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래기된장국

2012.12.31 10:33

문화통신 조회 수:4598

 

시래기 된장국

 

나는 걷거나 버스를 타고 다니기 때문에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된다. 분명히 정류장에서, 찻간에서 처음 본 사이인데도 너무 자연스럽게 말을 걸고 본인의 관심사를 거침없이 상대에게 얘기하고 동의를 구한다. 어디 가냐, 고추는 몇 근이나 했냐고 묻는 건 기본이고, 집안의 대소사까지 무한대이다.


나이가 들면서남자는 자꾸 쪼그라드는데여자는 나날이 용감해지는 것 같다.

a6.jpg 김장철이다. 중앙시장 버스 정류장의 할머니들은 할 말이 더 많아졌다. 잘 말린 고추로 한 겨울 걱정 없이 먹을 김장을 마치면 우리 어머니들의‘큰일’은 끝이 난다. 먹을 것이 많은 요즘에 젊은 세대에게김치는 없어도그만이긴하지만, 그래도 빠지면 서운하다.

무를 자르고 난 무청으로 말린 시래기는 겨울철 김치와 함께 국과 무침으로 단골로 밥상에 오르는 주 메뉴였다. 배추를 다듬을 때 아버지의 무청 엮는 모습은 이제 볼 수 없다. 도시의 웬만한 집들은 아예 깨끗이 다듬은 절임 배추를 배달시켜 김장을 하면서 쓰레기(=시래기)는 사라졌다.


무공해 청정지역이라는‘양구 펀차볼마을 시래기’가 고급식품으로 대접 받는 세상이다. 매가리 없는 애들한테‘시래기죽도 못 얻어먹은것 놈 같다’는 말은 옛이야기가 되었다. 시래기 전용무로 무청만을 채취할 목적으로 시래기를 생산하면서 색깔도 파랗게 말리고 껍질을 벗기지 않고 바로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삼겹살 등 고기를 싸먹기 좋게 넓고 부드러운 깻잎을 생산하기 위해 하우스 재배를 한다는 것은 들었지만, 무(밑동)는 버리고 잎만 먹기 위한 영농을 하고있다. 시래기가 업그레이드된 것이다.

a5.jpg 최근에는 건강식 바람으로 시래기는 소위 웰빙식품으로 자리를 잡은것 같다. 식이섬유가 많고 철분, 칼슘, 비타민 등이 풍부하고, 무청에 간암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 때문에 새롭게 주목을받고 있다. 어제오늘이 아니지만, 잘 먹고 잘산다는 기준이 바뀌어가고 있다. 양으로 배를 불리던 시절은 지났다. 돈이 많다고 고기반찬만을 해서 먹지 않는다. 얼마나 좋은 식재료를 쓰느냐에 따라 음식값도 천차만별이다.


예전의 가난한 시절에 먹던 거친 나물 반찬을 많은 사람들이 찾으면서 산나물 전문음식점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

도시에서 직장 생활을 한사람들은 혀끝만 자극하는 조미료의 겉 맛으로 어쩔 수 없이 길들여져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래서 더더욱 나이가 쉰 정도 이상 된 이에게 시래기된장국의 구수한 내음은 고향어머니의 그리움인지도 모른다. 어릴 적 겨우내 먹을 수밖에 없었던 그 맛에 인이 박일수밖에.

 

국 한 그릇에 밥 한 공기면 넉넉하게 한 끼를 해결 할 수 있었던 그 맛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박동일 축제극장 ‘몸짓’ 극장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