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동주.jpg

 

동주2.jpg최근 대작 영화들 틈바구니에서 조용히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존재감을 드러낸 영화가 있다. ‘왕의 남자’, ‘라디오스타’, ‘사도’등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은 이준익 감독의 새 영화 ‘동주’가 바로 그 주인공.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윤동주와 그와 삶과 죽음을 함께한 평생의 벗 송몽규의 생애를 다뤘다는 점과 제작비 5억 원의 초저예산 흑백영화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개봉 전부터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동주’를 보고서 오래간만에 무거운 먹먹함을 느꼈다. 영화 내내 차분히 쌓이던 감정이 엔딩크레딧과 동시에 한꺼번에 밀려오는 기분이었다. 민족시인과 독립운동가라는 공식적인 이름 뒤 청년 윤동주와 송몽규의 인간적인 모습이 더욱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그날 이후 나는 이 두 청년에 대해 무작정 파고들었다. 몇 시간씩 인터넷으로 둘의 이야기를 검색하는 것은 기본이었고 최근 복간된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판본을 구입했다. 송몽규의 신춘문예 당선작 ‘술가락’도 찾아 읽었다. 그렇게 며칠을 ‘동주앓이’에 빠져 있던 나는 결국 영화의 촬영지인 고성의 ‘왕곡마을’까지 찾아가 보기로 했다.


윤동주와 송몽규가 성장기를 보낸 북간도 명동촌의 촬영지 강원도 고성의 ‘왕곡마을’은 이미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19세기 전후에 건립된 북방식 전통한옥과 초가집 군락이 원형을 유지한 채 잘 보존되어 온 왕곡마을은 전통민속마을로서의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인정되어 2000년 1월 중요민속자료 제235호로 지정, 관리되어 오고 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북방식 한옥이 보존되어 있고 옛 마을의 모습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어 영화 속 북간도를 묘사하기 안성맞춤인 촬영지였다.
영화의 흥행과 더불어 특색 있는 관광지로서 재조명 받고 있는 고성의 왕곡마을, 암울했던 시대 속에서 환하게 빛나던 소년 윤동주와 송몽규의 그림자를 따라 그곳으로 향했다.

 

동주3.jpg

시간이 멈춘 고즈넉한 마을
왕곡마을은 마을 전체가 산으로 둘러싸인 ‘골’ 형태의 분지다. 외부와 차단된 지형 덕분에 전란과 화마에도 무사할 수 있었다. 바로 옆에 대형 석호인 송지호가 자리하고 있고 바닷가에서 불과 1.5km밖에 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고립감이 느껴지는 마을이다. 그래서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 외부와는 다른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
마을은 중앙의 개울을 따라 이어져 있는 안길을 중심으로 가옥들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다. 가옥과 가옥 사이에 비교적 넓은 텃밭이 있고 따로 담이 없는데, 이 때문인지 다른 시골 마을보다 여유롭고 평화롭다는 느낌이 들었다. 20가구 정도의 아담한 마을이라 전체를 천천히 둘러보는데 한두 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으므로 산책하듯 부담 없이 돌아보기 좋다.


윤동주의 고향 집, 큰상나말집
왕곡마을에서 가장 먼저 찾아가 보고 싶은 곳이 있었다. 극 중 윤동주의 집으로 나온 큰상나말집이다.
마을 입구 오른쪽 야트막한 언덕의 중간 지점에 자리한 아담한 기와집으로 부엌에 외양간이 붙어 있는 전통적인 북방형 겹집구조를 하고 있다. 서울식 기와집과 달리 세련된 맛은 없지만 검소함과 실용성이 느껴졌다. 부엌에서 기와지붕이 급격히 뚝 떨어져 성인 키보다 낮아지는 재밌는 구조가 눈에 띄는데, 눈이 쌓이지 않도록 고려한 것이라 한다.
윤동주가 등잔을 밝혀 놓고 밤새 시를 쓰던 작은 방, 의사가 되기를 원하는 아버지를 마주하며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진학하겠다고 소신을 밝히던 마루, 길 떠나는 윤동주의 손에 어머니가 전병을 쥐여 주던 부엌, 독립운동을 하다 체포됐던 송몽규가 석방되자 온 가족이 모여 저녁을 먹던 마당 등 곳곳에서 영화의 흔적이 밀려왔다.
주인공의 집으로 나온 덕분에 수많은 주요 장면이 이 집에서 촬영되었는데, 영화를 보고 찾은 덕분인지 집안 한구석 한구석이 새롭고 반가웠다. 실제 윤동주의 생가에라도 온 듯 설레는 마음으로 집을 둘러보았다. 영화를 보고 찾아온 사람들을 위해 걸어 놓은 사진은 어디서 어떤 장면을 촬영했는지 금방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동주4.jpg

 

세 청춘의 아지트, 왕곡정미소

동주5.jpg영화 속에서 하나 더, 주의 깊게 본 장소가 있었다. 영화 초반, 명동소학교를 교회학교에서 인민학교로 전환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마을 사람들에게 당돌한 연설을 한 송몽규와 그를 쫓아 윤동주가 도망쳐 들어간 낡은 창고다. 이곳에서 송몽규는 윤동주에게 감춰 뒀던 정지용 시인의 시집을 선물하고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는 소식도 듣는다. 죽마고우였던 문익환과 함께 셋이서 <새명동>이라는 잡지를 만들며 꿈을 키우던 곳도 여기다. 내성적이고 수줍음이 많았던 윤동주와 달리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향해 달려가는 현실적인 청년 송몽규는 이곳에서 문학의 허구성을 비판하며 윤동주의 여린 마음을 여러 번 아프게 한다.
영화를 위해 만든 세트인 줄 알았던 건물이라 당연히 이미 없어졌겠지 여겼는데, 마을회관 옆에 버젓이 자리하고 있는 것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연신 셔터를 눌렀다.
알고 보니 원래 마을 공동 정미소로 쭉 사용해 오던 건물이라 한다. 현재는 내부도 영화 속 모습 그대로 유지되고있기 때문에 자유롭게 들어가 구경할 수 있다.


마을 구석구석에 남아있는 영화의 여운
왕곡마을은 영화 전체 분량의 20%나 촬영한 곳이라 그런지 구석구석 영화의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암울한 세상으로 나가기 전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우물가와 그네 터에서는 환하게 웃고 있는 티 없는 청춘을, 송몽규가 중국의 중앙군관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몰래 마을을 떠날 때 올랐던 언덕에서는 뜨겁게 타오르던 한 청년의 열망과 시대의 아픔을 느낄 수 있다. 평범한 시골 마을 풍경이 영화 ‘동주’와 만나 특별한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장소로 변모한 것이다. 원래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작은 언덕 앞에서 나는 꽤 오랜 시간을 서 있었다.

 

동주6.jpg

사진출처 : 왕곡마을 홈페이지


전통한옥에서 별 헤는 밤
왕곡마을을 더욱 깊이 있게 느끼고 싶은 사람을 위한 전통한옥 숙박체험도 마련되어 있다. 큰상나말집을 포함한 기와집과 초가집 8채를 관광객을 위한 숙소로 개방한 것이다. 고즈넉한 한옥에 머물며 조용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들에게 제격인 곳이다. 화장실은 밖에 있고 TV도 없어서 요즘 유행하는 화려한 펜션에 비하면 초라해 보이기까지 하지만, 아파트의 편리함, 밤에도 어두워질 줄 모르는 도시의 거리에 익숙한 요즘 사람들이 200년 전의 옛 방식 그대로, 시간이 멈춘 곳에서 오붓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인공의 불빛 대신 쏟아질 듯 별로 가득 찬 왕곡마을의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윤동주가 북간도의 밤하늘을 떠올리며 지었다는 시 ‘별 헤는 밤’을 쫓아 자신만의 별을 헤아려 보고 싶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떠나기 직전 다시 한 번 왕곡마을의 전경을 바라보았다. 200년이 넘도록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전통 있는 마을, 그리고 영화 속 윤동주와 송몽규의 고향. 두 가지 의미로 다가오는 작은 마을을 내 기억 속에 오랫동안 새겨 넣고 싶어서였다.

 

이재화 문화통신 리포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