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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라는 게 표현하고 보여주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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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진 규
1972년‘첫 야행(억울한 도둑)’,‘대사 없는 1막’,‘건널목 삽화’(연극) 등의 공연을 시작으로 무대에 섰다. 연극과 마임을 하던 그는 1979년 그의 대표작‘아름다운 사람’으로 마임배우로 자리를 굳혔다.‘아름다운 사람’ 시리즈,‘머리카락’,‘홍수로 인한 침수’ 등 여러 작품을 공연했으나 1980년대 춘천으로 이주하면서 공연을 잠시 쉬었고 그 후 1987년 다시 공연을 했다, 1989년에는 한국마임페스티벌이 열렸다. 이 한국마임페스티벌을 춘천으로 옮겨온 것을 시작으로 춘천마임축제가 탄생되었다. 2013년까지 마임축제의 예술감독 등을 맡으며 주도적으로 축제를 키워왔다. 축제와 함께 <유진규네 몸짓>이라는 이름으로 공연을 하기도 했으며 최근에는‘유진규의 빨간방’ 등 방 시리즈로 공간 속에서 사람들의 심리를 읽어내는 작업을 하기도 했다.


춘천은 해마다 오월이면 초여름 태양 아래 도시 곳곳에서 축제가 열린다. 이즈음이면 봄내예술제도 있고, 다른 예술행사가 앞다투어 열리지만 ‘춘천마임축제’를 빼놓고 춘천의 오월을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1989년부터 춘천에 새로운 예술을 심기 시작해 놀이와 즉흥성이 담긴 축제로 자리매김하기까지 춘천마임축제를 만들어 온 사람들은 수없이 많다. 이름 하나 변변히 기억되지 못하는 사람들의 많은 수고가 오늘의 축제를 만들었다는 것을 사람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지역의 대표 브랜드가 될 정도로 성장한 축제 뒤에는 예술가와 지역민들의 측량할 수 없는 땀이 배어있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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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쌓인 땀방울 중에 가장 먼저 기억되는 이름은 유진규이다.
언제나 축제의 중심에 있던 사람, 그래서 축제와 동일시되곤 하던 이름, 하지만 지금 춘천마임축제에는 유진규가 없다. 2013년 축제를 마지막으로 그는 춘천마임축제와 인연을 놓아버렸다. 오랫동안 축제를 지켜오면서 빛나는 만큼 그 빛 뒤의 그늘도 컸기에 축제를 진두지휘하던 일을 그만둔 것이다. 이런저런 불편한 사건들을 보내고 2016년 5월 유진규는 오롯이 배우로 남아 유랑한다. 화려한 무대는 아니어도 공연을 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간다는 유진규. 5월에는 그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의 공연이 열리던 홍대 앞으로 찾아나셨다.

 

다섯 개의 몸맛-요기가 표현갤러리
유진규 씨는 지난 5월 9일부터 13일까지 서울 홍대 부근에서 오랜만에 극장 공연을 했다. <요기가 표현갤러리>에서 열린 그의 공연 작품은 ‘다섯 개의 몸맛’. 서울문화재단의 지원으로 이루어진 이 공연은 유진규 씨와 젊은 예술인들이 어우러지는 콜라보 공연이었다. 영상(김제민), 인디음악(불가사리), 전자음악(물오름, 노갈), 바디페인팅(배달래), 넋전춤(양혜경) 등 여러 장르의 젊은이들과 어우러지는 마당을 펼쳤다.
물어물어 찾아간 공연장은 무척이나 낯설었다.


갤러리라고 해서 전시도 하는 공간인줄 알았는데….
■ 진짜 인디 예술가라고 해야 하나? 그런 애들이 모이는 곳이에요. 발표의 장이자 모임의 장. 모여서 자유롭게 그때그때 흥이 나는 대로 해요. 매달 마지막 일요일에 ‘불가사리’ 공연이 있는데 그게 팀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그날 모이는 사람들이 즉흥적으로 결합해요. 편하게 서로 표현하고 어울리는 곳이에요. 불가사리는 오후 4시에 시작하는데 끝나는 시간은 정확하지 않아요.
(이번 공연에 관객은 좀 있느냐고 물었더니 의외의 말이 이어졌다.) 사람이 와요. 유료 점유율로 보면 대학로 이상이라고 하던데.


축제를 그만두고 요즘 온전히 예술가로 다시 활동하고 있는데 예술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 스스로도 질문하곤 하지만 ‘뭐 하고 살아?’ 하는 것과 똑같지. 나에게는 내가 떠오르는 것을 몸이나 다른 보여줄 수 있는 방법으로 보여주는 거지 뭐.
공연을 다시 시작한 것은 제작년 가을부터에요. 공연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요즘 기획자들과 생각이 많이 다르다는 것 때문에 고민이 되었죠. 그래도 공연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주위에 말했더니 진주에서 거리공연 제의가 들어오더라고요.
처음에 망설였죠. 거리공연은 한 적이 없어서. 한참 생각하던 끝에 ‘관객이 있는 곳에 배우가 있다’는 생각으로 하기로 했어요. 앞뒤로 음악이 요란한 골목에서 ‘나비’, ‘있다 없다’ 등을 공연했는데 시작하기 전까지 걱정이 많이 되었지만 관객의 반응이 좋았어요. 아이들이 따라하기도 하고 재미있어 하더라구요. 그 경험으로 대학로에서도 거리공연을 했어요. 거리에서는 반응이 즉각적이잖아요. 재미없으면 바로 빠져나가고, 또 다른 관객이 들어오고…. 그런 공연을 하면서 관객의 시선을 어떻게 끌 것인가 필사적으로 생각하게 됐어요. 재미없다고 돌아설 땐 힘들어요. 이제는 적응도 되고 많이 편해졌어요. 극장도 공연할 수 있는 일부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공간에 맞게 공연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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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도 자주 가시는 것 같은데 거기서는 어떤 공연을 하나요?
■ 순회공연을 해요. 중국 상해에 석자연 스님이 있잖아요. (그는 나도 아는 분이다.) 그 스님이 차를하는 사람들과 많은 관계망이 있어요. 그 차 모임을 중심으로 이곳저곳 공연을 다녀요. 차 모임 홍보와 한국 다도를 알리는 행사를 열면서 공연을 하죠. 모임이 있으면 가곤 하는 유랑공연이에요.
올해도 갈 거예요. (이쯤에서 건네기 어려운 춘천과 마임축제에 대한 질문을 하나둘 시작했다.)


춘천 마임축제의 그늘에서 보낸 시간


마임을 그만두고 어떻게 지내셨는지, 강원대 앞에 공간도 운영했는데 문을 닫았죠?
■ 대학 앞에서 젊은 문화를 일으켜보고 싶었어요. (유진규 씨는 춘천으로 이주한 초기에도 강원대학교 앞에서 카페를 열어 그곳에서 공연을 하면서 청년들과 많이 어울렸다.)
그런데 생각이 많이 다르더라구요. 공간(그는 강원대학교 후문 앞에서 ‘빨’이라는 복합공간을 지난해까지 운영했으나 운영난으로 문을 닫았다.)을 만들어서 젊은이들과 함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보려던 그림이 무너지면서 많이 힘들었어요. 그래서 배우로 다시 돌아가기로 한 거죠. 이것은 매일매일의 싸움인 것 같아요. 생각이 다른 예술가들과 만나면서 투지도 생기고 그게 새로운 힘이 되죠. 전투 감각이 살아나는 것 같아요. 젊은이들과 만나면서 갭을 느끼기도 하지만 <요기가>에 오는 친구들은 정해진 틀이 없는 자유로움이 보기 좋아요.


춘천의 젊은층 문화는 어떻다고 생각해요?
■ 지역의 청년들은 우물 안 개구리 같아서 안타까워요. 자기가 최고라는 생각에 빠진 사람들이 많아요. 배타적이어서 서운함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춘천에 거의 없고 다른 곳으로만 다니나요? 춘천에서는 별 활동이 없는 것 같은데.
■ 춘천에 살아요. 강북으로 이사 가서 강남으로는 잘 안 넘어오죠(웃음). 춘천에 있을 때는 잘 안 다녀요. 몸짓극장 앞을 지나기가 힘들고 예전 생각들이 데자뷰처럼 나타나 힘들어요.
마임축제가 크게 걸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전보다 조금 더 새로운 것을 해야지요.
(이즈음에서 나는 한참 춘천의 축제와 문화에 대해 걱정하는 이야기를 먼저 했고 유진규 씨는 공감을 하면서도 긴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이번 공연을 ‘다섯 개의 몸맛’이라고 했는데요, (나이가 적지 않은데) 배우로서 몸은 아직 좋은 건가요?
■ 세월호 사건 이후 몸 자체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몸과 마음은 따로가 아니잖아요? 예전에는 ‘몸짓’이라는 말을 쓰곤 했는데 몸 자체에 대한 관심이 커진 거죠. 그러면서 몸으로 얼마까지 할 수 있을까 생각하지요. 하지만 몸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눈만 한 번 깜빡해도 대화를 하는 거 아니에요? 눈빛 하나로도 나를 표현할 수 있는 거죠. 그러면서 또 몸이 사라진다고 해서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되구요.


올해 활동 계획은? 또 앞으로 무엇을 할 계획인지.
■ 요즘은 공연과 강의를 주로 하지요. 축제에 대한 강의.
축제에 관심이 많아요. 억눌려 있는 사람들에게 발산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게 축제인데 진정한 축제가 없는 것 같아요. 축제 만들기 프로젝트 같은 강의가 있는데 재미있어요.


때로는 질문, 때로는 한담. 서로 낯익은 사람들의 대화는 여러 방식으로 이어졌고 우리는 축제의 원형들을 이야기했다. 예전 마을의 놀이들을 떠올리며 축제의 의미에 대해서, 또 새로운 방식의 축제 아이디어도 나누었다. 또 잠시 뒤 공연장에서는 유진규 씨와 여러 인연을 맺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공연 하나를 매개로 춘천 밖에서 문화와 예술에 대한 이야기가 참 길었던 날이었다.

* * *

이번에 나는 예술엔 관심을 벗었고 / 보려는 사람과 보여주려는 사람의 순간의 싸움 / 거기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 예술이 무엇인지 / 알려고 하지 않았고 / 말하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요기가라는, 같은 공간과 시간 안에서 부딪치는 나와 상대 예술가와 관객만을 생각했습니다. / 그 순간의 연속만 생각했습니다.
닷새를 거치면서 나는 UFC 선수처럼 / 어떤 상대를 만나도 / 온갖 방법으로 공격하고 버티면서 / 쓰러지지 않으려는/ 내가/ 되어가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 앞으로 더 많은 싸움을 하고 싶습니다.


유진규 씨는 ‘다섯 개의 몸맛’ 공연을 모두 끝내고 나서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그는 젊은이들과 어우러지는 시간을 싸움으로 표현했지만 아마도 자신과 싸움을 치열하게 하고 있는 듯했다.
‘한국마임 1세대 배우’ 그에게 따라다니는 수식어를 다시 곱씹어본다. 한 세대를 열었던 그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있다. 새로운 방식으로 ‘배우 유진규’를 드러내고 있는 그의 현재
는 맑음. 그러나 때때로 흐림인 것 같다.
춘천의 5월이 지나가고 있다. 거리에는 물총을 쏘아대는 젊은이들과 밤새 난장이 벌어지며 마임축제를 즐길 것이다.


글 유현옥 문화통신 편집주간 / 사진 이수환 문화통신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