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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의 명곡사를 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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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앨범을 들추듯, 추억의 흔적을 따라 발걸음을 옮길 때, 그때는 아마 무언가 잃어가는 것 같은 허전함이 가득할 때인 것 같다. 그렇게 걸음을 하다가 예전에 살던 집, 어릴 때 다니던 학교, 아니면 젊은 시절 자주 다니던 음식점, 찻집 등에 이르러 그때 그 사람이 여전히 그곳에 있을 때 내가 잃었던 것이 거기에 있는 듯, 반갑다. 두런두런 그 사람과 이야기까지 나눈다면 빈 마음이 어느새 채워져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춘천 시청길(조양동)에 자리한 명곡사. 그곳은 그런 마술 같은 힘을 가진 춘천의 오래된 가게다.


춘천시청에서 명동으로 가는 길목, 그곳에서 그는 36년이라는 시간을 누군가의 배경음악처럼 자리하고 있다. 삶의 이야기 속에 크게 끼어들지는 않지만, 때로는 감정을 높여주고 때로는 높아 있는 감정을 다스려주듯 잔잔하게 기억되는 사람이다. 1980년대와 90년대를 청년기로 보냈던 사람, 여기에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그는 더욱 강한 배경음악으로 자리하지 않았을까? 그 시절 명곡사에서 음반 한 장 산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삶이 참 팍팍했을 것이라는 짐작을 하게 된다.

 

 

 

2016년 늦여름의 어느 날 명곡사 풍경.
“딸랑!”
문에 달린 종소리가 울리자 명곡사 아저씨가 가게 뒤편에서 앞으로 나가 손님을 맞는다.
- 손님: 부르스, 탱고, 지루박 CD 있어요?
- 주인: 여기 있어요.
- 손님: 이거 신식이에요?
- 주인: 네~ 박자가 중요해요.
- 손님: 요즘은 박자가 빠르대요.
- 주인: 지루박, 부르스, 트로트, 탱고 다 들었어요.
- 손님: 저기서 쓰는 것?
- 주인: 네. 카바레에서….
(그러면서 다른 CD도 보여준다. 이거는 무도에서 쓰는 것이에요 종합판. 이러저런 이야기가 이어진다.)


손님은 CD 한 장을 사고 주인의 밝은 인사를 받으며 나간다.
곧이어 또 다른 손님은 공CD를 찾더니 어느 가수의 CD를 찾는다. 유명가수는 아닌 듯, 노래가사를 일러주니 아저씨는 조금 특이한 곡이라며 그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전화번호를 묻는다. 찾아서 연락해 주겠다고 한다. 잠깐 엿보는 모습이 인터넷으로 필요한 물건을 사는 젊은층에게는 영 낯선 풍경이다.

하지만 거기에 앉아 있는 나는 이상하게 마음의 끈 하나가 살짝 풀어지고 있었다.
명곡사 아저씨의 일상은 손님이 어떤 종류의 음악을 고르느냐가 다를 뿐, 언제나 조금은 높고 빠른톤으로 웃으며 손님을 맞이하며 이이진다. 한결같은 미소다.
춘천 토박이인 나에게 명곡사 아저씨는 낯설지 않다. 하지만 그 거리에 참으로 오랜만에 나섰고 가게 안까지 들어간 것은 몇 년 만인지 알 수 없다. 나의 궁금증을 서서히 풀어놓았다.

 

■내가 1981년에 가게를 시작했으니 햇수로 37년이지. 오디오 관련 일을 하다가 이 일을 하게 됐어요. 예전에 오디오 하면 별표와 독수리 전축이 있었는데 내가 독수리 전축에서 일을 했어요. 그때 전축을 사면 레코드도 같이 사곤 했거든. 그래서 그 일을 그만두면서 음반장사를 하면 좋겠다 싶어서 시작한 거죠. 요 앞에 한 평이 겨우 넘을까 하는 데 가게를 차렸지. 계단이 있는 위에다. 문 닫은 옷가게였는데 거기서 시작했어요. (명곡사는 지금 자리 바로 옆쪽에 있다가 확장 이전하였다.)
80, 90년대만 해도 호황을 누리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아저씨는 장사하시는 분들의 특유의 어법을 구사한다. 결코 잘된다고 명쾌하게 시인하지 않는 그 표현.

 

■아유, 그때는 음반가게가 10곳이 넘었어요. 잘되긴 했어도 나눠먹기니까 호황을 누렸다고 하기는 그렇지. 지금은 전혀 안돼요. IT가 발달되면서 소프트로 가서 음원을 주로 찾으니 우리 업계는 말이 아니죠. 웬만한 도시에는 음반가게가 아예 없어요. 그만큼 안되는 거지.
주로 오는 손님들은 70,80음악, 트로트를 찾는 분들이고 젊은층은 아이돌 음악을 찾고. 클래식은 매니아들이 좀 찾아요.
하지만 춘천이 문화의 도신데 이런 것 하나쯤은 그래도 있어야지. 돈을 벌고 그런 건 아니지만 좋아서 하는 거니까. 요새는 오시는 분들이 위안을 줘요. 건강하고 꼭 남아 있으라는 말을 들으면 위안이 돼요.


음악이 위안하던 시절의 길잡이 되어 도시의 아이콘으로 자리하다
지금은 명곡사를 찾는 고객이 일반 소비자, 그 가운데서도 중장년층이 대부분이지만 인터넷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이곳을 통해 음악다방과 음악감상실이 LP음반을 구입했고 방송사도 주요 거래처였다. 춘천에서 음악과 관련된 사람들이 교집합을 이루는 그런 공간이었다. 레코드 가게가 성업을 이루면서 각종 공연의 티켓을 판매하는 예매처로도 명곡사는 빠지지 않았다. 옛 풍경에 대한 회상은 자연 그 시절의 사람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꾸준히 명곡사를 사랑해 주시는 분들이 꽤 있죠. 일일이 말할 수는 없지만 충주, 정읍에서 오시는 분도 있어요. 예전에 여기 근무하시던 인연으로. 춘천에는 많죠.


옛날에 <바라>에 계시던 분들.
지금 <올훼의 땅>인 옛 <바라>는 클래식 음악다방으로 음악을 즐기는 이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아저씨는 ‘바라사람들’이라는 통칭으로 춘천의 클래식 마니아들을 이야기했다. 그 청년들은 이제 아이 아버지와 엄마가 되었고 직장에서는 정년퇴직을 하기도 했다.


명곡사의 오래된 풍경
장사가 안된다며 음원판매 위주의 음악시장 이야기를 한참 하는 아저씨는 종종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루하지 않을 만큼 손님들이 가게문을 열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손님과의 대화를 들으며 눈은 실내 풍경을 찬찬히 되새겼다.
직사각형의 실내는 넉넉한 공간이 없다. 한 시간 이상 여기 앉아 있으니 조금 갑갑한 느낌도 다가온다. 온 벽이 CD와 테이프, LP 등으로 채워져 있으며 가운데도 막아서 음반들이 빼곡하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오른쪽 벽면은 가요음반이 진열되어있고 왼쪽은 클래식, 가운데에는 팝음악, 그리고 뒷면으로 가면 LP와 사무집기들이 있다. 공간이 좁아서 가구들도 아주 작은 것들로 구성되어있다. 짜서 놓은 듯한 작은 테이블,
미니냉장고, 음반 검색을 하는데 쓰는 노트북…. 작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큰 집기들이 거의 없다. 이야기 도중 아저씨는 작은 냉장고에서 박카스 한 병을 꺼내 주었다.
그 냉장고에 참 잘어울리는 음료다.
아저씨의 하루일과가 궁굼해졌다.
일과를 물으니 아침 10시에 출근하면 저녁 10시까지 꼬박 10평 미만의 이 공간에서 생활한다고 한다.

 

■집에서 도시락을 싸와 점심을 먹고 저녁도 아내가 가져다줘요. 사먹는 음식이 싫어서.
쉬는 날이 거의 없어요. 집안의 부득이한 애경사에 가는 날과 추석과 설날 등 명절만 빼놓고 가게 문을 닫은 적이 없어요. 그러다 보니 어느새 이렇게 되었어요.
이게 삶의 전부였죠. 법 먹기 위해 시작했는데 영원한 직업이 된 거지. 81년 3월 24일 오픈했어요 .
햇수로 37년이 되었지.
생활하며 애들 교육시키고, 모든 사람이 거기에 만족하는 거 아니에요? 이나마 여기까지 온 게 행복한 거죠.
딴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어요. 돈을 많이 벌거나 그러면 딴 생각을 했을지 모르지. 하루하루 사는게 전부였으니까. 어느 날인가 세월이 간 거지.
좁은 공간에 자신만의 정리 방식으로 다종다양의 음반들을 채웠다가 누군가에게 전달하고, 또다시 채우고 이렇게 그의 시간이 간 것이다.
올 2월, 이처럼 오랜 시간 음반가게를 지켜 온 그에게 뜻깊은 감사패 하나가 전달되었다. 음반유통 회사인 유니버설뮤직코리아가 오랜 인연에 감사하며 춘천을 찾아와 직원들이 깜짝 이벤트로 연달아 음반을 샀고 이어서 패를 전달했다. 큰 규모의 거래처는 아니지만 디지털 시대에 지치지 않고 꾸준히 음반을 구매하고 판매하는 그를 인정해 준 것이다.

 

■돈으로 생각하면 벌써 문을 내렸을 거예요. 물건이 회전이 안되니까. 오래했고 인생을 여기에 바쳤으니까 계속해야죠.
일상이란 게 이런 것이다. 매일 반복하며 별 의심없이 행하는 일들, 명곡사 아저씨에게는 이 오래된 가게가 멈출 수 없는 일상이다. 우리는 그 일상으로 기쁠 때 답답할 때 위안을 줄 특별함을 찾으러 갔다.

 

■음반이 없어지지는 않겠죠. 음반이 살아 있는 한 명곡사는 계속 유지가 될 거에요. 내가 아니라도 누군가 유지하겠죠. 문화도시 춘천의 이미지가 있지 않아요?
명곡사 아저씨의 소박하지만 질긴 목소리를 들으며 이런 것이 문화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처음 이야기를 나눌 때 가게를 하신 지 얼마나 되었냐고 물으니 백 년은 아직 안 됐다고 말하며 아저씨가 웃었다. 100년이란 시간을 곱씹어본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감성을 사러 누군가 그곳에 가고 그 발걸음이 끊이지 않아서 100년의 시간을 만들수 있을까?
‘명곡사 아저씨’. 이 말만 들어도 마음이 따스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처음 가게문을 열 때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같은 이름으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있는 도시는 따뜻하다.
인터뷰를 마치고 아저씨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것. 그가 전해준 메모에는 이런 글이 있었다.


‘그동안 명곡사를 사랑한 고객님들께 깊은 감사드리며 음악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과 영원히 함께하고 싶습니다.

 

글 유현옥 문화통신 편집주간
사진 이수환 문화통신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