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국수.jpg 춘천으로 이사 온 지 7년째. 막국수 맛에 적응하는데 3년쯤 걸렸다고 하면 춘천 토박이들은 진짜 그러냐고 의아하게 묻고, 나와 같은 외지 출신들은 고개를 끄덕이곤 한다. 대부분은 서울서 족발을 주문하면 딸려오던 쟁반막국수를 떠올리다가 약간 밍밍하기도 한 강원도 막국수 맛에 적잖이 당황하게 되는 것이다.


각양각색의 채소와 과일을 썰어 접시 가장자리에 둘러주고 진한 양념장으로 비벼 먹는 쟁반막국수와는 달리 단출한 비주얼의 막국수는 옆 사람 조언대로 양념을 제대로 한 것 같은데도 생각했던 맛이 아니니 나와는 맞지않는 음식이라며 밀쳐두기 십상이다.


게다가 막국수에 대한 얘기라면 춘천사람 누구나 한마디씩 거들고 나서니 선택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그 집은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맛이 변했다느니, 그 집은 서울사람들 입맛 따라 달라졌다느니, 그래도 그 집이 가장 원조에 가깝다느니, 그 집은 춘천사람들은 안 가는 집이라느니…. 어디 그 뿐이던가, 면수에 간하는 법부터 막국수에 양념을 더하는 것까지 어려서부터 익혀온 각종 비법을 전수하기에 이르면 ‘내 맛 찾기’는 점점 더 미궁속으로 빠져들게 마련이다. 대체 어딜 가서 어떻게 먹는 것이 막국수 진짜 맛 찾기의 모범답안이란 말인가.


뭐든지 세월이 약이라고 이러저러한 자리에서 막국수와 만나길 수 십 차례, 어느덧 나만의 요령이 생겨 심심한 것 같으면서도 담백한 그 맛에 익숙해지면 춘천을 찾는 손님들에게도 닭갈비 대신 막국수를 권하게 된다. 웰빙이 대세여서 그랬는지 아니면 전국 각지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춘천닭갈비’간판을 붙인 아류들 때문이었는지 막국수에 대한 외지인들의 선호도는 높아지는 추세다. 내가 경험한막국수 적응기를 전하며 미리 마음의 준비(?)를 시킨 탓인지 다들 생각보다는 만족스러운 막국수 후기와 평점을 남기고 돌아간다.


막국수 집에 자리를 잡고 앉으면 먼저 뜨끈한 면수(메밀면 삶은 물)가 주전자에 담겨 나온다. 이걸 컵에 따르고 간장으로 간을 해서 마시는 것이 보편적인 에피타이저인데, 술 마신 다음날 해장으로도 안성맞춤이다. 이어서 막국수가 나오면 집집마다 특색이 있는 고유의 육수(차게 식힌 고기 육수나 동치미국물 등)를 적당히 부어주고 겨자와 설탕, 식초 등을 기호에 따라 가미해서 먹게 된다. 다 먹은 막국수 그릇에 다시 면수를 부어 후루룩 마시는 것이 마무리인데 이건 사찰의 바루공양이 떠오르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렇게 뭔가 격식을 갖춘 막국수에다 메밀전병(일명 총떡)이나 감자전을 한 접시 추가하고, 막걸리까지 한 잔 곁들이면 살짝궁 낮술도 부담스럽지 않은 한 상이 된다. 상상만으로도 침이 꼴깍 넘어가는 장면이다.


얼마 전 페이스북에 춘천 막국수의 오리지널을 소개해 달라는 포스팅을 남겼더니 댓글이 50개나 달렸다. 추천받은 막국수 집을 다 돌아보려면 기둥뿌리를 뽑아야 할 판이다. 1년 365일 하루 세 끼를 모두 막국수로 때워도 그 많은 막국수 집을 다 돌아보긴 어려울 거라는 얘기도 들었다. 강원도는 넓고 막국수 집은 지천이니 모두 맞는 말이다. 막국수는 그 만큼 강원도를 대표하는 음식이기도 한 것이다.


짧은 생각을 덧붙이자면, 강원도에서 10년 이상 막국수를 만들고 있는 집들은 모두 인정해 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요즘같이 빨리빨리를 외치며 LTE급 스피드를 자랑하는 시대에 눈썹 위에 붙어있는 사람들의 입맛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바로 ‘오리지널’이자 ‘원조’의 저력일 테니까.
강원도는 춘천뿐만 아니라 남쪽으로는 홍천·횡성·봉평, 동쪽으로는 인제·양양까지 곳곳에 막국수 집들이 그 특별한 맛을 자랑하고 있다. 봄이 오면 ‘막국수 원정대’를 핑계로 강원도 유람이나 떠나자는 유혹이 자꾸만 내 등을 떠민다.

 

이민아 8년차 춘천시민으로 네이버 카페 <좋은 엄마오임> 운영자. 낭만 도시 춘천에서 ‘진짜 낭만을 찾고 있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