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 감기

2010.10.18 11:25

문화통신 조회 수:6375

  갑자기 마트에서 이불 꿰는 실을 산 것은 ‘그리운 어머니’라는 타이틀로 열린 정경숙보자기 전에서 보았던 그 것 때문이었다.

나무로 만든 낡은 실패. 퇴색한 실패가 작가의 친정어머니가 만든 보자기와 함께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내 집의 쓰지 않는 실패가 생각났다. 내가 혼인할 때 친정어머니가 챙겨주신 바느질 바구니와 그 안에 있는 바느질 용품 중에 있는 실패.

 

실감개.JPG   빨간색에 초록의 나뭇잎 무늬가 있는 그 실패에 나는 한 번도 실을 감아본 적이 없었다. 그저 구색으로 바느질함이 있었지만 실제 바느질 할 일이란 게 단추를 달거나 튿어진 치맛단 등속을 간신히 꿰매는 수준의 바느질만 하는 내게는 그 실패에 굵은 실을 두툼히 감았다가 쓰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그 전시를 본 여운 때문인지 장보러 갔다가 누런 이불 꿰는 실을 산 것이다.

그리고 군대에 가기 위해 학교를 쉬고 있는 아들에게 팔을 벌리고 앉아 있으라고 하고 실을 풀어서 실패에 감기 시작했다. 그 행동은 내가 어릴 때 어머니가 바느질 하기 위해 이불꿰는 실이나 털옷을 짜기 위해 털실을 덩어리 지을 때 나와 내 동생들이 놀이처럼 하던 동작이었다.

 
  몇 바퀴나 돌렸을까? 아들놈은 뻣뻣하기 그지없는 동작으로 마지못해 팔을 내어놓고 있는 형국으로 이 놀이에 영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야, 그렇게 말고 팔목을 좀 살짝 살짝 돌려야지. 이리 가져와봐 내가 시범을 보일게.”

실이 풀리는 방향으로 팔목을 조금씩 돌려서 풀리기 쉽게 해주는 시범을 멋지게 보였다. 그러다보니 또 녀석은 실패에 오른쪽, 왼쪽 균형을 맞추어 예쁘게 통통하게 감아야 하는 데 감은 실 모양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

“아이고, 그렇게 하면 어떻게 해. 좀 잘 해봐라!”

이렇게 옥신각신 하다가 결국은 실 꾸러미를 빼앗아 발에 까고 하다가 실이 헝클어져 버렸다. 화가 치밀어 꼬인 실을 풀어 보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실을 홱 집어던졌다. 오기를 부리다보니 열만 확확 오른다.

 

  화가 치밀어 욕실에 들어가 샤워를 했다. 씩씩대며 머리부터 물을 뿌리다 “픽!” 웃음이 터진다. 혼자 깔깔대고 웃었다. 아이에게는 아무 감흥도 없는 일을 내 추억에 젖어 옛 흉내를 내다가 열 오른 내 꼴이 우습기 짝이 없다. 다음 달이면 군대 갈 놈에게 무슨 재미있는 일이겠는가. 엄마의 옛 추억을 위해 봉사해달라고 친절히 사정을 해볼 것이지….

 

  나의 추억찾기는 그렇게 싱겁게 끝났다. 울퉁불퉁 감긴 실만이 지금은 군대에 가 있는 녀석과 몇 십분 생 쇼를 했던 흔적으로 남아있다.

실패에 실을 감아 이불을 꿰매는 어머니 옆에서 새로 빨아 씌운 이불에 먼저 뒹굴며 빨래비누 냄새에 상큼함을 느꼈던 추억, 아니면 실을 감는 일 자체가 그저 재미있기만 했던 유년의 기억들, 차라리 친정어머니를 찾아가서 해보자고 했어야 했던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