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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고집’으로 연극의 불씨 당기는 연극의 산 역사
“(…) 내 재산, 도둑질해서 모은 거 아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눈에 쌍심지 돋워가며 악착같이 세 주고 꿔 주고, 논 키우고 이자 불려 모은 거라구. 그런 재산을 허투루 낭비하라구?”

 

김경태.jpg소작농이 도지를 가져오지 않고 오히려 쌀 한 가마니만 적선해 달라는 말에 옹고집이 소작인을 마구 때리며 하는 일갈이다. ‘옹고집’ 의 사전적 의미는 ‘억지가 매우 심하여 자기 의견만 내세워 우기는 성미. 또는 그런 사람.’이라고 되어 있다. 옹고집까지는 아니더라도 나이가 들면 자기 고집이 생긴다. 살아온 만큼의 경륜, 그리고 자기 생각이 굳혀지기 때문이다.


연극배우 김경태 씨(66)는 요즘 이 ‘옹고집’에 몰두해 있다. 2016년 1월 8일 축제극장 몸짓에서 옹고집 역을 하기 때문이다. 이 연극에는 김경태 씨뿐 아니라 춘천 연극계 원로인 박완서(73), 김원림(63), 원주 극단 산야를 만들고 이끌어 온 김학철(74), 연극협회 속초지부를 이끌어 왔던 장규호(66) 씨 등 1960년대부터 강원 연극계를 싹틔우고 성장시켜 왔던 연극인들이 참여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연극계 원로들의 공연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제작비의 일부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이 공연 작품이 ‘옹고집전’이다. 공연 작품이 ‘옹고집전’이라기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60대와 70대가 대거 참여하는 연극 작품으로는 딱이다 싶기고 하고, 근래 만나기 힘든 고전이 공연된다는 것이 살짝 반갑기도 하고….
젊은 소리꾼 김지희와 박명환 김자영 등 현역 연극인들이 함께 세대공감을 만들어 간다니 궁금해진다.
이 극의 주인공 김경태 씨와는 오랜 인연이어서 이야기는 차 한 잔 나누는 한담 수준으로 이어졌다.


유현옥: ‘옹고집전’을 공연하신다는데 준비는 잘되세요?
김경태: 춘천문화재단이 주관하는 음악극‘봄·봄’에 재담꾼으로 참여하게 돼서 두 개를 같이 하게 되었네.
나는 이번 연극에 기대가 커요. 언제부턴지 연극의 맥이 제대로 이어지지 못하고 선배와 후배 간에 단절돼 있어서 이번 연극을 계기로 그걸 다시 이었으면 하는 기대를 해요.


재미있게 했으면 좋겠는데 대본이 좀 단조한 것 같아서 김상렬 씨가 한 것을 좀 더 넣었으면 좋겠다고 연출에게 말했어요.
(이야기 끝에 김경태 씨는 나를 쳐다보며 극중 옹고집의 대사를 마구 해댄다. 하마터면 웃을 뻔. 배우와 마주하고 있다는 걸 실감한다.)


유현옥: 선생님은 언제부터 연극을 하셨어요? 지역에서는 드물게 전공을 하셨는데.
김경태: 고교를 졸업하고 1968년 신상옥 씨가 만든 안양영화예술학교를 다녔지.
그리고 신필름에 잠깐 있었고 기독교방송 성우 하다가 군대를 갔어요. 74년에 제대하고 일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연극협회 세미나가 있다고 신문에 났길래 학교선생님이셨던 이진순 선생(연극연출가)을 만나러 갔지.
거기서 최지순 형 등 춘천에서 연극하는 분들을 만났어.
그리고 혼성에서 연극을 하게 됐지.‘ 봄·봄’,‘ 옹고집전’등을 그때 처음 했어요.


혼자 걷는 길보다는 함께 걷는 길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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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옥: 40년이나 하셨네요. 어떻게 그렇게 오래 하셨어요? 연극이 그만큼 매력 있는 거라서?
김경태: 연극이 옛날에도 인기가 있지는 않았어요. 예전에는 영화나 텔레비전이 활성화되지 않았고 그만큼 즐길 거리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연극을 보았지. 내가 지금까지 연극에서 손을 놓지 않고 있는 것은 잘하는 게 이것밖에 없어서이기도 할 거야. 연극을 하면서 국제연극제에 많이 참여했어요. 2005년 캐나다 몽로리에(mont-laurier) 국제연극제에서는 남자연기상을 받았고. 그런 활동이 춘천국제연극제를 탄생시키는 계기도 됐지. 또 극단전용소극장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 것도 보람을 느끼는 일이고.
(극단 ART-3씨어터 대표인 김경태 씨는 요즘도 꾸준히 연기를 하고 있다. 2014년 강원도립극단의 첫 공연 ‘허난설헌’에도 참여했고 극단의 정기공연 및 찾아가는 공연 등 거의 빠지지 않고 연기를 한다.)


유현옥: 혼성에서 오래 연극하셨잖아요. ART-3씨어터는 언제 시작하셨죠?
김경태: 아는 분이 이 건물을 지으면서 소극장을 만들어 준다고 해서 처음 지을때 소극장용으로 높이는 등 극장으로 쓰도록 배려해서 지었어요. 45평인데 객석은 100석 규모고. 문화관광부의 지원으로 시설을 갖췄어요. 민간단체가 소극장을 갖는 게 쉬운 일이 아니어서무척 보람있게 생각하는데 지금은 운영이 어려워 애물단지라는 생각도(…)
연기학원을 겸하고 있어 여기서 연기 지도도 하는데 올해 어려운 일이 생겨서 공연은 쉬고 있는 중이에요.

유현옥: 옹고집 공연에 대한 남다른 기대가 있으신 것 같아요. 원로예술인이라는 말을 싫어하시니가 그 말은 빼고….
(이 사업은 원래 원로예술인을 지원하기 위한 것으로 문화커뮤니티 금토가 총괄기획 진행을 맡고있다.)
김경태: 돌아보면 나부터도 선후배가 서로 교감하는 일에는 무관심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연극이 어려운데 맥이 끊겨 있고 후배 양성도 잘 안 돼 있어서 연극 환경이 더욱 어려운 거지. 이번 공연을 계기로 선배와 후배가 한데 어울려 공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또 한 번에 끝나지 않고 강원도 연극의 활력이 되었으면 하는 기대를 해요.


인터뷰를 끝내고
연극배우들은 연극무대만 가지고는 생활이 안 된다. 특히 지역의 연극무대는 더욱 척박하다. 그런 판에서 김경태 씨는 다른 직업인으로 자신을 부각시킨 적이 없다. 생활을 위해 다른 일들을 했을 터이지만 사람들에게 연극배우로 깊게 각인돼 있다.
공백기 없이 꾸준히 연극무대에 서왔다. 극단 혼성에 이어 ART-3씨어터에서 몸을 아끼지 않는 배우로 움직인다. 강원도에서 최고령 현역배우다.
그는 배우로 산다는 것은 가난에 익숙한 일이라고 한다. 그러나 꿈은 화려하고 남에게 밝은 모습으로 살고 싶다. 예술가들을 만날 때마다 예술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본성에 충실한 삶을 사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삶이 다른 이들의 억압된 삶에 싱그러운 향기를 전달하는 것이 책무라는 생각을 해본다. 무대 뒤 그들의 삶이 갖는 무게도 더불어 생각하게 되는 만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