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지사 새옹지마
장작 가마 고집하는 도예인 최창석

 

a9.jpg 도예과가 사라진 자리에는 응용디자인, 산업디자인 등 디자인과가 생기고 있다 하는데, 최창석 씨는 이 대목에서 울컥 핏대를 올린다.

 

“ 디자인도 좋지만 그 물적 기반은 공예이고 현장이다. 그런데 공예나 공예인들을 하대하고 디자인만을 높이 친다. 이는 사상누각이다. 실질 생산 없는 디자인은 뭣에도 쓸모가 없게 된다.”관련해서 살펴볼 것이 영국이나 일본이라고 한다. 영국은 공예청(Craft Council)을 두어 작가와 대중들을 이어주거나 도자기 장인에게는 가마짓는 비용을 지원하는 등 사업 종사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고 한다.


 지금 세계에서 도자기 시장에 많은 관심과 영향력을 행사하는 나라는 일본이라고 한다. 임진왜란 당시 많은 도자기술자들을 데려간 일본은 전통적인 장인(匠人)의식에다가 범국가적인 사업으로 고급한 도자기 문화를 일으켰다. 그렇지만 그들도 도자기의 최상을 꼽으라 하면 단연 한국의 도자기를 쳐준다고 한다. 평균의 실력은 높되, 최고는 아니라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 한국 도자 사업의 희망이 감춰져 있는 듯 하다. 지금도 전국 각처의 도자요에서 옛 명성을 찾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있다지만, 현실적인 생활고에 의욕도 꺽이고, 도예 자체를 포기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고 한다.

a8.jpg 도자기를 빚는 것은 농부의 마음과 흡사하다고 한다. 그래서 도공들은 손의 결을 따라 흙의 마음이 읽혀질 때까지 빚기를 거듭한다. 이어서 형상을 만들고, 잿물을 들이고, 가마 속에 굽는 절차를 밟는다. 물론 그 과정마다 균일하고 세심한 도예가들의 정성도 함께 반죽을 한다. 또한 노동 강도나 여건도 농부보다 더할 만큼 고되고 힘들다고 한다.

 

특히나 겨울에는 덥힐 수도 없이 찬 흙을 반죽하다보면 트인 손이 초여름까지 가기도 한다며 웃는 최씨의 웃음은 간신히 빛나는 백열등 같다. 맨 처음 여주읍 근처에 자릴 잡았던 최 씨의 보금자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벽지로 내몰렸다. 처음 가마공장 곁에 방하나 더 꾸며 만들어진 가게의 담벼락은 미술을 전공한 아내 덕분인지 이쁘게 꾸며져 있다.


남들에 비해 시작은 늦었지만 한 눈 팔지 않고 걸어온 덕에 그는 여주 민예총 지부장 일도 지냈고, 도자기 축제 운영위원으로 일하며 외국인들을 상대로 한 아카데미 강사일도 병행하며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올해 수능시험을 친 막내딸도 이제 곧 품을 떠나고 나면 굳이 여주에 있을 이유가 없는 것이라며, 대학을 다닌 춘천 어디쯤에 자리를 잡고 제대로 된 도자공방과 학교, 체험방을 만들었으면 하는 희망을 얘기하는 그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

 

그렇지만, 장작가마 하나 운반하는 것 하나에도 흔들리는 통장 잔고에 한숨을 절로 뽑는다.

 

다만 가마 안에서의 일은 오로지 가마가 알아서 한다 ‘가마지사 새옹지마’의 원리를 체득해서인지 슬쩍 하늘을 쳐다보는 그의 눈길이 깊고 맑게 빛난다.

 

최삼경 본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