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을 이겨낸 평온의 성지 천주교 죽림동주교좌성당

by 문화통신 posted Nov 08,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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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좌성당01.jpg    주교좌성당02.jpg
 

왼쪽) 성당 기둥과 기둥 사이에 하나씩 설치된 반원형 아치의 창. 예수의 고행을 담은 스테인드글라스로 꾸몄다.
(오른쪽) 열주(줄기둥) 없이 평면으로 통합된 성당 내부. 죽림동성당을 기점으로 열주 없이 공간을 통합한 성당이 건축되기시 작했다. 중앙제대부 뒤쪽에 명동성당과 같은 애프스(반원에 가까운 다각형 모양의 내부 공간)를 덧붙여 직접 들어오는 빛을 여과시켜 제대부주위가 은은하게 느껴지게 만든다.

 

여백의 발견, 빈 곳이 아닌 자신만의 사색 공간

어쩌다 문득 돌아보면 잊고 지냈던 마음을 풀어놓을 수 있는 일상의 빈틈이다. 사진가의 본거지와는 또 다른 뭉클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여유의 도시, 춘천을 한 바퀴 돌아 자연의 색으로 채워지는 시간의 흐름 속으로 찾아 들었다. 따스한 저녁 햇살이 봉의산을 넘어 소양강에 잠들기 시작하면 춘천 약사고개에는 어둠을 깨우는 빛과 색이 서서히 형체를 드러낸다. 지금 사진가는 코발트색 빛이 번지는 도시의 숲에서 순간의 기다림과 온전한 시간을 자신만의 욕심으로 채우고 있다.


해진 후에 다가선 성당의 모습은 낮에 보던 모습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종탑 위로 오르는 푸른색 빛, 석조 벽면에서 품어 나오는 은은한 색과 창에 비친 이미지는 서로 대화를 나누는 듯하다. 사진은 기다림이고 보이지 않는 것을 담아내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던 기억을 더듬으며 고요의 성당에 다가선다. 경건한 미사가 시작되면 저마다 가슴속에 담금질한 지난 시간의 감정을 기도로 치유할 것이다.
대나무숲을 뜻하는 죽림동, 약사마을 언덕 위에 지어진 천주교 춘천교구 죽림동 주교좌성당(竹林洞 主敎座聖堂)은 1953년 건립된 이국적 풍경의 아름답고 웅장한 종교 건축물이다. 고딕 양식의 석조건축으로 당시의 시대상과 지역성이 담긴 반듯한 외관이 시선을 머물게 한다. 중앙에 종탑이 자리한 석조 건물로 출입구 아치의 정점에는 십자가 문양이 새겨진 이맛돌(key stone)을 단단히 끼워 넣어 조형미와 안정감을 더하고 있다.
견고한 석조 외관과 스테인드글라스 등의 실내장식이 조화를 이룬 주교좌성당은 2003년 6월 30일,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주교좌성당은 주교(主敎)를 두고 있는 교구 전체의 모성당(母聖堂)을 말하며 지역 교구의 중심이 되는 성당이다.


꾸밈없이 빛나는 건축
1920년 풍수원본당에서 춘천시(당시의 춘성군) 동내면 곰실(고은리)공소를 모체로 하는 춘천본당으로 분할 독립하면서 초대 김유용 신부가 부임했다. 곰실 공동체 교우들은 몇 해에 걸쳐 아끼고 모은 돈에 논까지 팔아 현재의 성당 아래 골롬반의원 터와 아래 마당 그리고 수녀원 터인 당시 김영식의 대자(종교적 아들)의 집을 사들인다.
교우들의 피나는 노력과 헌신으로 마련한 이곳은 1928년 5월, 춘천의 첫 성당으로 출발하게 된다. 그 후 1938년 구인란(Quinlan) 토마스 신부가 약사리 언덕 위의 도토리밭을 사 현재의 성당 터를 마련하기에 이르렀다. 성당 건립은 1941년부터 계획되었지만 일제 치하의 외국인 구금과 연금 등으로 지연되다 1949년 4월 5일 미군의 도움을 얻어 새 성당이 착공되었다. 실제 건축 작업은 전남 광주에서 온 ‘자’ 씨 성의 한 화교 기술자와 또 한 사람의 기술자가 맡았다고 하나 자세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건축에 들어가는 석재는 멀리 홍천 강가에서 날라 와 사용했다. 그러나 한 해 동안 돌로 외벽을 쌓고 동판 지붕까지 덮은 다음 내부 공사에 들어갈 때, 민족의 비극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공사는 중지되고 말았다. 치열한 전쟁중 중공군의 개입으로 1·4후퇴라는 참패를 당하고 5월에는 유엔군 반격이 시작된다. 그 작전 중의 공습으로 인해 새 성당의 한쪽 벽이 무너지고 사제관 등 부속 건물이 파괴되고 만다.

 

주교좌성당03.jpg

 

반듯하게 쌓인 화강석의 결을 따라 걷다
보면 성당의 역사를 기록한 초석을 볼 수
있다. 라틴어로 1949년 4월 5일 기공하였
다고 적고 있다.

 


이야기가 담긴 건물은 시민의 자부심
전쟁이 끝난 1953년, 파괴된 성당은 미군과 교황청의 지원으로 복구를 완공하고 1956년 6월 8일 공식적인 봉헌식을 거행하게 된다. 1994년 춘천 교구장으로 서품 착좌한 장익 요한 주교는 이정행 요한 신부와 교우, 가톨릭 미술인회 작가들의 적극적 참여로 성당 개보수 공사에 들어간다.
1998년 4월부터 5개월 동안 진행한 보수공사를 통해 지역의 역사와 정체성을 갖춘 종교 건축물로 의미를 담아냈다.

 

주교좌성당04.jpg

 

(위) 죽림동성당은 석조 건물로 건물 높이와 폭에 비해 종축 길이가 매우 길다. 폭 11미터에 비해 길이가 43미터나되 는 가늘고 긴 직사각형 평면을 이룬다. 이런 형식은 아일랜드의 골롬반 선교회가 택한 건축양식과 연관이 깊다고 한다.
(아래) 성당 뒤편의 성직자 묘.
한국전쟁 때 북으로 끌려가다 순교했거나 당시 고난을 겪은 내외국인 성직자 유해를 모신 묘역이다.

 

주교좌성당05.jpg

 


전쟁의 아픔을 기억하는 건축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시작된 바로 다음 주일인 7월 2일 본당 미사를 보던 구 토마스 교구장은 공포를 쏘며 들이닥친 인민군에 의해 캐바난 신부와 함께 체포 연행되었다. 이때 1947년 교황사절로 파관된 방 파트리치오 주교를 비롯한 외국인 사제, 수녀, 목사 등 수백 명이 끌려가 평안북도 어느 험한 산속에 강제 수용되었다. 잡혀갔던 케바난 신부와 방 파트리치오 주교는 그곳에서 모진 고통과 추위를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선종하였고 많은 사람이 돌아오지 못했다. 불행중 다행인 것은 구 토마스 신부와 조 필립보 신부가 34개월의 포로 생활을 이겨내고 길고도 험했던 ‘죽음의 행진’에서 살아 돌아왔다.
현재의 죽림동성당은 푸른 잔디와 세월의 흐름을 상징하는 두 그루의 우람한 느티나무, 성스러운 조각상들로 아름다운 경관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1950년 한국전쟁 발발로 완공되기 직전 폭격으로 부서진 성당과 공간은 황폐해지기 시작했다. 삶의 희망을 잃어버린 약사마을에는 가톨릭 선교단체인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수녀들이 찾아와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을 돌보며 식량을 나누어 주었다. 이 때문에 예전에는 성당병원, 수녀병원으로 불렸다.
성당 뒤편에는 성직자 묘역이 자리하고 있다.
춘천교구 성직자들이 묻힌 곳으로 한국전쟁 전후 신자들을 돌보다 피살되거나 옥사한 순교자들을 모신 곳이다.


골목길 걷다 잊고 있던 옛 이야기를 만나다
성당 맞은편에는 60~70년대 아날로그 풍경을 그대로 간직한 약사마을이 있다. 약사마을은 일명 ‘망대 골목’이라 부른다. 약사마을 언덕에 있는 망대는 일제강점기에 설치된 감시초소로 춘천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망대는 화재를 관찰하고 해방 후에는 당시 춘천교도소를 지키는 초소 역할을 한 곳으로 그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시대를 증거하며 버텨 온 약사마을도 개발이라는 운명을 피하지는 못할 듯하다. 도시의 변화가 순환하는 역사의 필연적인 과정이라면 약사마을과 망대 골목 모습도 과거의 기억으로 남을 날이 얼마남지 않았다. 담장 너머 집 안이 훤히 보이는 좁은 골목길은 이웃을 연결해 주는 소통과 나눔의 길이다. 켜켜이 쌓여 있는 시간의 깊은 맛과 끈적끈적한 삶의 흔적이 짙게 배어 있을 것 같은 그런 마을이다. 지금도 이웃들은 골목에서 서로의 이야기와 정을 이어오고 있을 것이다.

 

주교좌성당06.jpg

 

죽림동성당 전망대에서 바라본 약사명동의 망대. 성당을 나와 도로를 건너 꼬불꼬불 골목길을 따라 오르면 그 끝에 망대가 있다. 망대 골목은 화가 박수근과 조각가 권진규가 청년기를 보낸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어쩌면, 우리는 떠나보낸 후에야 다시 그리워하게 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붙들지 못하고 있는것은 아닌지.
기억을 기록하고 재생한다는 것은 공동체가 다시 살아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사회의 일상 미디어로 나와 주변의 이야기를 남기기에 사진만 한 것이 없다. 고화질의 성능 좋은 스마트폰도 있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사각지대는 남아 있다. 좀 더 나은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스마트폰과 함께 디지털 카메라(DSLR) 사용을 추천한다. 특히 아름다운 저녁노을이나 야경 촬영을 위해서는 디지털 카메라와 삼각대를 사용해야 공간에 피어있는 빛의 무리를 정갈하게 담아낼 수 있다. 사진은 시간과 싸움이고 여백 속의 기다림이다.

 

천주교 죽림동주교좌성당
● 등록문화재 제54호(2003년 6월 30일 지정)
● 1949년 기공, 고딕 양식, 총 길이 51미터, 폭 11미터
● 강원도 춘천시 약사고개길 21

 

글·사진 _ 김시동 사회적 사진가, 지역아카이브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