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시(詩)

2010.01.19 20:01

문화통신 조회 수:6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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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 아침 메일을 열면 배달되어 있는 메시지 하나가 있다. ‘셰익스피어와 함께 하는 세상’에서 보내온 것이다. 사무실에 출근하여 시작되는 하루의 일중의 첫 번째가 메일을 확인하는 것인데 그 중에 빠지지 않고 내게 배달되는 이 메시지는 셰익스피어 작품 중의 한 대목 또는 시나 그림이 담겨있다.

    마음이 바쁜 날은 그 짧은 글 하나도 열어 볼 여유가 없는 요즘이다. 이런 삶에 지쳐있는 나는 때때로 이 생활로부터 도망가고 싶어지기도 한다. 이런 상태인 나는 매일 찾아오는 이 메시지 가운데 맘에 드는 시를 출력하여 동료들에게 읽어주거나 책상 앞에 붙이곤 하면서 애써 나의 복잡한 머리를 잠시 쉬게 하곤 한다. 정말 어쩌다 있는 일이지만.

 

    내가 시(詩)를 처음 알게 된 것이 언제인지는 기억할 수 없다. 중고등학교 시절, 마음에 드는 시만 모아서 시첩을 만들기도 하고 박인환의 시를 노래한 박인희의 노래를 밤 늦게까지 들었던 추억, 그리고 그 추억을 훨씬 더 거슬러 가보면 우리 집에 아버지의 김소월 시집이 있었고, 안방에 시화(詩畵)액자가 하나 걸려있었다.

‘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픈 날엔 참고 견디라/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리니…’

 

    가물가물한 기억 속에 그 싯귀는 서양의 범선이 파도를 헤치며 항해하는 그림과 함께 있었던 것 같다. 소위 ‘이발소 그림’이라고 하는 값싼 대중화였는데 그게 방에 걸려 있었고 그 시는 내가 아직 생활로부터 속임을 당할 일이 별로 없는 시절 아버지의 삶을 위로하는 문구였다.

    늘상 장사로 바빠 휴일이 없었고, 학식도 높지 않은 아버지였지만 당신의 책상이 있었고, 김소월 시집을 가지고 계셨고, 푸쉬킨의 시를 담은 액자를 걸어두신걸 보아도 당신의 그 여린감성을 가늠해 볼 수 있다.  나의 아버지뿐만 아니라 우리시대의 많은 아버지들은  이런 일상적 시의 소비를 통해서라도 작은 위안을 받았던 것 같다.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고단한 삶이 연속되는 가운데 시 한구절로 마음의 위안을 삼았던 아버지만큼도 여유가 없는 내 삶은 과연 아버지의 시절에 비해 발전된 것일까 하는 의문을 종종 갖는다.  내 삶을 위로하는 시 한 구절 가슴에 담는 마음의 여유가 그리운 아침이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픈날엔 참고 견디라
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리니

마음은 미래를 바라느니
현재는 한없이 우울한 것
모든 것 하염없이 사라지나
지나가 버린 것 그리움 되리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하거나 서러워하지 말라
절망의 나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 반드시 찾아오리라
  
                                                  <푸쉬킨>


유현옥 | 춘천시문화재단 상임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