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도 가지가지인 다슬기

2012.09.07 10:29

문화통신 조회 수:4455

 크기변환_다슬기.JPG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경남에서는 고둥, 경북에서는 고디, 전라도에서는 대사리, 강원도에서는 꼴팽이, 충청도에서는 올갱이 등등으로 불린다.’ 이렇게 기록되어있다.
그런데 왜 우리 고장에서는 이것을 달팽이라고 불렀을까?


간에 좋고 숙취에도 좋다고 해서 요즘은 진액을 하는가 하면 다슬기해장국집도 많이 생겼다.
 어릴 적, 다슬기를 끼니 음식으로 먹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누군가가 강에서 갓 잡아온 것을 된장을 푼 물에 넣어 삶는데 거기에는 실파도 잔뜩 들어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국물보다는 껍질째 끓인 다슬기 살을 발려 먹는 것이 주 관심사였다. 바늘이나 옷핀을 이용해 꼬리 부분까지 끊어뜨리지 않고 온전한 모양새로 꺼내 먹는 것은 무슨 큰 임무를 수행하듯 집중하게 했다.
 뾰족한 바늘이나 옷핀이 없을 때는 다슬기의 밑둥을 이로 깨물어 그 밑둥을 쪽 빨았다가 다시 앞부분을 빨아 당기면 압력에 의해 쏙 빠져나오는 것에 심취하기도 했지. 어쩌다 꼬리부분까지 잘 빠지지 않은 부분에 미련을 두고 더 빨아대느라 “쪽쪽!” 소리를 내가며 먹었던 그 행위들에 대한 기억들이 선연하다.

 

이렇게 유년시절의 즐거운 간식으로 먹던 다슬기가 맥없이 싫어진 것은 중학교 1학년인가, 생물시간에 그것 때문에 매를 맞았기 때문이다. 방학책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되지 않지만 생물과목의 무슨 문제풀이에 답을 하는 시간이었다.
하나, 둘 답을 맞춰 가는데 틀리면 반 전체가 한 대씩 맞는 공포의 시간이었다. 그 문제 가운데 ‘달팽이’ 가 답인 것이 있었다. 아주 쉬운 문제였고 우리는 자신 있게 “달팽이!” 하고 이구동성으로 답했다. 헌데 선생님은 그 알듯 모를 듯한 표정으로 박달나무 몽둥이를 손바닥으로 탁탁 치더니 우리에게 ”손 내놔!“ 하는 것이었다, 영문을 모를 일이었다. 답은 맞는데….
“뭐야, 너희들은 달팽이를 먹냐?” 몽둥이를 휘두르며 하는 말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네, 물론 우리는 그것을 먹어요….’ 입속에서 는 말이 뱅뱅 돌았다.
 매를 맞아야 할 이유를 몰라 억울하기 짝이 없던, 그 달팽이 사건. 어릴때부터 달팽이라고 불렀던 다슬기. 서울 선생님과 문화적 충돌이 일어난 것이다.


 그것의 이름은 정확히 ‘다슬기’였다. 춘천지방에서는 달팽이로 혼용되었던 것이다. 또 다른 이름의 달팽이 존재를 잘 몰랐던 유년시절의 지역 통용어와 표준어 사이에서 일어났던 이 웃기는 사건으로 다슬기는 그 뒤로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게 되었던 것 같다.
 근처 강가에서 잡아다 먹던 다슬기는 댐이 생겨나 흔하지 않게 되었고, 이제는 중국산이 들어오고 몸에 좋다하여 가공식품으로까지 팔리지만 갓 잡은 것을 해감을 하고 된장을 넣어 삶아내 살을 발려먹던 내 어릴적 특별한 간식이었다. 요즘은 살을 발려넣고 부추를 잔뜩 넣어 다슬기 살과 조금 헷갈려가며 먹는 해장국을 맛나게 먹기는 하지만 왠지 허전하다. 하나씩 살 전체를 온전하게 분리해 먹는 그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음식은 남았지만 그 음식에 담겨있는 문화나, 추억이 거세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소양강가에 오랫동안 있던 ‘달팽이집’도 다슬기를 파는 집이었다. 다슬기를 안주로 먹을 수 있는 술집인데 이 집만 가면 완전히 망가진다고 투덜대는 사람이 많았다. 술 한잔 먹고 그걸 하나씩 까먹어야 하니, 술이 금방 취하고 안주가 안된다는 것이다.
그 집도 사라졌고, 나는 한여름이 다 가도록 다슬기를 구경하지 못하고 가을을 맞는다. 문득 그리워지는 다슬기로 인해 그 생물시간에 맞았던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실감나게 또 이야기한다. 나를 매맞게 한 달팽이, 다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