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미감 지게

2014.04.17 18:43

문화통신 조회 수:1051

지게1.jpg

어릴 때 시골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지게]란 딱히 어른들의 연장만은 아니었다. 거개의 아버지는 아이의 키 높이에 맞게 ‘지게를 걸어’서 그 연하디 연약한 아들의 등짝에 올려놓았었다. 물론 아이의 지게에도 지게 끈이(지게에는 지게 끈이 달려있어야 지게다워진다) 달렸었고, 지게 작대기도 크기만 달랐지 어른들의 그것과 진배없었다. 그러면 그걸로 쇠꼴도 베 나르고, 감자도 지고, 나무 단이나 통나무를 져 나르곤 했다.

서양 사람들은 우리네 지게가 마치 그들의 알파벳 [A]를 닮았대서 ‘에이 프레임 A frame’이라고 한단다. 아마도 그들의 눈에는 우리의 지게가 간단히 [A] 자로만 보였던 모양이다. 그러나 어릴 적 내 경험으로 [지게]는 괴로움과 한숨이었다. 단순하게 물건을 옮기는 도구 이상의 의미가 배어 있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우리네 [지게]엔 정이 배고 피가 통해 있는 ‘또 하나의 생’ 그것이다. [지게]에 피가 흐르고 정이 배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지게]는단순히 짐을 져 나르는 도구만은 아니다. [지게]는 농부의 천연의 악기다. 작대기로 지겟다리를 치며 그 장단에 맞춰 ‘초부타령’을 부를 땐 더없는 위로와 격려의 에너지 원천이었으니 농주(農酒) 한 사발이 그만했을까!

지게를 뉘어놓고 그 위에 피곤한 몸을 뉘일 땐 안락의자이기도 했다. 무거웠던 짐을 부리고 난 후 지게 다리를 둔덕에 올려 평평하게 앉힌 후에 거기 고된 몸을 맡기고 깊고 파란 하늘을 바라볼 때의 그 상쾌함이라니, 기백만 원짜리 전동 마사지 의자가 이만했을까! 어디 그뿐이랴, 지게 위에서 곤하게 잠이라도 들었다면 이농부의 얼굴은 ‘암체어 armchair’ 에서 잠든 신사의 얼굴보다 더 평온할 것이다.
[지게 작대기]는 또 어떤가. 그저 따라다니는 장식품이 아니다. 튼튼한 두 다리를 지탱케 하는 것도, 꺾어지는 허리를 앞장서 안내하는 것도 이 모두 ‘지게 작대기’의 몫이다. 그뿐인가, 일본이나 서구사람들은 칼을 들고 다녔지만 우리의 지게 작대기는 뱀이거나, 멧돼지거나, 호랑이거나, 대적하여 덤벼드는 도적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호구(護具)이기도 했으니 어찌 피가 배고 정이 흐르지 않을까!
1780년 6월, 연암 박지원이 종형 박명원의 청나라 사절단을 따라 압록강을 건너려 할 때 통역관에게 난데없이 “그대 도(道)를 아는가?”라고 물었다고 한다.열하일기 [도강록] 그러면서 그 도(道)를 설명할 때 강의 두 둑 사이를 흐르는 물의 흐름이 바로 그것이라고, 알 듯도 모를 듯도 한 답을 냈다고 하니, 지게를 사이에 두고 지게를 사용하는 인간과 인간에 쓰임 받는 도구 사이에 흐르는 이것이 실로 우리네 인생의 [도道]가 아니고 뭘까?
[에이 프레임 A frame]이 주는 단맛은 이제 끝났다. 영혼은 잉여되기 시작했고, 생명은 더없이 생기가 없다. 차라리 약간의 괴로움과 한숨이 잉태된다 해도 다시 [지게]를, 그 순응의 지게를 어깨에 메고 살아가야 할 듯하다.

지게2.jpg [초부타령]
일명 ‘초부가樵夫歌’다. ‘나무꾼의 노래’라는 뜻인데, 작자 미상으로 강원 영남지방에서 많이 불린 구전민요다. 가사는 다음과 같다.
이후후후~ 에헤
남 날 적에 나도 나고, 나 날 적에 남도 나고
세상 인간 같지 않아 이놈 팔자 무슨 일로
지게 목발 못 면하고, 어떤 사람 팔자 좋아
고대광실 높은 집에 사모에 병반(사모에 다는 장식) 달고
만석록을 누리건만 이런 팔자 어이 하리
항상 지게는 못 면하고 남의 집도 못 면하고
죽자 하니 청춘이요 사자 하니 고생이라
세상사 사라진들 치마 짜른 계집 있나
다박머리 자식 있나 광 넓은 논이 있나
사래긴 밭이 있나 버선 짝도 짝이 있고
토시 짝도 짝이 있고 털먹 신도 짝이 있는데
쳉이(키의 사투리)같은 내 팔자야 자탄한들 무엇 하나
한탄한들 무엇 하나 청천에 저 기럭아
너도 또한 임을 잃고 임 찾아서 가는 길가
더런 놈의 팔자로다 이놈의 팔자로다
언제나 면하고 오늘도 이짐을 안지고 가면
어떤 놈이 밥 한 술 줄 놈 있나
가자 이후후후~

허태수 춘천성암교회 목사. <자기포기>, <영혼의 약국>, <사람이 중심이지요> 등의 책을 냈으며 글을 통해 삶의 본질을 일깨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