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안나는 피아노-나무건반

2008.05.27 17:08

문화통신 조회 수:8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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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캠피온 감독의 영화 ‘피아노’에서 주인공 아다는 자신의 분신인 피아노를 치기위해 위험한 거래를 한다.

 

피아노를 치기 위해 어떠한 일이라도 감내하는 그녀, 피아노를 치는 동안 그녀는 현실의 막막함을 넘어 다른 세계를 넘나든다. 아주 행복하게….


바닷가에 놓인 피아노, 그 망망한 바다와 어우러진 아다의 피아노는 그녀가 침묵으로 간신히 존재하는 세속세계 저 건너에 있는 피안(彼岸)과 동의어이다.


 우리에게 60,70년대의 피아노는 값비싼 악기로 서민 가정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부와 낭만의 상징이었다. 측음기가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때처럼 현대적 의미의 가정- 피아노 소리가 들리고 가족의 행복한 웃음소리가 들리는- 즉, 풍요와 행복의 상징물이었을 것이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에도 교실에는 피아노가 아니라 풍금이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는 풍금을 통해 음악을(서양음악)을 배웠다.


악기라고는 실로폰, 탬버린, 트라이앵글, 캐스터네츠 아마 그런 것이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보편적 악기였던 것 같다. 합창대회, 또는 연주회장에서나 만나던 그 도도한 모양의 피아노에 접근한 것은 종이에 피아노 건반을 그린, 소리 없는 피아노를 통해서이다.


도․레․미․파․솔․라․시․도

그저 상상 속으로 음을 익히던 종이 피아노.


 내 삶에서 음악에 특별한 흥미를 못느끼는 건 바로 그 종이 피아노 앞에서 더 이상 진전시킬 수 없었던 빈한한 상상력 때문이라고 탓을 해본다. 음악에 재미는커녕 싫었던 기억을 보태자면, 중학교 시절, 음악선생님이 치는 피아노에 맞춰 노래를 불러야 하던 공포의 독창시험의 경험.

 

이래저래 피아노는 내 삶에서 참 먼 악기이다. 너무나 낯선 악기 피아노와 가까워지기 위해성인이 되어서 피아노를 배운 적이 있지만 단조한 리듬 반복하기기에 싫증이 나 몇 개월만에 포기하고 말았다. 첫 만남이 그러했으니 다시 애써보아도 그 관계는 별반 나아지지 않은 것이다. 왜 우리시절에는 음악조차 즐거움이 아니라 공부이기만 했을까? 요즘 아이들을 보면 괜한 시샘이 날 때도 있다.


피아노에 플룻까지 늘 취미로 달고 사는 중학교 2학년 조카에게 제 엄마와 이모가 종이건반으로 피아노 치는 법을 배웠다고 하니까 믿지를 않는다. 그들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문화다. 내 추억의 종이 피아노는 여기에 보이는 ‘나무 피아노 건반’이 증명해 준다. 종이보다는 더 오래 그 틀을 유지했을 나무건반,  건반을 어루만지며 이것과 함께 했을 동세대 사람들의 음악성에 대해 생각하며 피식 웃음이 나온다.


또 음악을 즐거움으로 느끼지 못하고 살아온 우리세대들의 무미함과 그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내 조카와의 세월의 간극에 조금 슬픈 기분마저 든다.


 나무 피아노 건반, 엄연히 존재하는 우리들의 과거, 거기에서 출발한 문화와 예술의 보편적 누림은 또 얼마나 큰 거리감일까 하는 고민을 해본다.



2006.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