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의 기억이 묻어나는 감자범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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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감자를 삶으면 껍질이 터지며 하얀 분이 묻어나 식욕을 자극한다. 강원도 산골 어디나 잘 자라는 감자, 예전의 부모세대에서는 주식으로, 우리들에게는 여러 가지 간식으로 쓰였다.

 

납작썰기 또는 채로 썰어 만든 감자볶음, 다 자라지 않아, 씨알이 가는 감자를 껍질째 조리는 감자 조림, 또 밀가루를 입혀서 튀김이나 전으로 만들었다. 강판에 갈아 물기를 꼭 짜서 팬에 기름을 두르고 부치는 감자전은 쫄깃쫄깃한 맛이 사람을 매혹시켰다. 서양요리 방식으로는 삶은 감자를 으깨 마요네즈와 설탕을 넣은 매쉬드 포테이토, 채썬 감자를 튀겨낸 프라이드 포테이토….


일일이 그 음식 이름을 댈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용도로 쓰이는 감자이지만 여름날 햇감자를 만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음식이 감자범벅이다.


요즘의 아이들에게는 낯선 음식인 감자 범벅은 감자껍질을 벗겨 찌면서 여기에 밀가루 반죽을 넓적하게 펴서 넣고 강낭콩도 넣어 쪄내는 음식이다. 김이 한창 올라 다 익으면 감자와 밀가루 반죽, 콩이 엉겨붙은 것을 조금씩 떼어가며 이것들을 잘 섞이도록 먹는 것이 맛있게 먹는 방법이다. 각각의 재료가 한데 어울리는 맛, 감자의 파삭하고 입에 살살 녹는 맛, 거기에 밀가루의 쫄깃함, 콩의 구수함이 뒤섞이는 맛은 뜨거워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우리의 엄마들은 어떻게 이런 맛을 느끼게 하는 요리를 생각해 냈을까? 우리의 아이들은 이 맛의 묘미를 잘 모른다. 강렬하지도 않고, 색감이 크게 좋은 요리도 아니다. 그러나 이 세가지 재료들이 낯설지 않게 어울린다. 여름철 손쉬운 재료로 어머니들이 부리는 솜씨이다.


먹을거리와 조리법이 다양한 감자 요리 가운데 유독 감자범벅이 그리운 것도 아마 그 시절의 추억이 한데 어우러지는 특별함 때문일 것이다.


큰 이모는 화천 산골에 사셨다. 방학이면 여행을 갈 곳이라고는 이 이모집 밖에 없었다. 그래서 으레 가는 이모집은 많이 가난했다. 그래도 내게는 기다려지는 여행지였다. 그렇게 이모집을 가면 으레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감자범벅이었다.


나를 위한 별식인 것 같은 감자범벅은 강원도 산골사람들의 주식에 가까운 음식이었는데 그도 모르고 별식으로 즐기던 그 범벅, 사촌들은 심드렁한 음식이었지만 나는 감자범벅과 옥수수, 그리고 사창리 그 개울의 참 하얗고 넓은 바위 위에서 뛰놀던 기억… 갓 삶아낸 감자에서 하얀 분이 묻어나듯, 추억이 묻어나는 감자범벅을 어머니에게 해달라고 했다.

 

한 아이의 엄마인 나는 아직 이 요리를 먹어만 보았지 해본 적이 없다. 그 것은 나의 어릴적 여름방학 기억과 함께 이모나 어머니의 특허 요리로 남겨두고 싶다.

 

유현옥 본지 편집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