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소년을 만나다

글쓰는 과일장수 할머니 전찬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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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6일, 일주일간의 인문학 축제인 ‘2008 인문주간’이 시작되었다. 이 기간중 강원문화연구소가 기획한 인생역전 프로젝트 첫 번째는  <할머니, 소년을 만나다>.

 평생 과일 장사를 하시면서도 글쓰기에 대한 꿈을 놓지 않으셨던 전찬애 할머니와 신촌 정보통신학교 학생들과의 만남이었다.

   

경남 의령장에는 글쓰는 과일장수 할머니가 있습니다. 할머니는 항상 짬이 날 때 마다 글을 씁니다. 과일 상자에 닥치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끄적여 온 세월이 56 년…….

 “나는 외로워도 글을 쓰고, 좋아도 글을 쓰고, 슬퍼도 글을 쓰고……·.”

할머니는 학교에 가본 적이 없습니다. 홀어머니 밑에서 집안일을 도맡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친구들이 학교에 가는 모습이 한없이 부러웠습니다. 그 슬픔을 잊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은 일기를 쓰는 시간이었습니다.

“지금까지 글 쓰는 일을 잊은 적이 없어.” 할머니는 60년 동안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할머니의 주머니에는 지금도 볼펜이 꽂혀 있습니다. “내가 외롭고 슬퍼할 적에 나를 달래주던 정답던 펜 친구야. 너는 언제나 나의 유일한 친구.” 1952년 첫 해 원고부터 1차 원고 1,000장을 마무리하는데 무려 56년……. 드디어 할머니 책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빚져서 죽고 자살하고, 그런 사람들한테 힘을 주려고 글을 씁니다. 절망에 발을 두지 말고 용기를 내서 살아라. 나는 그것을 보여주려고 글을 씁니다.”

전찬애 할머니의 이야기가 담긴 영상이 끝나고, 할머니의 강연이 시작되었다. 할머니는 강연 시작 무렵에 많이 우셨다.  혹시 아이들이 할머니의 강연을 지루하다고 느끼지는 않을까 걱정을 했었다. 그런데 아이들은 오히려 평소에 접하던 능숙한 강연자가 아니어서 놀랐는지, 할머니의 눈물과 꾸밈없는 태도를 보고 좀 당황한듯했다. 할머니가 우시자, 장내가 숙연해졌다. 할머니께서 하나씩 꺼내놓으시는 이야기에 학생들이 몸을 기울여 집중해 들었다. 

어린 시절에 학교에 입학한 친구들이 새 고무신을 자랑하는 걸 보고 어머니께 고무신을 사 달라고 졸랐다가 어머니가 우셨던 일을 이야기하셨다.

“나는 학교에 한 번도 못 가봤다. 왜냐면 우리 아버지가 작은 어머니를 뒀어. 그 작은 어머니가 나를 학교에 못 보내게 했다. 그래서 내가 친구들 학교 다니는 거 쳐다보면서 그때는 많이 울고 그랬는데, 오히려 지금은 잘 된 것 같다. 이제 작은 어머니 원망 안한다. 왜냐하면 나는 학교에 못 갔기 때문에 더 열심히 썼어. 글씨도 혼자 배우고, 책도 이야기책 같은 것 빌려다 많이 읽고. ‘내가 꼭 책을 내서 우리 어머니 보여 드린다, 이 이야기를 꼭 세상에 알려서 세상 남자들이 나쁜 짓 못하게 한다’고 일곱 살 때 결심한 것을 나이 칠십이 다 돼서 이뤘다. 나는 이제 오히려 나 학교 못 가게 한 작은 어머니한테 고맙기까지 하다.”

할머니께서 쓰신 ‘고향 떠난 두 남매 길’ 중에서 병든 어머니와 일하다 다친 오빠를 위해 밥을 얻으러 다니셨던 부분을 발췌해서 읽어주시기도 하셨다.

“지금은 아마 여러분들도 그렇고 저기 서있는 선생님들도 그렇고 젊은 사람들이 힘든 게 많을 기다. 그래도 할매를 봐라. 할매같이 학교 못 나온 사람도 이래하고 싶은 일 하지 않나. 나는 여러분들한테 그걸 보여주고 싶다. 학교 많이 나온 사람들도 할매보고 부럽다, 부럽다 한다.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끝까지 하면 되는 기다. 나는 여러분들이 지금 힘든 걸 잘 견뎌서 다른 사람을 안아 줄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할머니는 이런 당부와 함께, 자신의 시를 낭송하시는 것으로 강연을 마치셨다.     

강연이 끝나고, 할머니와 저녁을 함께 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할머니, 다음 책도 또 쓰실 거죠? 이번 책이 나오는데 56년 걸렸는데, 다음 책은 언제쯤 나올 거 같으세요?

쓰지. 쓰기는. 근데 기자들이 다들 그거부터 물어봐싸서-. 책 나오는데 하루 이틀 걸리는 것도 아니고.(웃음) 이번엔 56년 걸렸는데, 다음엔 안 그렇지. 이번엔 처음이라 고생을 좀 했지.


-할머니께서 신춘문예에 응모하셔서 화제가 되고, 그래서 책이 나올 수 있다고 들었는데요. 그 얘기 좀 해주세요.

신춘문예에서 처음에 안 받아 준다고 그랬어. 소설이나 시만 받는다고. 그래서 내가 “내 작품은 수기지만 소설 같다. 그리고 나는 작가로서는 등단할 생각이 없다. 날 등단시킬 거면, 젊은 인재 한명을 더 등단시켜라. 내가 칠십 다 된 나이에 무슨 욕심이 있겠냐. 다만 나는 책을 내고 싶다, 전국에 알려서 내가 책을 낼 수 있게 해달라.” 이렇게 얘기했지. 신춘문예에 내자마자 기자들한테 여기저기서 연락오고 마, 그래갖고 할매 유명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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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강연은 어떠셨어요?

  할매가 실수는 안 했나 싶다. 내가 애들 얼굴을 이래 보니까 애들이 쪼끔
  깨달을 것도 같아. 내가 (강연)하다가 목이 좀 메어서. 내가 십년 전에 암
  이었어. 갑상선 암. 근데 나는 나을 수 있다, 생각하고 열심히 살다보니 자
  연히 낫더라고.

  애들을 보니까 자꾸 눈물이 나더라고. 내 얘기야 뭐 책도 쓰고, 자꾸 얘기
  하고 하니까 이제 그렇게 눈물 날 게 뭐 있겠나. (할머님 남편 : 그럼, 애들
  이 부모님도 없이 외로운 학생도 있고, 슬픈 학생도 있을낀데.)

  내가 느낀 거는 들어올 때 쳐져있던 철망, 그걸 보고 마음이 안 좋아가지
  고. 애들이 얼굴이 까매가지고 눈만 초롱초롱해가지고. 내가 자식 키우는
  사람이, 애들이 철조망 안에서 생활하는 거 보니까는 참 마음이 안 좋더
  라고.

 

   - 젊은 사람들에게 해 주시고 싶으신 말씀은?

   내가 꼭 하고 싶다, 하겠다 하는 마음을 먹어야 돼. 그리고 계단을 올라가
  려고 할 때에, 한 몫에 세 계단을 올라가려고 하면 안 되거든. 어려운 일이
  있으면 하나하나 천천히 한 계단씩 끝까지 오르다 보면 할매같이 좋은 날
  도 와. 나도 어릴 때부터 힘들게 살아가지고, 설움이 없다 소리는 안해. 그
  런데 그 모욕되는 거를, 그 순간을 잘 참으면 돼. 최진실이 걔도 지가 지
  죽는 지도 모르고 죽었다. 그런 걸 잘 이겨야 돼.


소년원의 아이에게 ‘모조리 버리지는 않아도 돼’라고 말해주고 싶어서 기획했던 전찬애 할머니의 강연이었는데, 행사를 준비한 우리도 덩달아 감응을 받았다.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라는 말처럼 당장은 힘들더라도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는 ‘때’가 올 때까지, 의지를 가지고 그 꿈에 걸맞는 힘을 기르다보면 언젠가는 문턱을 넘게 된다. 전찬애 할머니가 그 문턱을 넘으시기까지는 56년이 걸렸다.


 김하나 | 강원대학교 국어교육과 대학원에 다니고 있다. 글쓰기, 책읽기, 토론하기를 즐겨 여러 공부모임에 참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