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식 막장으로 끓인 뽀글장

2012.08.03 09:41

문화통신 조회 수:4247

강원도식 막장으로 끓인 뽀글장

 

뚝뚝하지만 구수한 강원도의 맛,

뭉근한 그리움이 담긴 그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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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우리 집에 친정식구들이 모였다. 남편 생일과 새언니 생일이 겹쳐 식구들을 우리 집에 불렀다. 날씨도 덥고 바리바리 음식하기도 번거로워 고기를 구워먹기로 했다.


그런데 큰 언니는 고기를 잘 먹지 않는다. 불판에 구워먹는 고기는 더욱 반기질 않는다. 반찬을 따로 해줄 요량으로 물었더니 된장찌개와 나물을 주문한다. 생일이니 미역국을 끓이고, 밭에서 상추와 고추를 뜯어와 고기 구울 준비를 하고, 찌개와 나물까지 따로 하려니 오후 내내 종종 걸음을 쳤다.

다행히 식구들 올 시간에 맞춰 상이 다 차려졌다. 언니에겐 독상을 차려줬다. 언니는 입맛이 까다롭다. 비위가 약해 냄새에 민감하고 쉽게 지쳐 저녁에는 밥도 많이 먹지 못한다. 그런데 그날은 한 그릇 반을 먹어치웠다.
밥도둑은 다름 아닌 된장찌개였다. 그날 끓인 된장찌개는 뽀글장이라 불리는 되직한 찌개였다. 우리는 이 찌개를 어렸을 때부터 먹어왔는데 명칭이 마땅치 않아 늘 ‘비벼먹는 된장찌개’라고만 불러왔다.


이런 찌개는 아마도 우리 엄마 밖에 끓이지 못할 것이라 생각해왔는데 ‘뽀글장’이라는 이름으로 식당 메뉴판에 걸리는 것을 다 큰 후에야 알게 됐다. 하지만 이 찌개는 그리 흔하지 않다. 인터넷으로 ‘뽀글장’을 검색해도 많은 정보가 뜨지 않는다.
이유를 따져보니 이 찌개를 강원도식 막장으로 끓이기 때문이다. 막장은 메주에 볶은 보리밥, 콩가루, 소금, 고춧가루 따위를 넣고 담근다. 강원도에서도 특별히 좋아하는 집만 막장을 담가 먹는다.

뽀글장은 막장에 각종 재료를 넣어 무척 되직하게 끓인다. 재료는 기호에 따라 다르다. 된장찌개의 재료인 감자, 호박, 양파, 고추, 두부를 넣고 되게 끓이기도 하고 해물이나 고기를 잘게 다져 야채와 함께 끓이기도 한다.

지금도 물론 그렇지만 어릴 적부터 밥을 몇 그릇씩이나 비우게 했던 친정엄마의 비법은 천연조미료와 김치, 양파다.
우선 멸치와 다시마, 버섯 등을 말려 갈아 만든 천연조미료를 한 숟가락 떠 넣고 국물을 낸다.
여기에 김치 국물과 함께 김치를 다져넣고 양파를 듬뿍 넣는다. 막장과 김치의 짠 맛을 희석시키기 위한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파와 고추를 송송 썰어 넣은 후 되직해질 때까지 푹 끓인다. bb.jpg
때로는 감자나 호박을 넣기도 하는데 늙기 직전의 처치하기 곤란한 호박의 속을 파낸 후 잘게 썰어 넣어도 좋다. 이런 재료들이 흐물흐물해질 때까지 익혀야 비벼먹기 좋고 장의 짠 맛이 덜어진다. 고추는 청량고추라야 제 맛이다. 매콤한 장맛이 입맛을 더욱 돋궈준다.

뽀글장만 있으면 다른 반찬은 필요없다. 장에 비벼 김치만 얹어도 황제의 밥상이 따로 없을 것같은 맛의 환희를 선사한다. 상추 위에 맨 밥에다 이 장만 얹어먹어도 기가 막힌 맛이다.

아이들도 좋아한다. 큰 아들은 언젠가 처음으로 뽀글장에 밥을 비벼 먹어보더니 “외할머니가 하는 걸 엄마도 할 줄 아네?” 하면서 아빠를 따라 밥에 김치를 얹었다. 아들은 청량고추와 김치 때문에 “맵다”면서도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며 두 그릇은 족히 비운다.


강원도 막장으로 끓인 뽀글장은 텁텁하고 묵직하다. 강원도 사람처럼 뚝뚝하지만 구수하다. 진짜 고향의 맛과 같은 뭉근한 그리움이 있다.
지금은 엄마가 아닌 내가 직접 장을 끓이지만 그래도 그 장 냄새는 항상 나를 어린 날 엄마의 집으로 되돌려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