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은냄비 되돌아오다

2008.05.27 17:10

문화통신 조회 수:6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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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식당에 가면 가끔 양은냄비를 만난다. 양은냄비찌개나 냄비라면 등을 심심찮게 만난다. 스테인레스(스틸) 냄비에 코팅, 강화유리 등 다양한 재질의 냄비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이미 한 시대를 살다간 양은 냄비가 새삼스레 제 모습을 적지아니 드러내는 것은 사람들의 무엇을 자극하기 때문일까?
이 현상을 놓고 언론도 단순한 추억의 되새김이 아니라 경제가 어려워진 탓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심리적 위축이 예전 경제적으로 힘겨웠던 시절의 물건들에 대해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양은 냄비는 60~70년대의 물건이 주는 이미지이다. 경제적으로는 어려웠지만 마음이 가난하지는 않았던 시절의 대표적 상품인가보다.
김덕현 씨의 ‘오래된 물건’ 창고에서 이 냄비를 만났을 때 조금은 서먹했다. 눈에 익은 노란 색깔도 아니고 흰 빛깔의 이 냄비는 그냥 냄비가 아니라 바닥에 땜질이 되어있는 모양새가 제법된 연륜을 드러내는데 이것이 내 생의 경험과 쉽게 연결되지 않고 있었다. 이것과 내가 인연이 있을까? 추억의 회로가 여러 곳을 떠다녔다. 그러면서 서서히 떠오르는 편린들, 골목에 냄비를 때우러 다니던 아저씨가 어렴풋이 떠올려지고, 엄마가 늘 수세미로 윤을 내며 닦아놓던 우리집 부엌의 살림살이들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엄마의 추억들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했다.

양은냄비가 우리집 부엌에 자리하던 시절은 내 기억의 바닥을 한참이나 뒤져야 했지만 그 냄비를 뚫어져라 열심히 닦아내고 연탄불과 석유곤로에 부지런히 맛난 음식들을 끓여내 우리들에게 먹이는 일에 부지런하셨던 나의 어머니의 기억으로 연결되었다.
나의 어머니는 아버지를 도와 시장에서 장사를 하셨다. 그래서 아버지와 함께 가게문을 닫고 피곤을 이끌고 집으로 들어와 어린 우리들을 위해 밥을 하시려면 늘 맘이 조급하셨던 것 같다. 그 때 이 양은 냄비는 얼마나 유용했을까?
‘포르르’ 끓어서 얼른 밥상에 내 놓는 어머니의 재주는 어린 나에게는 신기하기만 했다. 그래서 음식 만드는 것이 빠르고 쉬운 일인 줄 알았지만….
너무 늦은 저녁에는 이 냄비에 라면이 나오는 날도 종종 있었고 우리 형제 자매들끼리 가장 쉽게 해먹을 수 있는 라면 요리에도 이 냄비의 유용성은 발휘되었다.

요즘은 압력밥솥 압력냄비 등 압력을 이용해 고기를 삶아도 아주 부드럽게, 뼈까지도 녹여낼 듯 푹 고아낼 수 있는 냄비나 솥 종류가 많다. 오랫동안 뭉근하게 끓여내는 곰국류의 요리를 가정에서도 쉽게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도기나 유리제품은 특히 오래 끓이는 요리에 그릇의 해독성 없이 쓰인다고 해서 이 재질의 다용도 찜기를 가지고 있는 가정이 많다. 요리를 즐겨하지 않는 나는 그 기구를 가지고 있지 않은데 고구마나 감자도 신기하게 잘 삶아지고 약재를 달이는데도 아주 효과적이라고 한다. 글쎄 곰국을 끓이고 외출을 꿈꾸는 나이가 들면 하나 장만할지는 모를 일이다.

오랜 가난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어 너도나도 돈버는 일에 열중하고, 자고하면 하나씩 건물이 들어서고 길이 닦이던 시절, 생업과 가정을 병행하느라 늘 분주한 삶이었던 나의 어머니 같은 분들과 고락을 함께 했을 양은 냄비, 비록 삽시간에 끓여 내온 음식이지만 그 안에 어머니의 삶의 고단함은 끓어서 날아가고 한 밥상에 앉아서 아버지가 쉬는 날, 어디로 놀러갈 것인가 하는 행복한 계획과 공부 잘해서 늘 아버지에게 칭찬받던 내동생의 웃음, 그 밥상에 남달리 특식을 하나씩 더하며 귀염을 받았던 나의 막내 남동생, 이 유년의 추억들은 삶의 무게를 알기 이전의 시절들이고 그래서 추억창고에 남아있는 것들이다.

글: 유현옥 geumto@hanmail.net


2006.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