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청춘의 안주거리 모두부

2012.05.18 09:13

문화통신 조회 수:2704

80년대 청춘의 안주거리 모두부

 

doo1.jpg 80년대의 대학은 술판이었다.
매일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하면 교내 동아리 방이건 잔디밭이건 술판으로 떠들썩했다. 선배들은 주머닛돈을 있는 대로 털어 자본(?)을 댔다. 자칭 타칭 무산자(無産者)인 후배들은 기꺼이 노동자가 되어 술 심부름을 했다.
주종은 막걸리. 수십 통이 박스 채로 후배들의 손에 실려 왔다. 안주인 두부와 김치, 어묵은 물론 봉지채 날라져 왔다.
짜장면 시켜먹고 중국집에 돌려주지 않은, 흰색이 점점이 박힌, 연두색 플라스틱 사발에 두부모가 통째로 담겼다. 김치는 일회용 접시 위에 쏟아졌다. 공부보다 대자보 쓰기에 더 바빴던 선배들의 손길에 죽죽 찢긴 어묵도 김치 옆에 너덜너덜 담겼다.
담배와 술 냄새로 쾨쾨한 동아리방 책상 위에 그것들은 성찬으로 올려졌다.
볼품은 없었지만 가난한 80년대 대학생들에게 두부와 막걸리는 주린 그 무엇을 채워주고 있었다. 저녁 나절의 고픈 배를 부르게 해주었고, 이유도 알 수 없는 청춘의 결핍감을 채워주었으며, 민주주의에 대한 펄펄한 열정을 나누게 해주었다. 돌이켜보면 그때 만큼 맛난 술자리는없었다.


생각해보면 두부를 안주삼아 술을 마시던 선배들의 전통(?)에는 혜안이 있었다. 빈속에 술을 들이 부어대던 젊은이들에게 두부만큼 든든한 안주가 또 있었을까.

doo3.jpg
두부에는 기실 고향이 있다.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어머니의 정성이 배어 있다. 콩을 골라 불리고 갈고 콩물을 걸러내어 끓인 후 간수를 맞추어 넣으면 순두부, 순두부를 틀에 넣어 물기를 빼고 누르면 모두부다. 만드는 도중 한눈을 팔거나 서툴게 굴면 주변은 난리 진창이 되거나 두부가 눌어 붙고 만다.


두부의 영양가야 구태여 설명할 필요 없지만‘두부’라는 글자를 들여다보자.
두부(豆腐)는 콩 두(豆)에 썩을 부(腐)자를 쓴다. 부(腐)는 육(肉·고기)과 부(府·마을, 구부리다)가 합쳐진 말로, 고기가 썩는다는 의미를
지니고있다.
여기에는 아마도 발효 콩 요리들도 포함된 말인 듯싶지만 어쨌든 두부란 ‘가공된 콩고기’를 뜻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두부는 기원전 160
년께 중국에서 만들어진 음식인데 그 때 사람들도 역시 콩을 ‘밭에서 나는고기’로 인식했다는 게 두부의 어원에서 드러난다.
어머니의 맛과 영양을 온전히 품고 있는 것이니 두부는 한참 먹어야 할 청춘들에게 더할나위 없는 음식이었지 않겠는가.


지금, 대학가는 물론 어디에서doo2.jpg 도 모두부를 펼쳐놓고 술을 마시는 이들은 없다. 대신 손두부집이 성업을 이루고 있다. 영동지방은 초두부나 순두 부가 유명하지만 영서지방은 모두부 요리집이 많다.
뜨끈한 두부전골에서부터 얼큰한 두루치기, 고소한 두부구이, 콩 빈대떡처럼 두부집의 레시피는 갖가지다. 때로 두부요리를 앞에 두고 숟가락을 들라치면 젊은 날의 주린 배를 채워주던 모두부가 생각난다.
어스름한저녁, 못생긴 모두부를 앞에 두고 음울하게 세상을 마시던 대학시절의 그림자가 서툴게 걸어간다.

김효화 본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