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맷변환_꾸미기2꾸미기2DSC_7625.jpg


 

 

 엊그제, 운교동에 있는 둥지라는 마이너리티한 밥집에서 점심을 먹다가 불쑥 불이 채현국선생님께 전화를 넣었다. 12월 중순에 춘천에 오실 수 있느냐고 여쭙기 위해서였다. 마침 시인 황명걸 선생님의 시비 제막식이 있어서 양평에 계신단다. 내가 드린 청에 그러마고 하시더니 소설가 구중관 선생을 바꾸셨다. 아주 오랜만에 전화로 뵙는다. 이분들 모두 어느새 팔십을 넘었거나 바라보는 어른들이다.

 

이분들은 인사동 사람들이다. 언제부터 인사동 사람이라는 별칭이 붙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인사동이 지금과 같은 자본주의 냄새를 확확 풍기기 시작한 그 무렵부터가 아닐까 싶다. 변해가는 옛 인사동의 정취를 저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사동 사람들을 새겼으리라. 나도 그 추억의 비석 끝자락에 간당 붙어 있다.

 

인사동은 이제 낭만의 추억과 기억을 모두 삭제 당했다. 어디 그게 인사동 뿐 일까? 토건국가인 우리나라는 부수고 짓는 일에 능하다. 간밤에 있던 게 삽시간에 사라지기도 하고, 엊그제 없던 건물이 불쑥 나타나기도 한다. ‘있던 게 없어지고 새로운 게 등장하는 이런 나라에 사는 동안 정신의 내밀한 보금자리인 추억기억을 잃어버렸다. 이웃도 친구도 벗도 사라졌다. 인터넷에 번졌던 친구 찾기는 세대적인 기억상실증의 증후다.

 

나도 가을이 되면 세대적 기억상실 증후군에 시달린다. 내가 태어난 집은 횡성의 작은 초가집이었다. 장작을 지피지 못해 구들장은 싸늘해도 노랗고 동그란 초가지붕은 늘 안온했다. 그런데 어느 날 초가지붕을 걷어내고 슬레이트 지붕으로 갈아 덮는 대공사가 시작되었다. 동네사람들은 썩은 지붕을 걷어 내리고 슬레이트를 석가래 위로 올리면서 지긋지긋한 가난을 털어 내려했다. 순식간에 초가집초라한 집의 표상이 되었다. 초가지붕이 걷히자 지붕위에서 자라던 하얀 박과 박 넝쿨도 사라졌다.

 

다른 꽃들과는 달리 박꽃은 저녁에 피어 새벽이슬 속에 시든다. 하필이면 박꽃은 왜 저녁에 필까 의문이 들지만, 가난한 밤,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을 밝히려면 밤에 피어야 정상이다. 어둠을 장식해야하기 때문이다. 박꽃은 부자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피는 꽃이다. 흥부네 집에서도 박은 초가지붕을 타고 자랐을 거고 밤에 꽃을 피웠을 터다.

 

세상 어느 나라 사람들이 지붕을 밭처럼 작물을 심어 생산 공간을 만들었을까? 박을 지붕에 올리던 가난한 아버지는 완상과 실용성의 마술사였다. 박을 타고 삶아서 공예와 실용의 그릇을 만들 때 어머니는 예술가였다. 초가에 사는 사람들은 지붕에서 금방이라도 굴러 떨어질 것 같은 박 덩이들을 쳐다보면서 흥부의 박을 생각했다. 혹시 저 중에 하나라도 흥부의 박이 있으려니하며 서리 내리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가난이 꾸는 희망이 그 초가지붕 박 넝쿨에 주렁주렁 자라고 있었다.

 

서리가 내리고 박 넝쿨이 마르면 온 식구가 동원되어 박을 따 내렸다. 물론 아버지가 지붕위로 올라가고 식구들이 처마 밑으로 모여서 박을 받았다. 그리고는 슬근슬근 톱질을 해서 반으로 잘라 가마솥에 넣고 삶았다. 모든 열매는 그 속에 그 값어치를 간직한다. 그러나 박은 그 반대로 속을 다 긁어내고 빈껍데기만 남게 될 때 비로소 제 구실을 한다. 그야말로 박의 역설이다. 박은 열매 속을 다 도려내고 그 빈 껍데기만 남을 때 비로소 용처가 밝아진다. ()보다 허(), 이것이 박의 미학이다. 빈 지붕에 보름달처럼 매달려 하늘을 가득 채웠던 박, 어둠속에서 피고 햇살에 사그러지던 꽃, 연하디 연한 하얀 몸을 펄펄 끓는 물에 공궤하고 얻어낸 단단한 골격, 한 가지 용도를 주장하지 않고 두레박, 됫박, 종지, 사발, 술잔, 탈바가지, 똥바가지가 되어 가난한 삶을 위무하던 박, 박꽃, 박 넝쿨, 박 넝쿨을 머리에 인 초가집은 지금 어디 있는가.

 

어느 현대식 아파트의 옥상에 갇혔는지, 이층 양옥집의 경사진 지붕을 기어오르다 굴러 떨어졌는지! 혹여, 잃어버린 친구는 다시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토목에 저당 잡혀 사라진 인사동인사동 사람들은 어디서 다시 찾을까? 영국의 황실 사람들에게 뽑힐 만큼 화려하고 질긴 한국도자기는 날로 세계에 더 많이 팔릴지 모른다. 그러나 가난에 조롱당하며 척결된 초가지붕 위의 마술사였던 [] 넝쿨과, [바가지]란 명사를 지어낸 온갖 용기(容器)들은 언제 다시 가난한 이들의 벗이 될 텐가!

 

 

글 허태수

 춘천성암교회 담임목사. <자기포기>, <영혼의 약국>, <사람이 중심이지요>등의 책을 냈으며 삶의 본질을 일깨우는 활발한 글쓰기를 하고 있다.