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의상실

2013.10.28 19:40

문화통신 조회 수:1318

resize봄내의상실.jpg 추억은 때때로 전혀 의외의 물건에서 기억의 끈을 이어놓는다.
지난 일요일, 모처럼 옷장정리를 하다가 신기한 물건 하나를 발견했다. 오랫동안 입지 않는 옷들을 과감히 정리하기로 하고 옷장을 뒤적이는 중이었다. 버릴 옷가지와 함께 옷가게나 세탁소에서 딸려온 옷걸이들도 빼놓다가 남편이 묻는다.


“봄내 의상실에서도 옷을 해 입었어?”
흰 플라스틱 옷걸이에는 ‘봄내 의상실’ 이름과 한자리 국번의 전화번호가 있었다. 옷걸이 가운데 목 부분은 앙증맞은 나비넥타이 모양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었다.
“아! 봄내….”


그 의상실은 춘천의 중앙로에 위치한 제법 고급 옷집이었다. 기성복이 한창 나오기 시작하던 시절,  춘천지역에서 제법 부유층 여성들이 옷을 맞춰 입는 곳이었기에 내가 그런 곳에서 옷을 해 입은 적이 있는지 남편은 의아해 했다.


나는 거기서 딱 한번 옷을 해 입었다. 80년대 중반, 결혼을 하면서 혼인예복을 맞춘 것이다. 자주색 비로드(veludo)투피스인데 얇은 털로 이루어진 이 옷은 입기에 무척 조심스러워 결혼식 때 입고 그 이후로는 특별한 의식이 있을 때 몇 번 더 입었을 뿐이다. 옷감은 시댁에서 주었고 그 옷감을 받아 춘천에서 제법 고급 의상실에서 옷을 맞춘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옷이기에 평시에는 입을 엄두가 나지 않아 몇 번 입지 못했고, 이제는 체형 때문에 영 입을 수 없지만  아직 내 옷장 가장 오른쪽에 늘 자리한다. 


봄내 의상실 주인은 연극을 하는 눈이 크고 인상이 강한 분이었다. 영화배우로도 활동했던 그 분은 춘천의 빼놓을 수없는 문화인이고 예술인이었다. 남자가 운영하는 의상실이라는 점만 해도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춘천에는 이 의상실 말고도 몇몇 명성을 자랑하는 의상실들이 요선동에 많았다. 하지만 이들은 기성복이 점점 발전하면서 사라져갔다. 때로는 소문의 산실이기도 하도 생활의 여유가 있는 여성들의 문화공간이기도 했던 의상실 풍경들이 아스라이 떠오른다.


그곳에서 맞춘 옷에 딸려온 옷걸이가 새삼 눈에 들어오며 반갑다. 때가 낀 옷걸이를 비눗물로 씻으며 흐려진 기억속의 사람들과 춘천의 풍경을 기억의 렌즈에 담는다.


요선동의 의상실 골목, 명동 입구에 있던 레코드 가게, 중앙로에 있던 음악감상실….
춘천의 거리를 다닐때마다 옛 공간에 담겨있던 기억과 삶의 흔적이 빠르게 사라지는 것을 보게된다. 이 기억을 한낮 개인의 감상으로만 남겨야 하나? ‘오래된 미래’로 남을 방법은 없을까? 생각이 많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