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소년 아톰

2009.02.25 11:38

문화통신 조회 수:5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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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은 우리 일상에서 인간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섬세한 영역을 대신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몸의 깊숙한 곳을 신체를 크게 절개하지 않고 거뜬히 수술을 해내는가하면, 정교한 기기를 생산하는 산업 로봇, 그리고 일상생활을 기능적으로 처리해주는 가정용 로봇도 등장하고 있다.
 인간의 역할을 대신하고 때로는 그 이상의 기능을 하는 로봇이 공상과학영화에서는 종종 인간을 지배하기도 한다. 아마 인간의 역할을 뛰어넘는 기능을 하는 로봇이 인간을 지배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이런 영화들을 만드는가 보다. 그런데 이런 류의 영화들은 실감나며  끝없는 불안으로 몰아넣곤 한다. 너무나 사실적이고 또 끝이 없는 파괴로 이어진다는 것이 심각한 공포와 우울을 준다.

 우리나라에서 로봇영화의 출발은 ‘우주소년 아톰’에서부터 인 것 같다. 일본 최초의 애니메이션 영화이기도 한 ‘우주소년 아톰’은 내게도 로봇에 대해 애틋한 감정을 선사한 영화다.
얼굴의 3분의 1쯤 되는 큰 눈의 ‘아톰’은 인간의 정서를 많이 지니고 있다. 그래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괴로워하고, 인간들 사이에서 소외감을 이야기하던 아톰은 사이보그가 등장하는 영화들에 비해서 따뜻함으로 기억된다.
 로봇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인류 평화를 위해 헌신하는 로봇과 인간을 지배하려고 파괴를 서슴지 않는 로봇, 즉 착한 로봇과 나쁜 로봇이다. 하지만 이같은 단순한 이분법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의 초능력을 인류를 위해 쓰며 로봇의 한계를 넘어가고 싶은 아톰과 같은 선의 상징은 우리들에게 영원한 꿈으로 남는다. 아기의 모습에 그저 예쁘장한 인형으로 다가오는 아톰과 같은 존재가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70년대 텔레비전으로 상영되었던 이 만화영화는 아톰 외에도 코주부 박사 등 우스꽝스러우면서 친근한 캐릭터들이 등장하는데 애니메이션의 신기함에 푹 빠져들게 한 작품이다.
주목을 불끈 쥐고 발에서 뿜어 나오는 제트 엔진과 함께 하늘을 날아올라 열심히 싸우는 모습은 때때로 애처로움을 느끼게 할 정도로 이 로봇의 모양은 귀염성 있는 어린이 모습이다.
 열심히 싸우다가 에너지가 떨어져 애태우는 모습, 아톰의  슬픈 눈매. 이런 것들이 오랜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을 보아도 아톰이 갖는 이미지는 사람들에게 로봇에 대한 친근감을 많이 주었을 것으로 상상된다.
다양한 기능의 로봇이 실제적으로 등장하면서 아톰은 그저 영화의 한 장면이며, 추억거리로만 남는다. 하지만 이 착함의 다른 이름으로서 아톰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