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미기ekf_gkddkfl_cn.jpg 일전에 교우들과 화천의 감성마을에 갔다가 잠시 이외수 댁에 들려서 차를 한잔씩 마시고 왔다. 주인집 거실에 대호(大壺)는 아니고 중간치쯤 되는 달 항아리가 눈에 들어와서 ‘누가 만들었소?’하니까 ‘5천 만 원은 나간다’고 값을 대기에 찔끔해서 말문을 닫은 적이 있다.

 

한 때, 인사동 언저리를 수 년 간 배회하던 시절에 어깨 너머로 달 항아리 구경을 한 적이 있다. 지금은 대가가 된 어느 도공의 가마를 방문하기도 했고, 식견을 가진 여러 어른들이 하는 이야기를 귀 동냥하기도 했다. 춘천에서는 서면에 있는 ‘현암 박물관’에 백자 달 항아리가 있어서 들르곤 했는데, 요즘은 문을 닫고 있어서 아쉽다. 물론 나도 백자 달 항아리를 어느 도공에게 부탁해서 특별하게 한 점 지니고 있었는데, 달 항아리가 집에 들어오던 날의 그 흥분을 지금도 기억한다. 한 서 너 달 보고 또 보고 하다가 지인에게 맡겼다.

 

특별히 박물(博物)에 관심이 덜한 분들은 도대체 왜 ‘달 항아리’를 아름답다고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아름답기는커녕 무심하기 그지없어서 까딱하면 ‘저따위를 뭐하러 만드노?’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렇다고 요즘 도자기처럼 대칭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고, 반들반들한가 하면 그렇지도 않고, 모양이 그럴싸한 것도 아니다. 간장이나 된장 아니면 사탕이라도 담을 만한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어느 모로 보나, 어느 용처(用處)로 생각해도 딱히 실용은 아니다. 실용 즉, 물의 세계에서 이해되지 않는다면 이는 필시 의식 이거나 정신의 세계에서 구축된 그 무엇일 게다.

 

달 항아리, 그것도 ‘백자 달 항아리’를 느끼려면 먼저 도덕경 45장을 읽고 해석해 보기를 권한다. 그러면 달 항아리가 보인다. 물론 달 항아리를 넘어 도의 실제가 뭔지도 알게 되겠지만, 거기 이런 글귀가 나온다.  [大成若缺, 其用不弊(대성약결, 기용불폐)-大盈若沖, 其用不窮(대영약충, 기용불궁)大直若屈, 大巧若拙, 大辯若訥(대직약굴, 대교약졸, 대변약놀)--크게 이룬 것은 어딘가 부족한 거 같지만 아무리 사용해도 닳지 않는다. 가득 찬 것은 마치 비어 보이지만 아무리 사용해도 없어지지 않는다. 완전한 것은 마치 휘어진 것처럼 보이고, 진짜 정교한 것은 어눌하게 보이는 것이요, 말을 잘하는 것은 마치 어눌한 듯 하 게 하는 말이다.] 문명의 발달이란 게 그렇다. 처음에는 실생활에 필요한 허접한 흙 그릇이나 겨우겨우 만들다가, 정교하고 반듯한 도자기를 굽고, 손재주만을 의지하는 단순 기술을 넘어서서 생각과 의식을 투영하는 형이상학에 이르는 조형예술로 진화한다. 그 의식 진화의 결정체가 [달 항아리]다. 내 생각으로는, 도덕경 45장의 의미를 넘어서서 달 항아리를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진짜 정교한 것은 어눌해 보인다-大巧若拙’를 이해하고 달 항아리를 감상할 수 있다면 금 새 아뜩한 정신의 어지럼을 느낄 수 있다. 도덕경은 역설의 사상철학이다. 이런 철학이, 생긴 건 멀겋고, 약간 기우뚱하며, 쓸모 또한 궁리가 안 되는 볼품없는 항아리로 구워진 것이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하는 말인데, 우리가 흔히 ‘큰 그릇은 늦게 만들어진다’는 뜻으로 ‘大器晩成’이라는 도덕경 41장의 글귀를 해석한다. 그런데 이 해석은 틀린 것이다. 그 다음 구절을 보라. 大音希聲, 大象無形(대음희성, 대상무형)인데, ‘뛰어난 음악은 소리가 없는 듯 하고, 뛰어난 형상은 형태가 없는듯하다’는 것이다. 모두 역설적인 해석인 것이니, 앞의 대기만성(大器晩成)도 뒤의 문장과 같은 뜻으로 풀어야 한다. 그러면 ‘빼어난 그릇은 마치 덜 만들어진 그릇과 같다’는 뜻이 아닌가? 내게 백자 달 항아리를 재현하여 선물했던 도예인이 쓴 [도공의 노래]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익은 흙을 만나기란 황진이 만나기처럼 어렵다.살아 있는 흙은 사나워서 도공의 마음을 할퀴고 불꽃마저 할퀸다.물레에 앉혀 놓기라도 하면 뛰쳐나가기 일쑤이고유약을 옷으로 입혀 성질을 가라 앉혀 보려 해도살에 닿는 것이 답답한지 찢고 벗어 던진다.죽은 흙은 아예 도공의 손끝에서 주저앉고 불이라도 닿으면 유약을 가래처럼 내뱉고 쓰러진다.살았나 싶어 살펴보면 독나방같이 째려본다.익은 흙은 도공의 손길이 닿는 데로 척척 감기고 유약은 흥분되게 걸칠 줄 알고불꽃을 사로잡아 어느 것이 몸이고 어느 것이 옷인지 알 수 없게 조화롭다.”

 

봄 이다!
지천에 소리 없는 음악이 출렁거리고, 형체 없이 만물이 변해간다. 이게 달 항아리 특히, ‘백자 달 항아리’의 민낯이다.    

 

허태수  춘천성암교회 목사 <자기포기>, <영혼의 약국>, <사람이 중심이지요> 등의 책을 냈으며 글을 통해 삶의 본질을 일깨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