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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통신 조회 수 53 추천 수 0

한번 들어오면 갇혀버리는 오지 마을,
인제군 인제읍 하추리 도리깨마을이 그렇다.
설악으로 향하는 깊은 골짜기에
자리한 마을이다. 덕적리, 가리산리와
귀둔리가 차례로 설악산 서쪽 아래
골짜기를 지키고 있고 그 앞쪽 소양강
방향으로 오각형 모양을 한 마을이
하추리이다.
글 _ 김효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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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 물, 산과 산이 만나는 오지마을 하추리것

 

마을 뒤로는 한석산이 섰고 앞으로는 설악산 가리봉에서 발원해 가리산천이라고도 불리는 하추리계곡이 흐르고 있다. 마을 맞은편이자 하추리계곡의 흐름을 든든히 지켜주고 있는 길고 낮은 산은 점봉산의 지류이다. 하추마을 사람들은 이 산을 마을 안에 있는 산이라 해서 안산이라 부른다. 안산에는 가래나무가 많았는데 가래나무가 많은 마을이라 가래울이라고도 했단다. 이를 한자로 바꿔 ‘추동(楸洞)’이라는 지명이 만들어졌다. 하추리는 추동마을 중에서도 아랫동네라 하추동이라 이름 지어졌다가 지금의 하추리로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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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지금도 하추리계곡 부근에는 가래나무가 많다. 하추리 사람들은 “가래나무 밑이 무척 시원해요. 하추리계곡을 따라 가래나무가 줄지어 울창해 여름에 서늘한 게 신선놀음이 따로 없지요.”라고 귀띔한다.
설악산 가리봉과 점봉산 사이 기암괴석을 뚫고 힘차게 흘러온 하추리계곡은 맑고 따뜻하다. 너른 바위와 자갈이 계곡을 따라 시원스럽게 펼쳐져 있고 투명한 물빛 아래로 버들치, 꺽지가 펄떡거린다. 고산으로부터 격정적으로 굽이쳐 내린 물살은 고운 모래를 선물했다. 여름이면 가래나무 아래에 둘러앉아 발가락 사이로 꿈틀대는 모래를 헤치고 물놀이를 하는 피서객이 그득하다. 하추리계곡 옆인 안산의 산허리에는 산책로가 아기자기하게 조성돼 있다. 가벼운 트래킹 코스로 30분쯤 몸을 풀기 안성맞춤이다.

 

하추리계곡을 따라 내린천과 합수하는 지점까지
하추리계곡은 2006년 이전만 해도 계곡 폭이 좁으면서 수심이 깊고 둔치가 더 넓었다고 한다. 둔치에 집이 여러 채 있었고 널찍한 캠핑장이 으뜸이라고 캠핑 마니아들 사이에서 소문이 났었다. 2006년 큰 홍수가 나면서 설악산 가리봉부터 떠내려 온 아름드리나무들이 계곡을 휩쓸고 지나갔다. 집이고 캠핑장이고 할 것 없이 구조물은 흔적 없이 사라졌고 계곡 폭은 넓어졌으며 수심은 낮아졌다. 지금은 예전만큼 계곡을 우당탕거리며 휘몰아치는 물살은 아니지만 기암 사이로 흘러내려오는 청아한 물줄기가 여전히 아름다워 진동계곡, 미산계곡과 더불어 인제의 3대 계곡으로 꼽힌다.


서쪽에서 하추리계곡 옆 58번 지방도를 따라 쭉 들어가면 하추리마을 거의 끄트머리에 하추자연휴양림이 나온다. 한적산 동쪽 편으로 하추리계곡과 맞닿아 있다. 푸르른 한적산 사이로 사람 한둘 지날 정도의 호젓한 산책로가 나 있고 숙소인 ‘숲속의 집’이 아담하게 앉아 있다. 창문을 열면 하추리계곡의 우렁찬 울림이 들려온다. 초록빛일것 같은 피톤치드와 계곡의 파란 물빛이 만나는 청정 휴양 공간. 하추자연휴양림이 관광객들에게 인기 있는 이유다.
하추자연휴양림에서 설악산 쪽으로 조금만 더 들어가면 귀둔리가 나오는데 탄산이 풍부해 오색약수 뺨칠 만큼 피부병과 위장병에 좋다는 필례약수가 있다. 약수가 연결된 필례계곡은 영화 <태백산맥>의 전투 장면 촬영지로도 이름 나 있다. 하추리마을을 등지고 마을 초입에서 오른쪽으로 다리를 건너 지방도를 따라 쭉 나가면 자작나무 숲으로 유명한 원대리다.


이래저래 소문난 관광지가 하추리 인근에 줄줄이 이어져 있다. 자연과 문화가 만나 휴식과 감동이 있는 공간으로 사람들의 가슴을 파고드는 곳, 하추리이다.


아무도 살지 않던 오지가 관광휴양마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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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추리 사람들은 요즘 마을 이름을 도리깨마을이라 지었다. 도리깨란 콩 보리 등 곡식을 두들겨서 알갱이를 털어내는 데 쓰는 전통 연장이다. 산지에 마을이 형성되었으니 평야가 있을 리 없고 화전(火田)만 가득했으니 마을에서는 잡곡을 터는 도리깨가 필수였을 터. 울력(여러 사람이 힘을 합하여 일함)을 하면서 도리깨질의 지루함을 달래준 게 도리깨 소리였다. 오랜 세월 동안 선조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도리깨 소리는 십여 명 남은 토착민들 사이에서 근근이 전해져 오고 있었다. 마을 젊은이들은 이 소리를 하추리만의 놀이문화로 재생시켰다. 도리깨질과 소리를 전수 받아 모두가 함께 즐기는 놀이로 재창조했다. 마을을 방문하는 체험 관광객과 함께 수시로 도리깨놀이를 하며 ‘도리깨축제’도 연다. 슬슬 입소문이 나면서 지역의 큰 축제나 행사에 원정 공연을 나서기까지 한다. 자연히 하추리 도리깨놀이가 재미있다고 소문이 났고 올해부터 아예 ‘하추 도리깨마을’이란 이름을 간판으로 걸었다.


지금은 40여 개 펜션이 도리깨마을 골짜기 골짜기에 그림처럼 들어차 있고 연간 9,000여 명의 관광객이 찾는 마을이 되었지만 이곳은 고려시대 중반까지 사람이 살지 않았던 곳으로 짐작될 만큼 오지였다.
하추리자연휴양림 가기 전, 농금덕이라는 지역이 있는데 이곳에는 여러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거문고를 타는 것 같은 모양의 언덕이기에 농금덕이라 불렸다는 이야기가 있고, 벙어리에 얽힌 이야기도 전해진다.


농금이 귀머거리 ‘농(聾)’, 짐승 ‘금(禽)’ 자라는것인데 김재노 도리깨마을 이장도 여기서 마을 유래를 추측한다.
“아마 노비의 반란이 많았던 고려 무신정권 때였던 것으로 추측돼요. 어느 귀족의 집에서 노비들이 도망을 쳤대요. 그러면서 귀족의 자식을 인질로 데려가 따라오면 자식을 죽인다고 했다는군요. 노비들은 귀족의 자식이 자신들의 행적을 밝힐까 두려워 혀를 잘랐답니다. 그리고 지금의 농금덕 부근에서 화전을 일구고 살았대요. 거기서 귀족의 자제가 가까스로 도망쳐 관아에 가서 글을 써 이 사실을 고했답니다. 그길로 관아에서는 노비들이 사는 곳을 찾아 모두 몰살시키고 집을 불태웠대요.


그때 귀족의 자식이 벙어리가 되어 말을 못하니 짐승 같은 소리를 냈다 하여 그 지역에 농금덕이라는 지명이 붙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 자리에 이미 화전을 잘 일구어 놓았으니 다른 곳에 살던 가난한 백성들이 하나둘 옮겨오면서 화전을 넓히고 마을을 형성한 것이라고 전해집니다. 게다가 물이 풍부하고 해가 잘 들어 잡곡 농사가 잘 돼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었다고 합니다.”


연유야 어찌되었건 이 마을이 땅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 가난한 백성들이 모여든 화전마을이었던 것은 초여름의 산허리 사이사이를 파릇하게 메우고 있는 낙엽송이 증명한다. 골짜기를 가득 메운 낙엽송은 1960년대 말 박정희 정권이 화전정리사업을 하면서 벌겋게 드러난 둔덕에 조림한 나무라고 한다. 화전정리사업 전만 해도 이 마을 인구는 400여 명에 달했단다. 그 후 점점 줄어들다 최근 귀촌인이 늘어나면서 마을이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넉넉한 한적산 품으로 사람들이 모여들다


2004년께부터 농촌체험마을을 만들자며 주민들이 합심하기 시작한 하추 도리깨마을은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함께 체험 프로그램을 알차게 운영하는 농촌체험마을로 알려져 있다. 설악산, 한석산, 점봉산이 지척이고 하추리계곡의 경관이 워낙 뛰어나 관광객의 발길이 줄을 잇는다. 농어촌공사가 지정하는 으뜸촌으로 4년 연속 지정됐으며 2016년 팜스테이마을 전국 3위에 이름을 올렸다. 농촌체험휴양마을, 녹색농촌체험마을, 팜스테이마을로 등록돼 있고 농어촌인성학교로도 지정됐다.


도리깨마을에는 전체 66가구, 230여 명이 거주하는데 토착민은 10여 가구에 불과하고 귀농귀촌 인구가 60% 이상 된다. 오래전부터 산세와 계곡 풍광에 반한 도시민이 꾸준히 드나들었던 곳이기에 외지인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탓인지 토착민과 귀촌인과의 융화가 잘 된다고 소문이 자자하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지정하는 ‘귀농귀촌 우수마을’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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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을에는 유난히 황토펜션이 많다. 한때 인제군에서 황토펜션을 장려했던 때문인데 이 마을에 가면 황토방 체험을 실컷 할 수 있다. 그밖에도 한적산과 점봉산 지류의 골짜기마다 이국적인 펜션들이 군데군데 자리하고 있다. 마을을 관통하는 도로에 서서 훑어보면 66채에 이르는 집과 펜션들이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대부분 산자락 아래로 숨어들어 있다. 그만큼 나무 향기가 넉넉한 산의 품속에 사람들이 자리를 잡았다는 얘기다.
설악산으로부터 수십 킬로미터를 지치지도 않고 달려온 하추리계곡은 내린천과 만나며 소양강으로 흘러들어간다. 이 지점이 마을의 한 쪽 끝이다. 서쪽에서 간다면 마을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반대로 하추리 부근에서 래프팅을 시작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하추리계곡과 내린천이 합류하는 곳에 수변공원이 있는데 이곳에서 소양강을 따라 서쪽 방면으로 래프팅이 시작된다.


잡곡 농사 잘 되는 하추리, 산촌의 일상을 콘텐츠로
도리깨마을은 내린천 래프팅으로 유명세를 탔지만 요즘은 하추자연체험학교를 찾는 이들로 1년 내내 붐빈다. 하추자연체험학교는 폐교된 인제초등학교 분교를 고쳐 숙박 시설과 교육실, 식당을 들여놓은 체험관광 공간이다. 실내 체험 시설, 어린이 수영장, 아궁이 체험장, 전통방아 체험장, 농사 체험장, 도정공장 체험장 등이 갖춰져 있다.
하추리계곡에서의 물놀이와 민물고기 잡기, 내린천 래프팅, 안산 트래킹도 인기다. 특히 ‘아궁이로 가마솥 잡곡 밥짓기’는 대표 체험 프로그램이다. 마을 주민은 따뜻하고 물이 좋은 도리깨마을의 옥수수, 기장, 조, 콩 등 잡곡이 알이 굵으며 달고 구수하다고 자랑이다. 잡곡을 가마솥에 넣어 아궁이에서 밥을 지어 먹는 체험을 하면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밥을 솥째 긁어먹을 정도란다.


잡곡 수확 시기에는 도리깨와 디딜방아로 탈곡 체험을 한다. 도리깨질을 하고 물레방아, 연자방아, 디딜방아, 통방아와 같은 전통 방아시설을 살펴보며 옛 산촌 생활을 체험한 후엔 인제군에서 두 번째로 시설이 좋다는 하추리 도정공장에서 현대적인 도정 시설을 경험한다. 옛 것과 현대의 탈곡 방식을 온몸으로 만나는 시간이다.


도리깨마을만의 탈곡과 도정에 관련한 자원을 널리 알리기 위해 도리깨마을은 지난 2014년부터 도리깨축제도 시작했다. 11월 중순 축제에 가면 이 마을만의 독특한 도리깨 문화에 흠뻑 젖을 수 있다. 최근에는 하추자연체험학교 옆에 농산물판매장을 열었다. 이곳에서는 잡곡과 말린 산나물 등 산촌의 구수한 향기와 인심이 어린 농산물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