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슬

2008.11.06 17:16

문화통신 조회 수:7270

 

유현옥의 추억창고

구슬


_36.jpg 우리에게는 ‘다마’로 통했지. 여자아이인 내게는 도달할 수 없는 그 무엇이기도 했고.

 학교 운동장에서, 동네 골목에서 사내아이들이 “따악-딱” 소리를 내며 구슬치기를 하는 모습은 참 이상했다. 밥도 안먹고 잠도 안잘 것 같은 표정으로 게임에 임하는 그들의 표정, 그것은 조금 과장하면 전투에 임하는 병사들의 모습이었던 것 같다. 마치 전리품을 챙기듯 하나 가득 그들의 주머니에서 쩔렁거리는 그것, 그 보물은 내게는 그저 낯설고 신기한 그 무엇이었지.

전혀 다른 세계의 것,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이 놀이 도구는 내게 여자와 남자라는 성역할 구분의 상징이었다. 먼거리에서 남자아이들이 흥미진진 몰두하는 모습을 구경만 했을 뿐 내손에 닿지 않았던 놀잇감.

그것에 가까이 하지 못한 경험은 성장하면서 남성의 세계에서 내가 이해하기 힘들고 접근하기 어려운 수많은 문화들의 시작일 뿐이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어느 남자선배가 말했다. “네가 남자들의 세계를 알아?” 술이야기를 하면서, 비록  방바닥을 설설기며 숙취의 괴로움을 당할지언정 술을 먹으며 어울리는 우리들만의 세계, 그 문화를 네가 제대로 아느냐는 말이었다.

그렇게 의기양양 남자들만의 세계를 고집하는 사람들을 따라다니며 내가 여자여서 불편하지 않도록 무진 애를 썼다.  뒷골목 술집을 따라다니고, 살인사건 현장, 통금이 넘은 시간 집창촌 따라다니기도 마다하지 않았건만 그래도 알듯 모를 듯한 남성들의 세계.

우리 모두에게 각각 쌓아놓은 장벽이었다. 서로에게 불편하기만 한 장벽.

이것을  깨뜨리기 위해 때로는 치열하게 설전도 하고, 슬그머니 피해가기도 하며 사회생활을 했다.

혼인을 해서 사내아이를 낳아 기르며 이 경계 허물기를 실천하느라 소꿉 놀잇감을 사주었다. 소꿉은 생활의 축소판이어서 남자나 여자나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완구이고 아이도 좋아했다. 그런데 어른들은 왜 사내아이에게 그런 장난감을 사주느냐고 질색을 했다.

어릴적 놀이를 통해 자신의 성역할을 배우는 시기에 남녀가 자연스레 어울리지 못했던 우리들의 세대가  지나가며 남자와 여자에 대해 갖는 성역할도 많이 달라지고 있다.

전시를 위해 옛물건 수집가 김덕현씨 창고에서 찾은 구슬들, 하나 가득 유리상자에 담으며 만지작 거려본다. 언제 내가 이것을 이렇게 오래 만져본 적이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