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립극단1.jpg 다양한 문화 매체의 발달로 볼거리, 즐길거리가 많아진 요즘, 연극의 선 자리가 자꾸 바깥으로 밀려나는 듯 보이는 상황 속에 강원도립극단의 창단 소식이 반갑다. 날씨가 한결 푸근해진 3월의 어느 날, 강원도립극단의 초대 예술 감독으로 선정되어 4월 공연을 위해 한창 준비에 몰두하고 있는 선욱현 감독을 만났다. 넉넉한 웃음으로 맞아주는 그의 푸근한 인상 덕분에 첫만남이 어색하지 않다. 캠퍼스 벤치에 앉아 준비한 커피를 나눠 마시며 그의 이야기에 빠져든다.

어떻게 도립극단의 예술감독이 되었나?
선욱현은 전주에서 뮤지컬 ‘춘향’에 출연하고 있던 중에 강원도립극단에 예술감독을 공모한다는 소식을 듣게된다. 지역공모가 아닌 전국공모이니 도전해보지 않겠냐는 권유도 따라온다. 처음에는 거절했다. 자신의 나이나 경력이 예술감독을 하기에는 아직 부족하다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강원도에서는 오히려 젊은 사람이 예술감독을 맡아 주기를 원한다고 한다. 용기를 내어 면접심사를 보기로 한다. 면접 이후에도 그는 자신보다 경력도 많고 교수인 다른 선배가 선정될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며칠 후 강원도립극단에 예술감독으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기뻤다. 하지만 바쁜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1월 2일 첫 출근하여 ‘허난설헌’을 소재로 한 창작극으로 4월에 공연을 해야 한다.

작품이 정해진 것은 아니었지만, 강원도를 대표하는 인물인 ‘허난설헌’의 이야기가 강원도립극단의 첫 작품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 것 같기에 그는 무리한 일정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 작품에 도전하게 된다.

두 달 만에 창작 희곡이 나오는 건 어떤 작가에게도 무리한 일이었으므로 다른 작가에게 부탁할 수도 없는 처지가 되어버린 그는 예술감독의 지위로 직접 희곡까지 맡아 썼다. 이건 좀 못난 선택이다. 스스로 시험을 보겠다고 자청한 것이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한 달 동안 허난설헌에 대한 자료조사를 하고, 작품 창작을 힘겹게 끝내고 4월 25일 첫공연을 위해 지금은 배우들과 연극 연습에 몰두하고 있다.

허난설헌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명문가에서 곱게 자라며 학문에도 조예가 깊었지만, 조선시대 여성이라는 멍에에 매어 비운의 삶을 살다가 27세에 생을 마감한 허난설헌. 그의 죽음의 원인은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생애 1,000여 편의 시를 남겼으나 그 시를 모두 태워버리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는다.

그녀의 삶을 이해할 수 없다. 1,000여 편의 시를 쓸 때는 언제고 왜 태우라고 했는가? 그의 고민은 많은 작가들과의 대화 끝에 오히려 쉽게 풀린다. 그녀의 삶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세 아이까지 잃은 어미의 내밀한 토로가 그녀의 시였던 것이다.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그녀의 시는 동생 허균에 의해 마술처럼 살아남아 이 시대까지 전해지며 비운의 천재 시인으로 그녀의 시와 삶이 모두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그렇다면 그녀의 삶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매력적인 인물이지만 그 인물에게 재미를 더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선욱현은 고민 끝에 그녀의 삶과 현대인의 막막함을 병치시켜 보겠다는 해답을 얻는다. 신분제가 사라진 현대 사회이지만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운명적인 제한과 벽을 느끼며 살아간다. 그런 현대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작품에 임한다.

대다수의 국공립극단은 예술성을 지향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선욱현은 도립극단의 연극은 일부 매니아를 위한 것이 아니라 도민 전체를 위한 서비스 공연이므로 그 공연은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값싼 웃음거리로 끝나는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많은 이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선사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되기 위해 되도록 쉽게 쓰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배우들과 함께하는 첫 리딩에 연극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극단 관계자를 모셔 일부러 들어보게 한다. 두 시간이 넘는 리딩 후에 그분은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 하셨다. 이만하면 절반은 성공인 셈이다. 이렇듯 모두가 즐거울 수 있는 연극. 이것이 욱현이 이번 작품에서 바라는 바이다.

선욱현. 그의 연극과 인생 그리고 생각
대학 시절 동아리 활동으로 시작한 연극부 활동은 그의 삶에 생기를 주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도 연극에 대한 열정이 사라지지 않아, 본격적으로 연극배우로 활동하게 된다. 배우로 시작한 그의 연극 인생은 희곡에 대한 열정으로 옮아가 희곡을 쓰기 시작했다. 95년 4전 5기 끝에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본격적인 희곡작가로서의 삶이 시작된다. 또한, 첫 작품을 하던 중 함께 한 여배우와 사랑에 빠지고 결혼에 골인한다. 그의 아버지는 3형제 장남인 그가 결혼을 일찍 하면 처자식 먹여 살리느라 연극을 포기할 줄 아셨다고 한다. 그러나 함께 연극을 하는 아내는 오히려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주었고, 그는 희곡 작가와 연극 연출, 영화와 드라마 출연까지 장르와 역할을 넘나들며 꾸준히 연극인으로서 삶을 살 수 있었다.

아버지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지만, 그의 아버지는 지금 그가 강원도립극단의 예술감독이 되었다는 소식에 많이 기뻐하신다. 선욱현은 연극인으로 사는 자신의 인생에서 아버지께 처음으로 효도를 한 것 같아 그동안 아버지께 죄송했던 마음을 조금은 덜게 됐다.

작가와 배우, 연출을 모두 했지만, 선욱현이 가장 애착을 갖는 일은 작가이다. 작가는 혼자서도 얼마든지 꿈꿀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다. 반면에 배우는 그런 작가의 상상력을 현실화시켜 주는 것이다. 그 옷은 멋있고 좋지만, 가끔은 내 옷이 아닌 것처럼 여겨질 때도 있다.

많은 매체의 발달로 연극이라는 장르가 점점 소외되어가고 있지만, 욱현은 그렇다고 일부 매니아만이 찾을 수 있는 그런 연극을 바라지는 않는다. 그것은 아무도 모르는 산속 깊이 숨어 사람들로부터 점점 더 멀어질 것이다. 선욱현이 바라는 연극은 ‘산 아래 공원’ 같은 그 정도의 거리이다. 누구나 찾아올 수 있고, 일상의 지루함을 씻어내는 신선함을 맛볼 수 있는 그 정도의 거리. 선욱현은 자신의 생각에 대한 이 비유가 스스로도 만족스럽다.

영화와 드라마도 각기 지닌 매력이 다르겠지만, 한정된 프레임 안에서 움직여야 한다는 제한에 비해, 연극의 가장 큰 매력은 관객과 직접 만나 소통하며 서로 사람의 온기를 느끼는 것이다. 연극이 지닌 이런 큰 매력이 있기에 쏟아져 나오는 다양한 매체 속에서도 연극의 존재는 계속될 것이라고 선욱현은 생각한다.

강원도립극단의 구성과 향후 계획
강원도립극단은 현재 배우 오디션을 통과한 3명의 상임단원과 20여 명의 객원단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는 이번에 뽑힌 강원지역 배우들이 ‘강원도의 힘’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자신하고 있다. 배우들은 허난설헌 공연을 위해 연습에 몰두하고 있다. 강원도립극단은 4월 25일, 26일 춘천문화예술회관에서 첫 공연을 시작으로, 5월 6일부터 강원도 6개 도시 순회공연을 한다. 하반기에는 18개 시군의 순회공연을 계획하고 있다. 7월에는 경주에서 열리는 국공립극단 페스티벌에 참가할 예정이며, 학교 공연이나 춘천을 찾는 관광객들을 위한 상설공연도 계획하고 있다. 2018 평창 올림픽 때까지 강원도를 소재로 매년 한 개의 콘텐츠를 개발할 것이며, 그 때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위해 강원도가 자체적으로 공연을 펼칠 수 있도록 준비할 것이다.

부드러운 말씨에 위트까지 더해진 그의 이야기를 듣느라 봄바람이 차가워지는 것도 모른 채 많은 시간이 흘렀다. ‘우선, 2년 동안 강원도립극단의 예술 감독의 책임을 맡았으니, 2년 동안은 춘천 사람으로 살아야죠.’ 라는 말과 살짝 수줍은 웃음 뒤에 그의 강원도립극단에 대한 애정이 새록새록 돋아나고 있는 듯 보였다. 온화한 미소 이면에 다부진 각오가 엿보이는 그의 표정은 막 피어오르는 3월의 꽃망울을 닮았다. 앞으로 강원도립극단의 활발한 활동과 발전을 기대하며 나 또한 강원도민의 한 사람으로서 강원도립극단의 팬이 될 것 같다.

 

심수진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