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날의 배추굴쌈

2012.11.15 12:59

문화통신 조회 수:5537

김장 날의 배추굴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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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철이다. 배추 값이 금값이다, 고춧가루 가격이 급등세를 지속한다 해도 어머니들의 김장 열기는 식지 않는다.

 

텔레비전 뉴스에서 배추 값이 11월 말이면 떨어질테니 그때 김장을 하라는 권고가 있었다며 친정엄마에게 말했더니 가당치도 않다며 콧방귀다. 11월 말이면 자칫 배추가 얼어 값이 더 오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도 그럴 법해 더 이상 아무 말 안했더니 덜컥 코 앞으로 김장 날짜를 잡아 놓으셨다.

 

60포기를 주문했는데 덤으로 꽤 많이 왔다 하니 70~80포기는 너끈한 듯 싶었다. 지난해에 80포기를 담갔는데 그 정도 양과 얼추 비슷했다. 몇 함지마다 높이 쌓인 절임배추만 봐도 헉 소리가 난다. 김치통만 해도 스무통은 되는 듯 싶다.

 

허리가 뻐근하지만 그나마 굴 보쌈 덕분에 고됨이 덜어진다. 배추 속 넣으면서 한 번 씩 싸먹으라고 시뻘건 무채 위에 던져놓은 굴만 봐도 군침이 꼴깍 넘어간다.

 

굴쌈의 맛은 아주 어릴 때부터 길들여진 맛이다. 김장을 하면 으레 함께 해온 맛이다. 날씨가 쌀쌀해지고 이제 김장 때가 됐다 싶으면 슬슬 굴쌈을 먹고 싶은 충동이 입안을 채운다.

 

야들야들하고 노란 배추 잎 위에 고춧가루로 범벅된 새빨간 무채와 반들반들 윤이 나는 굴을 얹어 돌돌 말아 싸먹으면 싸하고 매콤하며 시원한 맛이 한 입 가득이다. 바다와 육지의 비릿하고 얼큰한 만남이다.

 

많이 먹으면 배탈이 난다지만 그건 나중 일이고 우선은 입맛부터 채우느라 바쁘다. 게으름에다 요령까지 피우는데 이골이 난, 나같은 막내 딸은 배추 속 넣는 일보다 굴쌈 싸먹는 일이 더 바쁠 지경이다.

 

쌈 파티는 김장이 다 끝난 후에도 이어진다. 이번엔 고기까지 곁들인다. 따로 반찬할 것 없이 배추국 끓이고 목살이나 통삼겹살을 된장 풀어 삶아 내면 된다.

 

배추를 뚝뚝 부러뜨려 끓인 배추국, 고소한 고갱이 부분만 골라낸 절임배추, 참깨 넣어 고소하게 무친 막 김치, 배추속으로 넣었던 얼큰한 무채, 싱싱한 굴, 삶은 돼지고기만 해도 한 상 꽉 찬다. 당연히 소주까지 곁들인다.

 

김치와 굴, 삶은 돼지고기의 맛이 조화롭다. 겨울을 버티는 힘을 마치 이 맛으로부터 얻는 듯 싶다. 이 맛은, 거의 비슷하게 조리하는 보쌈 집에서 먹는 것과도 뭔가 차이가 있다. 달짝지근하면서 입에 착 붙는 조미료의 맛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구수하고 얼큰하며 깊은 울림이 있다.

 

이게 엄마의 맛인가?

 

그러나 김장 덕에 엄마는 초죽음이 됐다. 벌써 70대 중반이 되어가는 엄마는 ‘나는 이제 김장 못하겠다’며 우리로서는 엄포로 들리는 엄살이시다.

 

그럼 어떡하냐 하면서도 철없는 자식들은 보쌈 앞에서만큼은 유유자적 신났다. 1년만의, 깊은 울림이 있는, 비릿하고 고소하고 얼큰한 이 만남과 이 맛이 즐겁다. 사람사는 맛이 집안에 꽉 찬다.

 

엄마는 내일 곧장 앓아누우실 테지만 죄송하게도 우리는 이 맛을 포기할 수 없으니 어쩌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