 것이다.


쌍화점에 쌍화가 없다. 술떡은 술 빵이 되고, 밥집은 빵을 팔고 떡집은 커피를 판다. 다만 ‘신 쌍화점’의 노랫가락이 노숙자처럼 아스팔트를 헤매고 있다.


빵집에 빵 사러 갔더니만 이웃 아비 내 손목을 쥐었어요.
이 소문이 가게 밖에 나며 들며 하면
다로러거디러 조그마한 새끼 광대 네 말이라 하리라.


아무아무 커피 집에 커피 마시러 갔더니만
그 커피 집 뽀얀 청년이 내 손목을 쥐었어요.
이 소문이 시내 밖에 나며 들며 하면
다로러거디러 조그마한 새끼 상좌 네 말이라 하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허태수 춘천성암교회 담임목사. 설교와 함께 글을 통해 성찰적 삶을 일깨우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자기포기》. 《영혼의 약국》,
《사람이 중심이지요》등을 비롯해 여러 권의 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