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밖, 혹은 경계 안에 있거나

살아가는 일이 학교에서 배운 도덕 교과서처럼 꼭꼭 제 틀에 맞거나 정답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하좌우,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옳고 그름이 선명하게….
그렇다면 사람들이 이렇게 헷갈려 하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사실 우리는 그 어느 선명한 쪽에 서는 시간보다는 중간지대에서 살아가는 시간이 더 많다는 생각이 든다. 머리와 생각이 따로 놀기도 하고 무언가 뚜렷한 분별이 잘 안될 때도 있다.

김진묵다시.gif 김진묵. 그에게 많은 직함이 붙어다니지만 이런 말들로 그를 다 설명하기는 힘들다. 서울의 음악전문잡지에 근무하였고 재즈평론가였던 그는 오래전에 춘천이 좋아 춘천으로 이주해 왔다. 오항리에 그의 집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춘천에 집이 있다는 것이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 싶게 그는 세계를 떠돈다. 설령 어느 한곳에 있다고 해도 그 공간이 그를 구속하지는 못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재즈에 미쳐서 재즈 공연이 열리는 곳이면 어디든지 나타나는 사람인가 했더니 한동안은 한국과 인도의 음악을 함께 어우러지게 하는 연주단 쌍깃프렌즈를 만들어 우리음악과 어우러지는 인도음악의 맛을 알리는데 심취해 있었다.
지난 7월 문화커뮤니티 금토가 마련한 문화사랑방에서 만난 그는 여기서 한발 더 나가 있었다. 세계 속에 우리음악의 가치를 알리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서양 음악은 소리를 쪼개는 개념이지만 우리 음악은 소리와 소리 사이에 없는 듯하면서 있는 소리입니다. 그저 유장하게 강물처럼 흘러가는 음악이지요.”
윤이상의 음악이 우리 아악의 요소를 서양음악에 담아 세계적인 음악으로 만들었듯이 우리음악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세계에 널리 알려야 한다는 그는 그 힘을 흑인음악이 보편적 공감을 갖는 것과 우리음악이 갖는 정신적 유사성으로 설명한다.
“재즈와 블루스 음악이 고통의 산물이듯이 우리음악도 이런 한과 고통이 담겨있는 만큼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는 없는 우리만의 신명이 이런 공감을 얻을 수 있지요.”

목탁소리에서부터 국악기에 이르기까지 서양의 악기로는 표현되지 않는 우리 악기, 우리음악이 갖는 특성에 대해 열변을 하던 그가 마지막으로 강조하는 것은 뜻밖에 트로트다.
트로트라니? 대중음악, 그것도 올드 세대나 즐겨 듣는 음악을 세계적 음악으로 해야 한다는 그의 말은 낯설게 들렸다.
“황성 옛터에 달이 뜨니 월색만 고요해~” 하는 ‘황성옛터’ 나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없는 이 발길~"하는 ‘나그네 설움’ 같은 우리의 트로트가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요소가 많다는 것.

음악의 본질인 페이소스를 불러일으키는 것, 즉 슬픔의 정화에서 우리의 트로트가 좋은 역할을 한단다. 살타첼로 같은 유명 연주그룹에 우리의 유행가를 연주하게 했던 경험과 세계평화를 위해 월드뮤직그룹을 결성해 음반을 만든 경험이 있는 그가 꽤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기회가 되면 트로트를 주제로 강의를 하겠다는 그의 욕심에 새로운 길을 보는 듯 하다.
대중가요로 넘어가는 듯 하더니 이날의 마지막 화두는 ‘고급문화란 무엇인가’가 되었다. 그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 오렌지맛 우유와 오렌지 우유를 예로 들며 애써보지만 단답형 문답이 되질 못한다.
사람들의 감각을 자극하는 음악과 영혼을 두드리는 음악을 구별하고 영혼의 울림을 줄수 있는 우리음악의 가치를 찾아가는 작업을 하고 있는 그의 삶이 모호한 영역에 있는가 했더니 일정한 방향을 향해 있음을 감지하게 한다.

 

문화통신 계간지 2009.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