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맛

2014.04.17 18:35

문화통신 조회 수:8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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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가든 출장을 가든 그 동네 맛집부터 검색하는 나는 일명 ‘먹방’의 강자다. 별다른 메뉴가 아니더라도 정갈하게 차려진 음식을 보면 사진부터 찍게 된다. 그래도 나름의 엄격한 기준이 있어 사진을 선별하는데, 휴대전화에만 ‘먹자’라고 이름 붙은 폴더에 800여 장의 음식사진이 저장되어 있다. 그것도 용량초과로 꽤 많이 정리한 숫자이고, 천 장이 넘었던 시절도 있었다.

여행은 식도락이라고 그 지역의 다양한 별미를 맛보는 재미가 있다. 지난 여름에는 제주도를 여행하는 열흘 동안 꼬박꼬박 하루에 두 끼씩 생생한 먹방을 중계해서 지인들의 원망을 듣기도 했지만, 가끔씩 들여다보는 음식 사진만으로도 그 날을 떠올리며 재충전을 하게 되니 얼마나 좋은지. 출장도 마찬가지인데 운이 좋아서 일을 하면서도 맛집을 많이 돌아다니게 되었다. 재작년에는 화천군에서 만드는 ‘북한강 테이스트로드’라고 걷기길을 따라 이어진 22군데의 맛집을 홍보하는 프로젝트의 진행을 맡아서 한나절에 연달아 네 끼를 먹은 적도 있었다.
물론 다 맛이 훌륭했으니 가능한 일정이었다. 파로호의 횟집부터 어죽탕, 초계탕, 오골계구이까지 화천의 유명한 맛집은 다 둘러보는 것이었으니 그건 일이 아니라며 다들 부러워했었다.

그런데도 누군가 맛집을 소개해 달라고 하면 일단 말문이 막힌다. 음식을 드실 분들의 연령과 취향, 모임의 성격 등에 따라 너무 많은 변수가 작용한다는 걸 알아서 섣불리 어디가 맛있다고 말하기가 조심스러운 거다. 어찌 보면 맛집을 많이 알아서 생기는 부작용일 수도 있겠다.
그렇게 맛집을 찾아다니다가도 가끔씩 밖의 음식 말고 생각나는 것이 있으니 어릴 때 엄마가 해주던 된장찌개랑 계란찜이다. 된장이야 엄마처럼 직접 담근 걸로 끓이는 게 아니고 시판되는 걸 쓰니 그렇다 쳐도 계란찜은 대체 왜 그 맛이 나지 않는 것일까? 새우젓도 다져넣고, 애호박이랑 파도 썰어 넣어보지만, 엄마표 계란찜을 완벽하게 재현해내지는 못한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미묘한 맛의 차이가 분명하게 있는 것이다.

또 하나 엄마의 깻잎장아찌가 있다.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 유난히 입덧이 심했던 나는 겨우겨우 맹물만 먹으며 버티고 있었다. 입덧을 가라앉힌다는 이런저런 음식을 구해서 먹어보아도 별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비위만 더 상한 채 지쳐가고 있었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며칠째 누워만 있으면서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엄마가 만들어줬던 깻잎장아찌를 떠올린 것이다. 흰 쌀밥에 깻잎장아찌를 한 장 얹어서 입에 넣으면 이 메스꺼움과 울렁거림이 한꺼번에 사라질 것만 같았다. 그런데도 엄마의 깻잎장아찌를 먹지는 못했다.
멀리서 시어른을 모시고 사는 딸에게 그리 대단하지도 않은 친정 반찬을 보내기가 민망했다는 엄마도 그렇고, 그렇다고 그냥 참고 넘겼던 딸도 그렇고…. 벌써 근 이십 년 전 이야기다. 지금 생각해보니 깻잎장아찌는 어린 나이에 시집간 딸이 그리워했던 엄마의 냄새이자 엄마의 얼굴이었던 것인데.
그 때 태어난 아이가 벌써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나중에 시집가서 입덧을 하게 되면 내 딸은 엄마의 어떤 맛을 기억하게 될까 걱정이 앞선다. 바쁘다는 핑계로 빠르고 쉽게 만들 수 있는 음식만 해준 탓이리라.

그래도 내 아이들에겐 내가 해주었던 집밥이 ‘엄마 맛’으로 오래도록 기억되길 바란다. 사는 게 힘들 때나 축하할 일이 생겼을 때나 예전에 내가 만들어줬던 별 거 아닌 반찬들을 떠올렸으면 좋겠다. 그리고 지금의 나처럼 엄마 맛을 흉내 내며 엄마를 그리워했으면 좋겠다.

이민아 네이버 카페 좋은엄마모임 운영자. 낭만도시 춘천에서 진짜 낭만을 찾고 있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