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김지희.jpg

 

농토에서 수확한 소리로 놀이마당 한가득 펴다

기억을 되새겨보면 김지희를 처음 만난 건 예술단체의 행사장이었던 것같다, ‘쌀타령’이라는 1인 창작 판소리‘를 본 것이다. 파마머리에 몸빼를 입은 시골 아줌마의 모습으로 쌀값 폭락으로 힘들어하는 농민들의 이야기를 걸쭉하게 풀어내던 모습.


‘혼자서 저렇게 사람들을 빨아들이는 힘이 있구나. 잘논다.’ 이런 느낌이었다. 그 후 가끔 이런저런 무대에서 그 공연을 보았다. 그리고 2년 전부터 금토가 주관한 원로예술인공연지원사업인 ‘옹고집’ 멤버로 참여하면서 자주 만나게 되었다. 그는 늘 분주했다. 거주지인 횡성에서 춘천, 서울 등 여러 곳을 오가면서 공연하고 연습하느라 시간을 다투며 사는 듯 했다.


작심하고 만난 그날도 그녀는 매우 바빴다. 횡성에서 몇 개의 일정과 서울에 가야하는 상황을 비집고 횡성읍에 있는 농음 연습실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횡성에는 언제 왔어요?”
(최근 공연에 관해 이야기를 먼저 하려고 생각했는데 이 말부터 불쑥 나왔다. 서울내기가 횡성으로 어떻게 오게 되었을까가 내게는 가장 큰 궁금증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 학교를 졸업하고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무대가 있는 곳이면 다녔어요. 연극도 했구요. 원주의 모두골(원주에서 거주하며 공연하는 광대패)에도 잠시 있었는데 그때 공연을 하기위해 횡성에 왔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났어요. 제게 무언가 전환점이 필요한 시기였는데 귀농을 해서 농사를 짓고 있던 사람을 만나면서 결혼을 하고 횡성으로 온 것이죠. 운명이랄까, 그곳이 회다지소리로 유명한 정금마을이었어요.
막상 농촌에 오니 아는 사람 하나 없고 마을에는 어르신들만 있더군요. 그래서 그 어르신들의 소리를 만나게 되었지요. 회다지소리 뿐만 아니라 농사를 지으면서, 생활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소리, 그게 저에게 새로운 길이 되었어요.

김지희2.jpg  김지희3.jpg

 

“농사를 직접 지었어요? ”
■ 남편과 함께 농지를 빌려 농사를 지었어요. 쌀농사도 하고, 하우스도 했구요. 농민회 언니들과 모임도 하고 영농후계자 교육도 받았어요. 블루베리 농사를 지었다가 폭설로 망하기도 하구요. ‘쌀타령’도 그래서 나온 거죠. 제 경험이에요. 횡성으로 와서 농사를 지으며 농민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보고 제가 겪은 것을 창작 판소리로 만들었어요. 어르신들을 찾아다니며 인터뷰도 많이 했구요.


그 당시 공연을 참 많이 했어요. 농민들의 홍보대사라는 말을 들으며 전국을 다녔는데 지금도 일년에 한두 번씩은 ‘쌀타령’을 공연해요.
-예술가가 자신의 장을 펼칠 무대가 많지 않은 곳에서 산다는 것은 물이 없는 곳에 물고기가 살아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것을 어떻게 이겨냈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그런 갈등이 있지 않느냐고 넌지시 물었다.

 

■ 설판이 없었어요. 내가 하는 것을 보여줄 곳도 없고, 사람도 없고. 제가 판소리가 전공인데 판소리를 아는 사람도 없었어요. 그래서 제 소리들 들어줄 어르신들에게 맞춰 민요를 부르고 트로트도 했어요. 제 소리를 하는 것 말고도 어르신들의 소리를 듣는데 관심을 갖기 시작해 찾아다니면서 할머니 할아버지들로부터 소리를 배웠어요. 지금은 아마 제가 횡성소리를 제일 많이 알거에요.


설곳이 없으니 ‘내판은 내가 만든다.’는 생각으로 2008년에 문화예술위원회의 신진예술가 지원을 받아 ‘농음’을 창단했어요. 그때부터 활발하게 지역의 소리를 기반으로 작품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있는 거죠.

 

김지희4.jpg

 

…지금껏 제가 하고 싶은 소리들을 찾아 했다면 이제는 제가 해야 할 소리들을 만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저 들녘에서 땀에 배었던 소리들은 농사를 지으며 얻게된 소증한 소리들입니다. 농촌의 사라져가는 귀한 소리, 그것을 다듬고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과 함께 나누는 소리를 해아 할 것입니다.


-김지희가 ‘농음’ 창단공연을 하며 쓴 인사말이다. 농익은 소리, 농촌의 소리를 기반으로 살아가겠다는 선언이다. 지역민들과 함께 어울려 소리를 만들고 그것을 횡성문화관에서 펴 보인 창단공연은 극장을 꽉 채우며 주목을 받았다. 그렇게 스스로 판을 만들어 나갔다.

그는 최근 회다지소리를 토대로 창작연희극울 만들었다.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강원도가 추진하고 있는 1시군 1대표 문화예술행사 육성사업이다.

 

■ ‘횡성회다지소리가’ 지역의 전통있는 소리지만 전해오는 소리를 실연하는 것은 단조하잖아요. 그리셔 그걸 가지고 작품을 만들어 지역의 상설 공연작품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횡성회다지놀이’를 처음 만들 때는 외부 전문가들과 함께 만들었는데 만족스럽지 않더라구요. 이번 G-1 올림픽페스티벌 공연에서는 주변사김지희5.jpg람들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래서 회다지소리전승보존회 사람들과 함께 작품을 만들고 연출도 제가 했어요. 공연 결과 이 작품이 우수작으로 선정되어 다시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어요. 다시 다듬어서 공연을 할 거에요.


-김지희는 농음 창단공연에 이어 베트남 이주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

‘짜오안’, 창작극 ‘황소아줌마’ 등 연극과 소리가 어우러진 작품들을 만들고 판소리, 민요, 창작곡들이 어우러진 소리콘서트를 만들며 농음의 색깔을 김지희6.jpg키워왔다. 각종 행사장과 지역을 가리지 않고 판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렇게 사람들 속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농음’이 점점 넓게 퍼지는 중이다.

 

■ 여전히 어려움이 많아요. 지역에서 함께 활동할 수 있는 전문예술가가 부족해 공연을 할 때마다 사람들이 모이는 프로젝트팀을 꾸려야 하는 한계가 있어요. 그래서 단체에 대한 평가도 낮은 것 같고…….
단체를 운영하는 일은 제가 다합니다. 기획에서부터 정산에 이르기까지, 연습실 운영과 시설 관리도 모두 제몫이구요. 이제 저 행정업무도 잘해요.


(예술인들이 잘 적응 안 되는 서류와 기금 정산 등 행정적인 업무를 도와줄 누구 하나 없이 꾸려가는 단체가 강원도에서는 흔한 일이지만 이처럼 현실을 마주할 때마다 그들의 열악한 환경에 답답함이 차오른다.)

 

김지희8.jpg

 


- ‘북 치고 장구 친다’는 말처럼 예술 활동 기반이 약한 곳에서 줄곧 숨이 차도록 달리기를하고 있는 그에게 이야기의 정리를 위해 질문을 뱉았다.“앞으로 무얼 하고 싶어요?”

 

■ 10년째 여전히 돌을 고르고 있는 느낌이에요. 지역의 소리를 찾고 그걸 작품으로 만들어보려고 여러 가지를 시도했는데 함께하는 지역 어르신들과 생각이 다를 때도 많고, 지속적으로 하기 어려운 일도 많아요.
실험적인 것을 여러 개 하는 것이 힘들지요. 그래도 최근에는 도립극단 공연에 참여면서 많은 분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분들과 협력하기도 해 좋아요. 내년이면 창단 10주년이에요. 소리뮤지컬을 해보고 싶어요.
‘더 좋은 작품을 해야지.’ 하는 생각을 하다가 그러면 더 좋은 작품이란 뭔가 하는 근원적인 고민도해요. 그리고 크게 관심을 끌지 못하는 지역 이야기를 나는 왜 하고 있을까 생각도 하구요.

 

텔레비전에서 만난 유명 국악인의 공연에는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리지만 우리 동네 이야기, 우리가 사는 이야기를 하면 별 관심 없어 하는 현실, 그 현실을 바라보며 자신에게 나는 왜 이 일에 마음을 쏟게 되었을까 고민하는 그, 농사를 짓는 일이 어려움에 봉착하며 농사를 포기하고 남편이 취업을 하면서 정금리를 떠나왔다는 그, 지금 김지희는 아마 새로운 길을 열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도시에서 농촌으로 이주하면서 내가 사는 공간과 사람에 대한 관심을 갖고 쉼 없는 시도를 해온 그 힘은 한걸음 나아가는데 충분한 에너지가 될 것이다


촉박한 시간이었지만 김지희는 깊은 속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열어주었다, 아마 동네 어르신들과 소리도 하고 이야기도 해온 탓일 거라 짐작해본다. 그렇게 스스로 문을 열고 농민으로 예술가로 살아왔으니.


이야기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내가 해오는 작업과 유사한 일을 다른 방식으로 하는 그와 나에게 한마디를 남긴다.
‘나와 내 주변의 이야기에서부터 출발한 이야기들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 거라는 믿음, 우리 그걸 갖자.’

 

유현옥 문화통신 편집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