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운구곡 백운담과 여름방학

2013.06.28 16:18

문화통신 조회 수: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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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학이 되면 어딘가 가고 싶었다. 우리는 왜 친척이 별로 없을까? 불만이 생기는 때도 그 즈음이었다. 남들은 물놀이를 가고, 친척집도 가는데 시골에 있는 이모집 말고는 친척집이 없었다. 고향이 황해도인 아버지는 6.25전쟁 중 인민군 포로로 잡혔다가 남쪽에 남으셨으므로 사고무친이셨다.

긴 여름날 해가 내리쬐는 조그만 마당만 바라보면서 ‘심심한데…’ 그러다 엄마를 졸라 버스를 태워주면 가는 곳이 이모집이었다.

내 또래와 그 위아래, 여섯명이나 있는 큰이모댁 아이들과 거의 맨몸이다시피 물가에서 뛰어노는 여름방학은 참 신이 났다. 너른 바위에 군데군데 움푹한 곳에 풀들을 빻아서 김치를 만들고 옥수수알을 쌀로 하여 밥상을 차리던 소꿉놀이, 물 속 자맥질하기, 사방이 캄캄하여 눈을 뜨고 있어도 눈감고 가는 것 같은 길을 오로지 사촌의 손에 의지해 밤길을 걷어 학교마당으로 영화구경하기….

내 감성의 항아리에는 그런 경험들이 담겨있다. 가난한 큰이모는 내가 가면 쌀밥을 해줄 수 없고 감자나 옥수수만 주는 것을 많이 속상해 했는데 그래도 거길 가겠다고 졸라 며칠씩 놀고 오던 유년의 여름방학.

 

 

지독한 멀미 기억만 있던 그곳을 요즘 자주 가게 되었다.20130626_095539.jpg

 화천에 있는 곡운구곡을 답사할 일이 있어서이다. 곡운구곡

 그 명승이 내가 여름이면 놀던 물가였다. 그것은 안 것은 어른이 되어서이다.

곰곰 기억을 더듬으면 나와 내 사촌들의 놀이터는 곡운구곡 제4곡 백운담이다. 군부대가 가까이 있었고, 너른 바위에서 놀다 물속으로 풍덩풍덩 들어가던 곳, 며칠 전 다시 그곳을 갈 일이 있었다. 길가에 명승지 표지는 있지만 특별한 관리가 없이 관광객이 먹다 남은 음식쓰레기들이 봉투에 담겨 굴러다니고 있었다. 수십년을 거스르는 기억은 토막나고 희미하다. 마치 그 쓰레기봉투 속 조각들처럼 너덜너덜하다. 그래도 향기가 새어나온다. 더러는 재구성되어 내 가슴에 박혀있을 테다. 하지만 그렇게 구성을 할 수 있는 소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여름방학을 며칠씩 그곳에서 놀다면 집이 그립다. 일찍 캄캄해지는 시골집에 앉아 검은산을 바라보면 괜히 슬퍼져 이가 아픈 것 같다고 핑계를 댔다. 그러다 “집에 갈래?” 하고 이모부가 물으면 고개를 끄덕이다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그 기억의 골짜기들. 그리움으로 오래 서성였다.                                                                      

 

늘 소란하던 시장통에서 살던 내게 넉넉한 시골 정서를 키워준 곳, 시간을 더 거슬러 조선의 선비들이 정치적 갈등을 피해 낙원처럼 살던 곳이다. 그곳이 조금 더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공간으로 보호되고 존중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