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_이무상-서재사진.jpg    겨울답지 않게 포근하던 날씨가 지난주 겨울비가 추적이더니 추위의 진면목을 보이려는 듯맹위가 대단하다. 요즘은 조금 바쁜 탓도 있었지만 시인을 만나는 게 오랜만이다.
저녁 무렵 강이 보이는 식당에서 두부전골을 시켜놓고 우선 막걸리 한 사발을 부딪쳤다. 시인에게 많은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술자리가 편하다.

    이제는 춘천도 재개발이라는 미명아래 변하고 있다. 변하는 풍경 앞에서 당혹스러워지는 것은 우리가 대처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생장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지금 춘천의 풍경이 우리의 고전적 풍경관으로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전위적이라면 우리의 풍경적 감수성을 예리하게 연마 할 수밖에 없다. 하물며 춘천의 옛 지명도 많이 잊혀지고 퇴색되어 가는 현실에서 지금 누군가 정리해 놓지 않으면 다음 세대에서는 묻혀 버리고 말 것이다.

    옛날, 공자가 노자에게 ‘옛 것을 널리 알면 오늘날의 일도 알게 된다(博古知今)’는 말을 듣고 옛 것을 오늘의 거울로 삼아 두루 익혀 현실의 일에 자연스럽게 차용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춘천지명에 관한 <우리의 소슬뫼를 찾아서>를 펴낸 이무상시인에게서 우리의 길을 물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시를 쓰는 사람으로 시를 못 쓰고 있습니다. 그것은 많은 시간을 방계의 일에 너무 소진하였기 때문인데 요즘은 가까운 이웃들과 술자리를 갖는 것 외에는 책을 읽는 것이 일과입니다. 역사서에 오랫동안 빠져있었기 때문에 정서적이지 못하고 마음이 많이 경직돼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시인은 춘천에서 낳고 자랐다. 그러기에 누구보다 춘천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춘천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보면 궁색하게 끝을 얼버무리는 경우가 많았다한다.

“우리의 소슬뫼를 찾아서”를 쓰시게 된 동기는?

“누군가 춘천 역사에 대하여 물으면 ‘춘천은 옛날 맥국이었는데 선덕여왕 6년(637년) 군주를 두게 되면서 부터 오늘에 이르렀다’는 정도로 궁색하게 말했는데 이는 얼마나 무책임한 말이며 막연한 이야기 입니까. 그래서 많은 책들을 읽고 섭렵하면서 지명속에 역사를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로부터 말은 있었으나 글은 없었습니다. 우리역사의 으뜸으로 생각되는 <삼국사기>가 쓰여 진 것이 고려 인종 23년(1145년)이고, 한글이 만들어 진 것이 세종 25년(1443년)입니다.
이 땅에는 고대로부터 선조들이 살아 왔습니다. 그리고 필요에 의해 지명들이 만들어 졌습니다. 지명 속에는 선조들의 생활이 있고 역사가 있습니다.

    범이 고개를 넘어 갔다고 하여 <범넘이> 소나무가 있는 고개라 하여 <솔고개> 같은 이름들입니다. 춘천의 지명을 알게 되면서 춘천의 지명들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더욱 열심히 책을 읽었던 것입니다.
r_소슬뫼.jpg 그런 연유로 춘천의 지명을 많이 생각하게 되고 역사를 연구하여 본 것이 <우리의 소슬뫼를 찾아서>입니다. 보기에는 별 것 아닌 것 같으나 제게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책입니다. 그 책을 쓸 때 너무 힘이 들어 몇 번을 울기도 하였고, 그러다 지치면 “이 글을 마칠 때까지만 이라도 목숨을 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책을 내 놓고 보니 나름대로 부족한 면도 많았습니다. ”

우리는 생활에서 토속적인 옛 지명을 너무 모르고 있고 소홀히 하고 있다. 요즘 거리를 걷다보면 새로 바뀐 도로명 부터 너무 식상한 이름을 많이 볼 수 있다. 우리의 토속적인 언어와 지명이 가장 한국적인 것이 아닐까. 지역마다 그 지역의 특색을 살려 개성을 이어 나갈 때 문화를 만드는 것이고 역사를 잃지 않는 것이다.

    한글학회에서도 우리말을 연구하기 위해 시작한 사업이 일반인들도 쉽게 알 수 있게 한국의 마을, 내, 산 등이 지녀온 고유한 이름을 조사, 수록한 <한국지명 총람>을 발간하여 옛 지명 속에서 선조들의 숨결과 역사를 널리 알리고 있다.
시인은 대학에서도 우리지명을 연구하는 학과가 생겨야 한다고 말 할 정도로 우리의 지명에 관해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궁금해 하는 독자들을 위해 <우리의 소슬뫼를 찾아서>의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 좀 해주세요.

“<우리의 소슬뫼를 찾아서>에서는 지명과 연관이 있는 우리 성씨 이야기를 시작으로, 춘천의 옛 지명을 살펴보고 그 지명들을 선학들의 학문으로 풀어보고, 우리 역사와 중국 역사서에 근거하여 춘천의 역사를 설명하여 보았습니다.
부끄러운 일이나 우리는 고대의 역사가 없습니다. 그것은 글이 없어 기록을 남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후대에 오면서 중국의 사서에서 우리와 관계 된 우리의 역사를 만들었는데, 그것은 그들의 입장에서 쓴 글이라 왜곡된 부분도 많고 모호한 부분도 많아 우리 역사가 풀리지 않습니다. 그 한 예가 조금 전에 말했던 ‘춘천은 옛날 맥국이었는데, 선덕여왕 6년 우수주로 삼고 군주를 두었다’ 같은 것입니다.
이 땅에는 고대로부터 선조들이 살아 왔는데 맥국은 어느 시대 실재했는지 모호 할 뿐 아니라 선덕여왕 6년인 서기637년이전까지 역사에서 사라진 것입니다.
 

    책 속에는 분명 역사가 숨어 있는데 왜곡되고 모호하여 선뜻 밝혀 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런 부분들을 짚어보고 여러 자료를 통해 그것을 설명해 보았습니다.”

시인에게 앞으로 지명에 관한 책을 또 저술할 생각이 있는지 물었을 때, 다시 쓸 자신도 능력도 없다고 했다. 다만 내용 중 일부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여 증보판을 낼 생각을 갖고 있다며 준비 중이라 했다. 시인은 오랜 시간 <우리의 소슬뫼를 찾아서>를 쓰면서 많은 기운을 소진한 탓 인 듯 했다.

앞으로의 계획은?

“젊은 날 발표했던 수필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는 것과, 주변의 인물들을 시로 스케치한 인물소묘를 보완하여 시집을 낼 생각입니다.”

누구나 이무상을 말 할 때 시인이라고 한다.  살아가면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은 언제나 시를 쓰는 순간이라 말하는 시인은 목소리가 한 음계 높아지며 술병을 쥔 사람이 겁이 날 정도로 경쾌하게 잔을 비웠다. 어둠으로 물든 강가에 시린 달빛이 그리운 시간이다.


차문학 | 화가·전 강원매거진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