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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이굽이 이어지는 홍천강 서쪽 끝자락. 보리농사가 잘 된다 하여 예전부터 ‘보리울’로 불리던 모곡리가 있다. 독립운동가인 한서 남궁억 선생 기념관과 캠핑장으로 유명한 모곡 밤벌 유원지가 자리한 모곡 4리는 수많은 관광객과 여행객이 오가는 마을. 하지만 이와는 대조적으로 바로 옆 모곡 3리는 외지인의 발길이 뜸한 조용하고 평범한 시골마을이다. 주민 106명 중 60세 이하는 6명에 불과한 이곳은 우리나라의 여느 농촌마을이 그렇듯 시간의 흐름에 저항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마을에 몇 년 전부터 조금씩 변화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마을이 선택한 ‘발효’의 힘
4년 전 모곡3리에는 조금 특별한 귀농인이 이주해 왔다. ‘마마스팜 영농조합’의 안종권 씨. 그는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모곡 3리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해 이곳에서 마을사업을 일으켜 마을을 일으켜 보겠다는 마음으로 왔다고 한다.
그가 마을 활성화를 위해 선택한 아이템은 바로 ‘발효’였다. 마을 사람들과 함께 ‘마마스팜 영농조합’을 설립, 전남 강진의 전통 누룩 장인이 재현한 독자적인 누룩 제조 기술을 이용해 천연발효 식초를 생산 판매하고 전통주를 복원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2013년 한국관광공사가 주최한 ‘제3회 창조관광사업 공모전’에 ‘엄마의 마을 맘스벨리 - 특산물이 없는 마을의 행복 솔루션’이라는 창업아이템을 출품해 입상하면서 사업자금까지 확보했다.
현재는 안정적인 제조 시스템이 구축되었고 입소문을 듣고 찾는 고객도 늘어나면서 사업 초반의 어려움을 많이 털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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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집마다 다른 맛이 핵심이자 매력
“발효식품은 공장에서 대량생산한 제품과 다릅니다. 만드는 사람과 날씨, 보관법 등 수많은 요인이 상호작용을 일으켜 제각기 다른 결과물을 만들죠. 같은 원료를 사용해 같은 방법으로 발효시켜도 백이면 백 모두 다른 개성적인 발효식품이 탄생하니까요. 신기하죠?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바로 그 부분이 전통발효의 핵심이자 가능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종권 대표는 말한다.
사실 우리는 지금도 집집마다 다른 개성을 뽐내는 발효제품을 적어도 한두 개 정도 가지고 있다. 바로 엄마가 담근 김치와 간장, 된장이다. 초산발효 식초와 이화주 같은 전통발효식품의 수만 가지 개성도 여기 빗대어 생각해 보면 그리놀랄 일은 아니라는 것. 그저 현대인에게 전통발효 식초가 익숙한 물건이 아닐 뿐이다.

 

느릴수록 깊어지는 발효의 맛
몇 년 전 대기업에서 출시한 ‘홍초’나 ‘백년동안’ 같은 식초음료 열풍이 분 적이 있다. 다이어트와 항산화 효과가 뛰어나다는 몇 마디 문구는 각 가정의 냉장고마다 식초음료를 한 병씩 들여놓기에 충분한 파급력이 있었다. 하지만 사실 식초에 각종 과일 농축액과 당을 섞어 만든 ‘기분만 건강해지는’ 주스일 뿐이었다. 2, 3년 거세던 열풍은 언제 그랬냐는 듯 급격히 잦아들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났지만 발효식초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아직 그 자리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양조식초보다 비싼 고급 건강식품.
“초산발효식초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부족이 안타까워요.”


‘마마스팜 영농조합’에서 만드는 현미식초는 한국의 전통누룩인 ‘이화곡(쌀누룩)’과 ‘향온곡(밀, 보리, 녹두로 만드는 잡곡누룩)’을 사용한다. 누룩은 발효의 원천기술이며 세계 최고 수준의 식초를 만들 수 있게 해 주는 핵심 중의 핵심이다. 그래서 안종권 대표는 직접 빚은 누룩이 아니면 전통발효 식품으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만큼 마마스팜 영농조합이 만드는 식초의 품질에 확신과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쌀을 분쇄하고 반죽하고 걸러내고 모양을 만들고 숙성/건조하는 모든 과정을 사람의 힘을 빌려 하는데, 느리고 지난한 작업이지만 결코 허투루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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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스토리8.jpg좋은 발효식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조건은 아주 단순하다. 좋은 재료와 시간. 하지만 그 두 가지 법칙을 제대로 따르기란 쉽지 않다.

“마마스팜 영농조합은 이 법칙을 따르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고 있어요. 밑술을 만들고 발효시킨 뒤 다시 두 번에 걸쳐 덧술을 하죠. 항아리에서 1년 3개월 이상(3년 이상 발효시키기도 한다) 숙성시켜야 하는 과정입니다. 그동안은 하루도 빠짐없이 식초를 관찰하고 돌봐줘야 하죠.” 발효보조제나 감미료 등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아미노산을 극대화한 쌀과 해양심층수를 사용하는 등 최고 품질의 재료만 사용한다.
이렇게 정성을 다해 탄생한 식초가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마마스팜 영농조합의 현미식초는 2014년 전북대학교의 분석 결과 일본이 자랑하는 현미식초 ‘흑초’보다 인체에 유효한 필수아미노산 성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다고 확인했다.
필수아미노산은 근육과 혈액, 뼈를 형성하고 성장을 촉진하며 노화를 예방하는 중요한 성분이지만 체내에서 합성하지 못해 반드시 식품을 통해 섭취해야 한다. 이런 필수아미노산을 많이 함유한 모곡 3
리의 현미식초는 마을의 자랑거리라 할 만하다.

 

절반의 성공, 흔들림 없는 의지
“한국의 전통발효식품 시장은 지금 변환기를 맞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통발효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복분자, 아로니아, 딸기 등 마을 특산물을 앞세워 만든 발효식초가 우후죽순처럼 생산 유통되고 있어요. 얼마 전의 효소 열풍과 비슷한 양상입니다. 누룩이라는 핵심 기술과 식초 자체의 품질에 신경을 쓰기보다는 화려한 맛과 포장으로 소비자들을 현혹하고 있죠. 쉽고 빠른 길이지만 효소와 그 전의 식초음료 열풍처럼 언제 사그라질지 모르는 유행일 뿐이라고 봅니다.” 안종권 대표는 말한다.
마마스팜 영농조합은 한사코 어려운 길로 가겠다고 한다. 묵묵히 전통 방법을 고수한 발효식초와 전통주를 만들다 보면 그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라 믿고 있다. 그런 마음이 통해서인지 최근에는 전통발효를 연구하는 소모임이나 개인이 늘고 있다. 누룩 만드는 법을 배우겠다고 먼 곳에서 매주 찾아오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최근에는 귀농^귀촌을 꿈꾸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전문 발효 교육 프로그램도 실시하고 있다. 1박 2일 동안 실습과 토론을 하며 발효의 기초 과정을 배운다. 발효는 몇 년을 공부해도 부족하기 때문에 교육이 끝난 뒤에도 스승과 끊임없이 교류하며 정보를 교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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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조용했던 모곡3리는 요즘 식초와 술과 사람이 익어가는 달큼한 향으로 가득하다. 아직 출발선상이고 해결해야 할 문제도 남아 있지만 일단 마을에 활기를 불어 넣겠다는 ‘마마스팜 영농조합’의 도전은 효과를 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활기가 넘치는 행복한 마을이 되기까지는 먼 길이겠지만, 모곡3리에는 천천히, 느릿느릿 흐르는 시간을 즐기며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들이 만드는 전통발효식품처럼.


이재화 문화통신 리포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