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백합 그늘 아래서

2011.08.03 11:05

문화통신 조회 수:8712

pic29.gif    즐거웠거나 괴로웠거나, 그 시절을 이기고 뒤돌아보면 모두가 그리운 추억이다.
내가 고교시절에 대해 갖는 감정도 이제는 그런 것으로 퇴색되었다. 삶 앞에 오로지 대학만 있는 것처럼 선생님들은 우리들을 몰아 세웠지만 내게 대학은 너무 멀리 있었다. 집안사정은 어려웠고 동생들은 삼 년 터울로 ‘앞이 빨리 빠져야 내 순서가 오는데...’초조하게 기다리는 고객처럼 내 뒤에 바싹 붙어있었다. 존재에 대한혼란,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 미래, 그 현실이 숨 막히게 했고 머리는 텅 비어갔다. 공부로 칭찬 받으며 살던 삶은 방향을 잃은 탓에 형편없이 나락으로 뒹굴었다.


  돌이켜보면 그렇게 절망적인 상황도 아니었건만, 오로지 대학으로만 문이 열려있던 우리의 환경은 세상에서 내가 가장 불행한 사람인줄 착각하며 살게 했다. 그런 시절을 지나 새로운 세계를 바라보는 눈을 갖게 되었고, 가진 것을 즐길 줄도 알게 된 이즈음, 모교에 갈 일이 생겼다. 출퇴근길에 지나치는 곳이지만 학교 안으로, 그것도 교실 안으로 갈 일은 거의 없는데 다시 그 교실 속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내이야기를 들으려 40여명의 아이들이 모인 가운데서 나는 그 시절 나를 찾아보았다. 저기 어디쯤 크게 눈에 띄지도 않고, 말없이 눈을 내리깔고 앉아있을 나.
그 아이를 위해 말한다‘. 삶은 무엇이 되는가 보다는 어떻게 살려고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공부는 자기가 필요를 느낄 때 해야 한다... ’그 아이는 내 말을 이해했을까? 아직 그 말을 이해하기에는 이른 나이라는 것을 안다. 자기 나름의 혹독한 시절을 지나야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니까. 아픈 시절이어서 잊고 싶었고, 그래서 그 시간이 잘 생각나지 않아 당혹스러울 때도 있었던 나의 고교시절, 그곳 마당 한가운데에는 아주 오래된 나무 한 그루가 있다. 1934년 개교할 당시에도 교정에 있었던 목백합나무, 일본동문들이 이 학교에 왔을 때도 오랫동안 그 나무를 바라보며 추억에 젖던 모습을 본적이 있다.‘그래, 우리가 기억하지 못할 때도 너는 거기 있었지. 그때 우리들의 이야기를 너는 다 기억하고 있지?’

  이제 나도 예전의 그 할머니동문들처럼 그 나무를 오랫동안 바라본다. 그리고 아픈 기억들도 나를 성장시킨 비옥한 거름이었음을 깨달으며 그 동안 사이가 나빴던 나의 여고시절 기억과 화해한다. 그리고 그 기념으로 목백합나무 아래서 아름다운 이벤트 하나를 꿈꾼다. 목백합과 함께 질풍노도의 청춘을 보낸 동문들을 위해, 그리고 그곳을 선망의대상으로, 호기심의대상으로 삼았던 사람들을 위해. 함께 즐기는 축제를 벌이고 싶다.


  학교가 이전됨에 따라 80에 가까운 연륜을 남기고 이제 그 운명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그 나무에게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깊은 감사를 전한다.
그러면서 어느 학교를 나왔느냐가 삶에서 특정한 훈장이 되거나, 지겨운 딱지가 되어 괴롭지 않고, 그 시절을 함께했다는 것만으로 아름답고 반갑게 동문들을 만나는 사회를 꿈꾼다.
특정집단의 추억보다는 다 함께 어우러지며 화해를 나누는 그런 축제를 목백합나무 아래서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