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레마을의 한지작가 함섭

2011.06.03 00:12

문화통신 조회 수:5343

함섭01.png     금병산이 품고 있어 아늑한 실레마을, 그 금병산 턱밑에 한지작가 함섭의 둥지가 있다. 화가 함섭. 그에게는한지작가라는말이 늘 따라붙는다.
그림이 한지를 소재로 하고 있기 때문에 붙은 별호이다. 한지를 소재로 한 다이나믹하고도 현대적감각의 그림은 해외시장에서여러 차례솔드 아웃(sold out)을 기록한 작가로 만들었다.
지난해 3월, 그가 소설가 감유정의 고향이자 작품 배경지인 춘천시 신동면 증리 실레마을로 옮겨왔다. 춘천출신인그가오랜 서울생활의종지부 찍고 귀향을한 것이다.
“고향으로 와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어디로 갈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전상국 선생의 소개로 이곳에 왔는데 느낌이 좋았어요. 포근하게 나를 안아주는 것 같아 좋더군요. 그래서 2009년 봄에
땅을 구매해서둘러 집을 지었지요. ”
좌청룡 우백호의 땅이라는 그의 자랑이 아니어도 이곳은 솥이 앉혀있는 형상이어서 실레마을이라 이름지어진 곳이다. 소설가 김유정도 자신의 수필에서 그런 고향의 감성을 이야기했다.
그 가운데서도작가가 자리한작업실은봄볕을가득 받는 전망좋은곳이다.

 

    올해 70을 맞은 함섭은 나이답지 않은 맑은 피부에 밝은 성격이어서 사람들에 대한 경계심이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고향에 와서 친구들과 어울리고술 한잔 나누고, 밥같이 먹는 일을 즐긴다.
이런 생활이작품 활동에 방해가 되지 않느냐는 물음에 그는 단호하게‘아니요.’이다.
이제 막 1년을 넘겼지만 그 사이 작업량이 만만치 않음을 설명한다. 200호 20점, 100호 10점… 하루도 쉬지 않고 작업을 한다는 그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틀을 내리 쉰 적이 없다고 한다.

 

    다른 일 때문에 작업을 하기 어려워도 돌아오면 꼭 작업실을 들렀다가 가야 다음날 작업을 할 수 있단다.
“일은 저지르면 수습이 됩니다.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도 일단 시작하죠. 선이라고 긋고 나면 그 다음 작업을 할 수가 있어요.”
작업실에 갔을 때 새 작업을 하려는지 큰 캔버스가 펼쳐져 있는 것을 보고 저것이 작가를 얼마나 위압할까속으로 생각하며질문을 하려다 쏙 들어가버렸다.


    그에게서는 부지런함과 날마다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는 재치가 몸에 배어있다. 그림 작업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 인터뷰하기 전, 점심을 함께 먹었는데 두부찌개국
물에 육수를 더 붓고 밥을 말아 끓이면 술 먹은 해장으로 그만이라고 열심히 설명하는 모습에서도 그런 태도를 읽을수 있었다.

한국사람다운 작품을 고민하면서 만난 한지

“한지작업은어떻게하게 되셨어요?”
빤한 질문이지만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던진 물음에 그의 답은 장편으로 쏟아진다.

 

함섭03.png

 


    홍익대 미대를 나온 그는 대학 1학년 때인 1962년 제1회 강원도 미술전람회(현 강원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본격적인 작업을 한 것은 대학졸업 후 군대를 갔다 와서인 69년도. 당시 주류를 이루던 화풍과 다른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데 몰두한 그는 제3회 오리진전에 출품, 호평을 받게 되며 78년에 첫 개인전을 열었다. 추상성을 갖는 회화작업을 지속해온 그는 개인전에서 초가지붕의 단면을 보는 듯한 그림을 발표,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본명이 함종섭인 그는 작품발표 시 함섭으로 종종 활동해왔기 때문에 개인전부터 본격적으로 섭이라는 외자 이름으로활동한다.

함섭04.png

 


    한지라는 표현 소재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은 71년도 미도파 개관전에 작품을 출품하면서 한지를 소재로 인간의 파괴 본능을 표현한 것이 출발점이었다고 한다. 찢어놓은 한지를 관람객이 호기심으로 더 찢게 되어 완성하는 작품이었다.
이후 하얀 창호를 유화로 표현하다가 아예 한지로 직접 표현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으로 본격적으로 한지를 사용하게 되었다. 여기서 더 나아가 한지를 통해 한국적인 감각의 작품을 해야겠다는생각을 하게된다.
“잘 아는 마르꼬 수사님과 그림을 들고 가는데 사람들이 내 그림을 그 분 것으로 생각하는거야. 그래서 이건 아닌데하는 고민을 했어요. 그래서 한국의 역사와문화를 공부했죠.
그러다 발견한 것이 지공예의 우수성이에요. 우리나라 옛 생활용품에 지공예로 된 것이 많잖아요? 그 쓰임새가 아주 다양하죠. 그 가운데 함에 종이를 오려붙이는 지공예 방법을 현대적인 미술로발전 시킨 것이에요.”
소재의 독특성과 작가가 꾸준히 추구해온 작품성이 조화를 이뤄 한국적 정체성을 가진 작품으로 탄생했고 그의 작업은 그만의 특징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또 이 작품들은 외국의 미술시장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함섭02.png

     그의 작품은 추상적인 이미지로 순간적인 창의력, 우연성이 발휘된다. 마구 흐트러져 있는 재료들을 들여다 보다가 문득 떠오르는 감각으로 순간의 작업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작업과정에서 우연하게 이루어진 작업을 토대로 창조적인 힘이 발휘되기도 한다. 미술평론가 임두빈은 이렇게 그의 작품 특성을 말하고 있다.

 

‘함섭의 그림은 외형을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가시적인 사물들의 존재 근거가 되고있는 생성의 ’기‘를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 궤적인 대상으로 형상화되기 이전의 ’생성의 기운‘을 드러내기 위해 추상적인 호병어법을 구사하고 있디.
그의 작업실 한 켠에는 조각난 한지들이 쓰레기더미처럼 늘어져 있다. 가끔 작업실을 찾은 사람들이 버린 것인줄 알고 거기다 쓰레기를 버리는 일도 있다고 하는데 작가는 그것이 자신의 ‘팔레트’라고 말한다. 한 조각의 종이가 그의 손에서 선택되어 화폭에 옮겨져 사람들에게 무한한 상상력을일으키는선이 되고 형체가되는 것이다.

    작가는 좋은 눈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열린 마음, 그리고 깨어있어야 좋은 작품을 할 수 있다는 그는 요즈음 자신의 작품활동 뿐만 아니라 후배들이 재능을 키우고 미술시장에 연결해 주는 일에도 적지 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의 스튜디오는 작업실과 전시실, 그리고 원룸형태의 숙박시설로 구성되어 있다. 지역의 후배들과 그 스튜디오에서 가끔 전시회를 열기도 하고 서울의 각종 전시회에 지역작가들을 소개한다.


    4월 21일부터 함섭 스튜디오에서는‘재료의 다양성’을 주제로 그를 포함한 전국의 작가 10명의 전시회가 열린다. 소재의 특이성을 가진 작가를 선별해 다채로운 작품세계를 보여주고 감추어 있는 작가를 발굴하기 위해 여는 전시회다. 해외 전시를 자주 다니다보니 외국 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봄으로써 그 것을 적지 않은 공부룰 했다는 그는 그 눈으로 숨어있는 작가들을 발굴해내는 일에도 관심을 기울이려고 한다. 하지만 그가 가장 행복해 하는 것은 자연속에서 넉넉한 작업장을 마련했으니 좋은 작업을 하는 것. 이런 환경에서 좋은 작품을 만들지 않으면 자신이 머리가 나쁘다는 증거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그는 올해 11월 예술의 전당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갖는다. 그 전시는 모두 최근작으로만 한다며 자신의 열정적인 작품활동을 에둘러 표현한다.


    자신이 소유한 작업실에서 보다 자유롭게 작품을 창작하고 싶어 고향으로 왔다는 그는 지인들을 만나는일, 작품을하는 일, 어느 하나 소홀하지않으며 조화를잘 이루는 것 같다.
하지만 간혹 자신의 행동이 예상하지 못했던 남의 밥그릇 뺏는 일로 여겨지기도해 곤혹스러워 한다. 삶을 물처럼 살고 싶다는 그는 그런 일도 곧 털어낼 것이다. 필요할 때는 그곳에 있지만 그 역할을 다하면 없어지는 그런 역할, 쉬워 보이지 않는 일이지만 그것을 실천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 작가 함섭, 그의 소망대로 삶이 자연 속에서 자연처럼 살아가며 예술가의 감성으로 그것을 창작해내 많은 사람들과 나눌 것이다.

 

유현옥 본지 편집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