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인형이 심어준 즐거움

2008.11.06 17:14

문화통신 조회 수:7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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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옥의 추억창고


종이인형이 심어준 즐거움



유아원에 다니는 친척아이가 있다. 이 아이는 제 할아버지 할머니와  유아원놀이를 자주한다. 자기는 선생님이고 할아버지 할머니는 유아원생들이다. “김동준, 말 안들으면 옥상에 보낼거야!” 아이가 선생님을 흉내내는 말에 어른들은 ‘네!’하고 답하며 고분고분하는데 이 모양새를 보고 있으면 그 유아원에서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다 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거울이다. 제부모가 하는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며 자신의 역할을 학습한다.

장사를 하는 부모님을 둔 나는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놀이를 참 많이 한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셈도 잘 못하고 그 분야에는 영 재능이 없는 것이 이상하기는 하지만-.

인형이나 소꿉은 그 역할놀이의 도구이다. 아이들이 자신의 부모가 되어 역할을 재현하는, 그리하여 학습하는 도구이다.

나는 인형놀이를 참 많이 한 것 같다. 활동적이지 못한 성격탓에 친구들과 인형을 만지작 거리거나 소꿉놀이를 하면서 내가 보았던, 내가 생각하는 일상을 이리저리 꿈꾸어보는 일이 내 놀이의 대분이었던 것이다.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한 친구가 있어 자연 뛰어노는 일보다는 정적인 놀이에 빠졌던 것 같기도 하다.

그탓에 상상도 많아져 직접 만화를 그리는 일도 제법했던 기억을 더듬을 수 있다.

 요즘은 인형의 종류도 각양각색이어서 아이들 소꿉은 인형을 중심으로 화려한 서구적 살림살이가 제법 큰 부피를 차지한다.

그러나 나의 유년시절 인형은 딱딱한  머리카락이 하늘거리지 않고 눈도 움직이지 않는 모양새의 인형이었고 조금 더 자라 초등학교 시절에는  종이 인형이 있었다. 이 인형의 장점은 여러 종류의 옷을 입힐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옷저옷 입혀보는 놀이에서 일상의 답답함을 옷갈아입기로 풀어내는 소비욕구를 배운 것일까…( 가끔 답답할 때 옷을 사기는 하지만) 우리들의 꿈은 너무나 평면적이었다.

앞면만이 화려한 것이었다. 이 종이 인형에는 그런 평면적 꿈이 담겨있다. 그 이면은 상상이 대신할 뿐이었다.

침대에 주방기구에 화려한 살림살이를 가지고 하는 요즘 아이들의 인형놀이와 비교해 보면 초라하기 그지없는 이 종이 인형과 함께 형성된 우리들의 꿈은 그래서 풋풋하다.

함께 놀던 경자, 경숙이, 춘경이… 종이인형의 추억과 함께 중년이 되어버린 친구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린다. 그리운 이름들.

문화통신 2008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