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일부로 살고 싶지만 자꾸만 빼앗기고 변질시키니 더 숨어들어가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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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산을 오름으로써 단조 하거나 때때로 남루해 보이는 자신의 일상을 털어내고 싶어 한다. 혹은 높은 곳에 올라 산 아래 풍경을 조망하며 스스로를 그렇게 타자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싶어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산의 정점, 그곳이 히말라야이다, ‘눈의 거처’, ‘신의 정원’…히말라야는 여러 방식으로 이해하고 이야기되면서 사람들에게 동경을 품게 한다.
김홍성 씨는 그 산에 빠져 한동안의 삶을 히말라야와 가까이 하며 살면서 사람들을 그곳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했던 사람이다. 히말라야와 관계된 그의 책만도 5~6권이다.
히말라야가 있는 네팔에서 눌러앉아 그 산 기운으로 살던 그가 최근 춘천에 살고 있다. 그의 아내와 함께 은둔자처럼 살고 있다. 히말라야, 그곳에서의 삶과 그가 누리고 싶은 진정한 삶은 무엇일까? 네 번의 히말라야 산행, 스페인 산티아고 도보순례, 국토순례 등 걷기여행을 즐기는 춘천 토박이 이원상 씨가 춘천으로 숨어 들어온 김홍성 씨를 환영하며 소주잔 앞에서 정담을 나눴다.
이들의 대화가 딴 세계인 듯, 꿈을 꾸는 듯, 일상의 일로 꽉 막힌 머리 속을 휑하니 비워준다.

 

이원상:춘천으로 이사 오셨다니 반가워요. 김홍성 씨가 춘천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만나고 싶어하던 차에 문화통신에서 자리를 만들었네요.

 

pic31.gif 김홍성:저도 지금 잡지를 만들고 있어요. 잡지를 만들기 위한 무크지죠‘. 강과사람’이라고. 잡지를 많이 했어요. 학교 마치고 잡지기자생활을 했는데‘사람과 산’을 제가 창간했어요. ‘불교문학’, ‘나그네’라는 잡지도 창간하고. 보따리장사 비스름하게 창간하고 떠나고, 사주와 약속이 틀리거나 방향이 다르거나 하면 다른데 가서 창간하고 했죠. 그러느라고 한군데 오래 못 있었어요. 조선일보출판부에서 나온‘가정조선’에 제일 오래 있었어요. 거기 창간멤버인데 월급을 많이 주니까 제일 오래 버텼어요.

 

이원상:하하하, 그거 중요하죠. 네팔에는 몇 년간 있었어요?

 

김홍성:살러간게 96년인가, 97년인가... 살러 가서9년 있었죠. 처음 간 거는91년이에요. 지금은 거기가 옛날 그런 나라가 아니에요. 외곽 산속에 들어가면 모를까. 문명혜택이 있는 데는 너무 살벌해졌어요, 이제 가기가 싫어요. 네팔가면 시내에 안 들르고 바로 산에 갔다가 온 적도 있습니다.
네팔에 가게 된 것은, 아는 분이 ‘사람과 산’창간을 도와달라고 해서 창간멤버로 일하다가 보너스로 히말라야를 데리고 간 거에요. 처음 랑탕가서‘필’받았죠. 그때 마침 우리나라 돌아다니다가 식상하던 때 구요. 돌아 다니는걸 좋아해서 오지를 찾아 다녔죠. 여성잡지에서도 그런 것을 취재했는데 그런 곳이 자꾸 변해가는 것이 답답했어요.
그때부터 여행바람이 불어서 다음해는 혼자 인도 라다크, 그 다음은 중국, 파키스탄, 네팔거쳐서... 그러다 보니 히말라야로 돌아다녔는데, 그래서 가정불화도 심해졌죠.
그 해 에는 일년을 히말라야 쪽으로 돌아다녔어요. 그래서 여행하다가 카투만두에 주저앉았죠. 민박집 하다가 망했는데 종업원들이 안 간다고 해서 그 사람들과 있으려고 식당을 차리게 됐어요.

 

이원상:제가2003년에 인도시킴, 난다데비를 갈 때 임현담씨를 만났는데 나보다 나이가 젊지만 히말라야 네팔에 대해서 박사야. 그분이 김홍성씨를 좋아하더라고. 그분 카페에 김홍성씨 글이 있어서 읽었던 게 인상적이었어요. 소설 ‘뜨개질하는 여자’, 그 배경이 인도죠.?

 

김홍성:네, 인도네팔과 붙어있는 다질링, 시킴, 그쪽… 죄송합니다. 너무 엉터리였는데.

 

pic32.gif 이원상:그 소설 읽으면서 꼭 만나보고 싶었어요. 소설이 어두우면서도 그쪽 사회 실상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김홍성씨가 춘천 왔다고 얘기해 깜짝 놀랐어요.

 

김홍성:제가 제작년4월에 결혼해6월에 이곳에 와서 살고 있어요. 춘천이 아주 인연이 없는 곳은 아니죠. 강원대학에 시험 보러 왔었어요. 춘천이 제가 살던 카투만두하고 지형이 비슷합니다. 카투만두도 동그랗게 산이 둘러싸고 있는 분지고 큰 강은 아니지만 시내에 강이 있고 분지만 벗어나면 깊은 산이고. 랑탕이 여기로 말하면 용화산쯤 되죠. 그곳에 살 때도 여기가 춘천하고 지형이 너무 비슷하구나 생각했었어요. 아내와 살 고장을 찾아서 돌아다녔는데(아내도) 여기 와서 너무 맘에 들어 하더라구요. 산과 물이 잘 어우러지는 천혜의 도시 아닌가요? 낭만적이고.

 

(춘천토박이 이원상씨가 춘천이주를 환영하며 술잔을 건넸고 술은 두 사람의 나이차를 점점 좁혀갔다. 주량이 확인된 후 소주가 밥상에 다시 추가되었다. 이야기는 다시 김홍성씨가 네팔에 살던 때로 이어졌다.)

 

김홍성:그곳에서는 현지인들이 사는 마을을 찾아 다녔습니다. 카투만두가 분지라서 주변이 산이니까. 카투만두 산악회를 만들어 주말마다 다녔죠. 당시 한인200명 정도 살았는데 한국인선교사, 대사관직원 등이 있었는데 산악회 만들어 매주 다녔죠. 해발2천, 2천5백미터 높이. 분지주변 큰 산 과 7, 8부 능선에 모여있는 마을들, 까망족들이 살고 있는 마을 길이 거미줄같이 있어요. 그쪽 길들은 관광객이 안 다녀서 재미있었어요. 유명한 관광지는 다니기 싫어서 안 갔어요. 유명한 곳은 한국에서 친구들이 오면 안내해 주러 갔어요. 그럼 올때 고추장 된장 고춧가루 갖다 달라고 하고요.


(주는 술은 사양 않고 받는다는 김홍성씨와 술자리를 즐기는 이원상씨는 앞으로 자주 만나기로 하고 서로의 전화번호를 휴대폰에 입력했다.)

 

이원상:한국사람이 네팔에 많이 가잖아요? 어떻게 생각해요? 내가 갔을 때 가이드가 아이들 사탕주지 말라고 하던데. 이게 문화차이가 아닌가 해요. 우리는 과거가 생각나서 뭘 주려고 하고 분수이상으로 행동하기도 해요. 포터들에게도 한국에 부른다고 하고.

 

김홍성:헛 맹세를 잘하고 오죠. 이제부터 내가 즈이 아부지다, 하면서.

 

이원상:나도 네팔에 푹 빠졌었어요. 네팔도 여러 번 갔고 강원대에 와서 박사학위받은 네팔사람과 지금도 교분을 갖고 있어요.

 

김홍성:그러세요? 제가 얼마전 강원대앞에서 네팔 사람들 만났어요. 걸어가는데 뒤에서 네팔 말이 들려서 뒤돌아보니 유학생이라고 하더라고요. 10여명 되던데요.
전부 다채드리, 그러니까 인도아리안계(네팔의중산층)인데, 한 명이 몽골계 여학생 이어서 여기서도 티가 나더라고요. 유학도 기득권층이 혜택을 많이 받는거죠. 알루(옥수수) 먹거이(감자) 꼬도(조또는기장) 먹는 사람들은 소수민족, 산에 사는 사람들이고 언어가 다르죠. 이런계층은 영국 인도용병으로 나가는 것이 돈 버는 길이죠.

 

이원상:올2월에 랑탕 갔다 왔는데 가이드하던 친구가 옛날에 에베레스트전망대 칼라파테같이 갔던 친구야. 그 친구 한국말 잘해요.

 

김홍성:이름이 뭐죠?

 

이원상:호리호리한 친군데 여자 좋아하고 술 잘 먹고.

 

김홍성:락바인가요?

 

이원상:응, 맞아. 락바야 어떻게 알아요?

 

김홍성:그 친구가 사연이 많아요. 그 친구 안경끼면 박정희대통령 비슷하죠.

네팔의 아는 가이드에 대해 서로 교감한 두 사람은 반가움과 한동안 그 사람의 기억으로 이야기가 즐겁게 이어졌다. 이원상씨는 16살 차이가 별거 아니라는 것, 자네로 부르기로 하고 늙은 친구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술을 더 나누었고 히말라야의 소소한 산행경험, 김홍성씨의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을 오랫동안 공유했다.


인터뷰를 하고 나서
두 사람은 걷는 것과 산을 좋아하는 공통점이 있다. 두 사람은 처음 만났지만 술이 오가며 나이의 간극을 서서히 메워갔다. 한 동안 그들의 삶을 지배했던 히말라야, 한 사람은 문명으로 인해 오염되고 있어서 더는 가기 싫어하고, 한 사람은 나이 듦에 따라 더는 가기 어려운, 그래서 앞으로 그리 자주 갈 것 같지는 않은 공통의 경험 히말라야, 그래도 그들을 보며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보지 못한 곳을 다녀왔고, 또 살다가 왔다는 점에 대해 부러움을 느낀다.
그 공통의 경험을 나눌 사람을 만났다는 즐거움 때문에 이원상씨는 김홍성씨에게‘형’이라고 불러 달라고 청했다. 20년을 훨씬 뛰어넘는 나이차이에도 불구하고 이원상씨에게 아우를 만나는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은 오로지 히말라야를 안다는 공감 때문이다. 눈으로 덮인 설산을 마주하며 숨쉬기도 조심스러운 산을 한발한발 오르는 히말라야산행, 그것은 인간의 삶이 수평적인 삶에서 수직적인 삶을 성찰하게 하는 길이라고 말했던 분의 말처럼, 다른 세계를 경험한 사람들만의 공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