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랑

2014.02.11 13:33

문화통신 조회 수:1135

바랑.jpg 상자, 장롱, 창고 등은 자본주의의 산물이다. 소유 할수록 그 공간을 확대해야 하는 단위의 순열(巡閱)이다. 쉽게 말해 이들은 소유할수록 커지는 상자(상자-장롱-집-창고)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자본주의는 이렇게 움직이는 상자를 만들어 소유를 수시로 교환, 운반함으로 그 욕망을 증대 확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본주의와 상자’ 는 아주 면밀한 동조를 이루고 있다. 그러면 이 자본주의적인 ‘상자’의 원형은 뭘까?

‘가방’과 ‘보자기’ 다. 물론 서양인들이 상자나 궤짝을 들고 다닐 수 있게 손잡이를 달아 ‘가방’을 만들었다면, 우리네는 3차원의 형태를 취하기도 하고 2차원이 되기도 하는 ‘보자기’를 만들었다. 가방은 ‘넣는’ 구실만 감당 하지만, 보자기는 ‘싸고’, ‘쓰고’, ‘두르고’, ‘덮고’, ‘씌우고’, ‘가리’운다. 가방이 담기는 것과 상관없이 독립된 자기 존재를 주장한다면, 보자기는 융통성과 다기능의 유무상통의 변용도구다. 담기는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그 존재의 성격이 규정되는, 존재론적인 발상의 산물이다.

보자기는 소유하려는 도구가 아니다.
존재하려는, 존재케 하는 의식의 부분이다.

뭐, 이런 골 아픈 이야기로 글을 시작하는가 하면, 근간 내가 들고 다니는 4개의 가방 이야기를 하려고 해서다.
출세를 할수록, 남 앞에 나서는 일이 많을수록 사실 값나가고 이름 뻗힌 근사한 가방을 턱하니(안에는 든 것도 별게 아니면서) 메거나 들고 싶은 게 졸장부의 마음이다. 그래서 나도 목사가 되는 해에 자천 타천하여 갈색 쇠가죽 가방 하나를 얻어 들고 재며 다녔다. 그러다가 철이 조금 나서 후배 목사가 그 가방을 탐하는 마음을 드러 내기에 얼른 줘 버렸다. 그 즈음 청담동 설교를 나가게 되었는데, 각 봉투에 성경책을 담아 가지고 겨드랑이에끼고 다니는 내가 초라하게 보인다면서 지인이 짝퉁 ‘발리’ 가방 하나를 선물했다. 진짜를 가짜라고 했는지 아니면 가짜를 가짜라고 했는지 알바 아니지만 나로서는 처음 보는 상표인지라 되는대로 걸메고 다녔다.

어느 날, 청담동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탔는데 재수 좋게 아는 이가 내 옆자리에 탔다. 그가 내 가방을 주~욱 보더니 이런다. “청담동 드나드시더니 목사님도 명품으로 바꾸셨네요?”이 말이 얼마나 내 혼을 잡치게 하던지, 그날로 그 시커먼 발리 가방을 내던졌다.
며칠 동안, 명절날 사과상자 쌌던 분홍색 나일론 보자기를 들고 다녔더니 집사님 한분이 퀼트가방이라면서 애기 기저귀 가방 보다 약간 작은 천 가방 하나를 선물로 주셨다. 그래서 한 동안 즐겁게 천 가방을 들고 다녔다.
나름 촉감도 좋고, 성경책을 넣었다 꺼냈다하기도 쉬워서 마음에 들어서 줄창 사용했다. 그런데 엊그제, 어느 후배 목사들과 저녁을 나누고 헤어지는데 민목사 편으로 검정색 쇠가죽 가방이 내게 전달되었다. 후배 목사가 내게 전해 주라고 했단다. 제법 날씬한 게, 뭔가 쫌 있어 보이는, 뭐 그런 맵시니 필시 돈 푼 깨나 집어 줬지 싶다. 그 즉시 누구에게 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는데 꾹꾹 눌러 참았다.

오늘, 금년 마지막 월요일 ‘청담동 모임’을 하고 내려오는 길에 길가에 선 트럭을 보았다. 온갖 짚공예품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돌아다니며 파는 이동 차량이었다. 없는 게 없는, 신기하기까지 한 온갖 짚공예품들이 자동차에 매달려 있었다. 그러다가 내 눈에 들어온 ‘걸망’하나!
시골 사람들은 흔히 이 가방을 ‘背囊(바랑)’이라고도 하고, ‘주루먹’이라고도 하고, ‘걸망’이라고도 했다. 요즘 젊은 애들 말로 하면 ‘백팩 (BackPack)’이다. 이를 테면 ‘조선배낭’쯤 되는 것인데, 보통 닥나무의 껍질이나 질긴 여러해살이 풀 따위를 꼬고 엮어서 만든다. 질겨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내가 구입한, 30,000원에 산 이 ‘주루먹’은 삼베 껍질로 엮고 꼬아서 만든 것이다.

그 모양새를 볼 것 같으면 영 뭘 담을 것 같지 않은 몰골이다. 구멍이 숭숭 나서 뭐든지 넣으면 줄줄 새 나오기 십상이고, 위는 홀쳐 거는 어깨끈이 들어가기 때문에 뭣하나 신통한 물건을 담거나 감출 수 없는 형국이다. 딱히 ‘어떤 욕망의 표상’을 소유하겠다는 의지보다는 그저 산이나 들판을 가는 나그네의 등짝이나 섭섭지 않게 해보겠다는 심사정도다.
거의 그 쓰임이 보자기 수준이다.
보자기 같은 가방, 이게 우리의 걸망이다.
이제 세상에 으스댈게 뭐 있겠나.
그저 빈 ‘바랑’ 하나 걸머지고 바람의 왕래나 환영해야지!

허태수 춘천성암교회 목사. <자기포기>, <영혼의 약국>, <사람이 중심이지요> 등의 책을 냈으며 글을 통해 삶의 본질을 일깨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